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 앞에서.

by Sunyeon 선연

여름부터 새 일을 시작했다. 익숙해지려면 아직 계절을 하나 더 넘어야 하는, 애초부터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의 일. 기존의 일과 갈래는 다르지만 유일한 공통점은 바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는 점이다.


나는 내 이름 대신 닉네임을 적은 명찰을 왼쪽 가슴에 패용하고, 회사의 드레스 코드에 맞는 컬러의 셔츠와 앞치마를 입고 때로 포스 앞에 선다. 무언가를 결제하기 위해 잠시 내 앞자리를 머무는 사람들의 요구대로 주문을 받기 위해서. 머무는 이야기들 또한 특별할 것은 없다. 목적에 따라 불리는 품목의 것들을 입력하고, 주문이 끝나면 카트리지가 끼워진 영수증 출력기에서 결과가 출력된다. 종이 쪼가리를 뽑아 내 손에서 떠나보내는 것으로 보통 기본적인 절차는 완료되며, 안녕하세요로 시작해 감사합니다로 끝을 맺는 짤막한 여정. 처음에는 품목을 화면에서 찾아, 올바른 결제수단으로 정확하게 결제하는 것이 익숙지 않았으니 영수증을 뽑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러 사람을 마주쳤었다. 주문 확인을 위해 재차 확인하는 과정이 불편한 분, 느린 처리에 답답하지만 못내 티를 내지 못하시는 분, 느긋하게 웃으며 기다려 주시는 분, 같은 절차로 상대방이 원하는 걸 묻고, 그것을 포스팅해 영수증을 뽑지만,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같은 사람은 없었다. 잠시 그 자리에 머물며 아이컨택을 하는 동안 나는 늘 같은 목소리로 같은 절차를 통해 주문을 받지만 내 앞을 머물다 지나쳐가는 그분들에게는 각각 다른 느낌들이 있음을 알아챘다. 이런 걸 알아채기 시작한 것도 겨우 주문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난 이후였다.


포스 포스팅에 익숙해지니, 문을 열고 들어오는 분들의 특징적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늘 오시는 분들의 인상착의도 슬슬 눈에 익어 주문을 더 빠르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간단하게 원하는 것들을 확인하는 과정을 넘어 점점 새로운 것들을 묻고,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게 못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며칠 전에 오셨던 분의 헤어 컬러가 바뀌면 새로 염색한 색깔이 잘 어울리신다 말을 건넨다. 평소에 주문하시던 것과 다른 것을 주문하시는 버디 고객님이 오시면 '오늘은 다른 걸 드시네요, ' 하고 웃는다. 주문 전에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먼저 메뉴를 펼쳐 보여드리고, 특징을 설명하며 먼저 권유를 해 드릴 수도 있게 되었다. 생일 쿠폰을 사용해 결제하시는 분들에겐 '얼마 전에 생일이셨나 봐요, 축하드려요.' 하고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감사합니다.' 하고 수줍게 웃으시는 분들도 만난다. 주문을 통해 잠시 머무는 순간, 별 것도 아닌 말과 말들이 오고 가지만 무표정의 손님이 결국 웃으며 주문을 마치시는 모습을 볼 때, 잠시 발가락 끝이 기분 좋게 간지러운 기분이 든다는 것도. 포스 앞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어느 매장을 가든, 간단한 키오스크 주문이 활성화되어 화면 몇 번만 터치하면 손쉽게 주문이 가능하다는 걸 실감한다. 다소 복잡하기는 하지만, 주문의 정확도도 올라가고 인력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배치하여 점포 입장에서는 훨씬 편안할 것 같다. 다만 알다시피 키오스크에서 감정을 느끼기는 힘들다. 주문 자체가 매뉴얼이지만 , 단순히 주문이 주문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 갈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효율적이고, 절차가 생략되고, 편리해질수록 우리는 대화의 기회를 잃거나, 혹은 잊고 있다.



며칠 전에는 목을 스카프로 감싸고, 따뜻한 물 한잔을 함께 주문하시는 고객님을 포스에서 만났다. 약봉지를 들고 있는 그분을 위해 '미지근한 물로 준비해드릴까요?' 하고 여쭈어 원하시는 것과 함께 준비해 드렸다. 포스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런 미지근한 온도가 나는 참 좋다. 아마 기계로는 이런 온도의 물을 요청하기도, 제공하기도 힘들 것이리라. 앞으로도 포스 앞에서 많은 분들과 별 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주문을 하는 동안, 또 주문을 받는 그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은 내 웃는 얼굴이 건너편의 머무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상냥하게 만들어주길 원하고 또 바란다. 포스 너머에서 상대방의 눈을 보는 나도, 건너오는 말 하나하나에 미지근하게 따뜻한 에너지를 얻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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