풍경 읽으러 갑니다.
현실과 먼 감각, 은 어느 즈음에 당도해야 가능할까. 일상을 피하는 것이 도망이었던 나에게, 여행은 늘 멀어야만. 그래서 아득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 편견을 깨 준 곳. 오늘은 숲으로 잠시 숨을 놓으러 왔다. 매거진 제목처럼. ‘짧은 산책 같은 ‘ 하루를 보내러.
춘천. 용산에서 기차를 타면 한 시간 남짓이면 올 수 있는, 서울과 멀지 않은 곳이다. 나는 서울 주민이 아니어서, 용산까지 이동하는 데에도 꽤나 시간을 투자해야 했지만. 번거롭거나 귀찮지 않고, 오히려 좋았다. 어쩌면 이 공간이 처음이 아니어서. 그리고 그런 이곳이 여전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썸원, 으로 시작하는 여러 개의 공간이 산 아래 다닥다닥 붙은 숲 향기 가득한 이곳은. 춘천의 김유정 역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나는 남춘천역에서 내려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는 마을버스를 운 좋게 잡아타고는 최근 빠져 있는 ‘연의 편지‘라는 곡을 귀에 걸었다.
‘우린 다시 만날 거야’
숲 같은 목소리가 이 부분을 노래할 때, 나는 버스의 하차 벨을 눌렀다.
같이 내리는 여자분이 계셔서, 혹시 썸숲 가세요? 하고 나는 말을 걸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의 대화. 이곳에서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체크인을 하고, 공동 서재와 외부를 먼저 담았다. 이전에 ‘에반스의 서재’ 라 쓰이던 큰 방은, ‘누군가의 서재‘라는 방으로 바뀌어 운영되어 있었고, 오늘 내가 묵을 방은 바로 그 곳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와, 소리가 났다.
누군가들의 흔적과, 누군가들의 이름과 어떤 이들의 사연과. 또, 슬슬 져가는 오후의 빛들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어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어떤 사연들이 있길래 이 방은 이렇게나 깊은 무게들로 가득 차 있는가.
읽을 책을 고르러, 공동 서재로 가면서 나는 오늘의 짐을 내어놓고, 필요한 물건을 챙겼다. 오늘의 목적은 마음에 드는 문장을 수집하는 것이라, 만년필 몇 개와 마음에 드는 필기도구,
휴대용 연필깎이와 지우개를 부러 챙겼고, 일기장과 문장기록에 사용하는 필사노트도 함께 내어 놓았다.
첫 책은 공동 서재에서 읽었다. 스벤 브링크만의 절제의 기술. 공동 공간에서 유쾌한 커플 한 쌍을 만났고, 서로 작은 선물을 주고받으며 친해졌다. 나는 내 책 이야기를 했고, 모두가 가져온 내 책의 문장들을 반가워해 주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모이는 공간. 이곳은 그런 공간이었지. 혼잣말이 아니라 같은 것에 대해 대화하면서 나는 마음 한구석이 슬그머니 따뜻해졌다. 3-4년 전에 뵌 썸장님, (이렇게 불리기를 원하신다.) 은 그대로셨고, 공간 곳곳에는 그분이 손길이 닿은 것들이 잔뜩 있고 그것들이 너무나도 여전해서 나는 타임 슬립을 했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나무가 자라서 커진 모습. 쪽지들이 늘어 한쪽 벽면이 아니라 여러 벽면으로 퍼진 것 이외에, 책이 조금 더 많은 권수로 늘어났다는 것 이외에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걸 깨달았을 때, 아, 여길 오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도 그랬지만, 누군가의 흔적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일부를 읽는 것과도 같다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이곳을 들렀던 누군가들의 메시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이곳에 두 번째 방문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도 같다. 사각사각 필사를 하면서 최근 몰려왔던 이유 모를 무기력감을 잠시 잊었다. 돌아와서는 엘피판을 플레이어에 올렸다. 지직지직, 엘피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짧지만 긴 저녁식사를 했다.
해가 졌다. 8시에는 썸장님이 숲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시는데, 촬영을 원하면 나오세요- 라는 메시지를 받고는 침대에 잠시 늘어져 있었다. 책장에서 낡은 ‘페이퍼’ 몇 권을 꺼내 읽었다. 이전에 참 좋아하던 매거진이었는데, 싶어서 조금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밤의 풍경 몇 장을 더 담고 돌아오면서, 사진을 찍는 분들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각자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른 현실에서 현실을 잊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 어쩌면 우리는 닮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지만 닮은 사람들. 그 사실이 나를 따뜻하게 했다.
아마도, 이전에 방문했을 때도 이맘때쯤이 아니었나 싶다. 별이 보이는 곳인데, 오늘은 하늘이 좋지 않아 별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쉽지 않았다. ‘너무 힘들어서 나를 돌볼 수 없을 땐 와 보지 못하다가 이제야 다시 찾게 되네요’ 하고 방명록에 적었는데, 머지않은 때에 이곳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들은 아쉬워야 애틋해지고, 그러면서 또 의미가 생긴다. 내가 자주 쓰는 말마따나, 모든 게 의미일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