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예의.
엄마의 가는 손목에 링거가 꽂혀 있다. 어떤 리듬에 맞춰 포도당은 정확하게 떨어져 엄마 몸의 어딘가를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맞은편에 앉은 보호자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낙상 고위험'이라는 다섯 글자를 새긴 팔찌를 두르고 있는 엄마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몸을 움직이면 그만. 두어 시간쯤 앉아있으니 자연스레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구급차에 앉아 꿰매지도 못한 벌어진 두피의 자상 위로 흰 붕대를 줄줄 감고 있던 엄마의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병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다. 작게는 엄마 맞은편 침상부터, 많게는 아래층 수납 창구까지. 가만히 앉아 있어도 검사를 하러 이동할 때도 마주치는 침상 위 눈 감은 환자를 볼 때도 이 곳에 많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구나, 하는 사실은 구태여 짚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누군가의 얼굴 위에는 고통이, 어떤 마음에는 걱정이, 또 어떤 이야기들 위에는 안절부절못함과 절박함이. 적절한 톤도 모르고 마구 뒤섞이는 사람들의 공기와 공기 위에는 병원 안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무게감이 있다.
모든 공간은 적당히 열려 있다. 누구든 그걸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엄마가 환복을 하는 동안에도 건너편 커튼에서는 누군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들려온다. 시간에 맞추어 침대가 들어왔다 빠지고, 적당한 시간에 맞춰 식사가 제공되며 회진을 도는 의사 선생님을 만난다. 우리 엄마의 상태는 차트 안에서는 닫혀 있지만, 병실 안에서는 오롯이 열려 있다. 오늘의 스케줄, 내일의 스케줄. 몇 시에 무엇을 한다는 엄마의 간략한 스케줄은 커튼 사이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오픈된다. 나는 이 공간의 기묘함이 참으로 신선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모두가 아픈, 이렇게 자연스러운 공간이라니.
입원실로 옮긴 늦은 오후. 나는 신분증이나 지갑조차 챙기지 못하고 구급차로 병원에 가신 엄마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 짐을 챙긴다.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일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급하게 나온 흔적이 산 공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예전엔 다 함께 살던 , 지금은 혼자 지내시기에는 조금 큰 공간. 칫솔, 치약, 비누. 평소에는 챙길 필요가 없는 것들을 챙기면서 엄마가 이제는 버려도 되는 물건들을 참 많이도 품고 계시는구나, 싶은 기분이 된다. 필요한 것들을 받아 적는데 냄비에 남은 호박죽이 상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계셨다. 밀폐용기에 죽을 그득그득 떠 담아 소분하면서 식탁 위에 있는 찐 고구마 몇 개도 같이 챙긴다. 돌아와서 상했구나, 하고 속상해하는 엄마 얼굴을 떠올리면 슬퍼지니까. 간단한 집기들을 챙기려니, 비누 같은 물건들 중에는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것들도 꽤 있었다. 내 방에서 뭔가 필요한 걸 꺼낼까 싶어 열어봤더니 이전의 내 방 안에도 너무 많은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엄마가 누웠던 배겟잇에 뭍은 핏자국을 확인하고 주변에 차분히, 그렇지만 어질러져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적당히 많은 생활집기들을 가만히 본다. 엄마 혼자 지내시는 공간에 이미 집을 떠난 모두의 흔적이 너무나 많이 있어 무겁다. 이 무거운 공간 안에서 혼자 쓸쓸하셨을 것 같다. 싶어 코끝이 살짝 아프다. 나오기 전에 물고기 밥을 줄까 싶어 어항 안을 보았더니, 안은 말끔하게 비어 있었다.
'키우던 구피들 어떻게 됐어, 안 보이던데. 물고기 밥 줄까 싶어 물어보려 했지, '
병실로 돌아가 나지막이 물으니 며칠 전에 떼로 죽어서 우울하셨다고 한다. 빈 어항 보기가 그래서 뭔가 꼼지락거리는 아이들을 채워 넣고 싶으셨을지도 모르는 와중에 벌어진 사고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익숙한 집 공간의 어딘가에서 넘어지셔서 후두부 몇 센티를 꿰매셨는데 어머니에겐 실신의 기억이, 고통의 기억이 사라져 있었다. 그나마 딸인 내가 가까이 살아서 다행이라고, 나는 그렇게 말했었다. 평소 집에서 엄마와 마주 보며 앉는 거리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 보호자석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그제서야 나는 보호자도 나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검사를 하거나, 이동했다 돌아오고 나면 맞은편에 앉은 간병인 아주머니가 잘 다녀왔냐며 말을 거시기도 했다. 바로 건너편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셔서 나만 보면 자꾸 가위를 찾아다 달라고 소리치시거나 가끔 기사 아저씨를 찾으시거나 했다. 처음엔 잠을 거의 주무시지 못하니 불편해하셨던 엄마도 이틀즈음 지나니 자연스레 익숙해지시더라. 으레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자연스러워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병실은, 나를 낳고 병원 환자복을 입고 있는 것은 처음이라고 엄마가 말씀하실 때, 나는 이제 내도록 내 보호자 해주셨으니 나도 보호자도 해보고 해야지, 하고 웃는다. 사실 특별한 자신이 넘쳐 내뱉는 말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병실에 가만히 조요하게 퍼지고, 누군가의 이야기들도 그렇게 시끄럽거나 조용하게 퍼진다. 남은 엄마의 병원식을 먹는 동안 커튼 너머로 밥 왜 안 오냐고 더 먹고 싶다고 창알거리는 꼬마애의 목소리가 귀에 쿡 들어온다.
누군가에게도 삶은 처음, 이라는 말이 있던가. 관계에서도, 역할에서도. 사람으로서도, 그렇다. 사실 누군가에게 어떤 상황은 처음이고 어떤 관계는 처음일지 모르겠다. 경험을 쌓으면서 사람은 성장한다. 교훈을 얻고 조심할 부분을 사리게 되며,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게 되고 그로써 자양분을 얻고 무언가를 자라게 한다. 어머니를 병원에 모신 첫째 날, 나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 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는 걸 알았다. 반쯤은 알고 있지만 경험하지 않으면 남은 반은 비어 있어 미처 다 알 수 없는 것. 그 겪지 않은 일들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날들을 쌓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들도 어쩌면, 다른 것들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은 길고, 아직 모르는 세상의 맛은 한참이나 남았다고 중얼거리던 10년 전 내 모습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듯.
아마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