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하기 참 좋은 날.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온 사람에게는 크리스마스가 그냥 공휴일일 뿐. 사실 모든 날들이란 것들이 그렇다. 의미를 두지 않으면 의미가 될 수 없는 것. 요즘의 기억들은 편리해서, sns에만 접속해도 몇 년 전의 오늘. 내가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으로 보여준다. 3년 전 크리스마스, 4년 전 크리스마스. 많은 기억들이 창 위에서 하릴없이 둥 둥 떠다닌다.
어떤 크리스마스가 가장 즐거웠는가, 혹은 가장 특별했는가를 생각해봐도 사실 이렇다 할 기억은 크게 없다. 산타를 믿지 않았던 꼬마는 산타의 존재를 겨우 인정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때에 맞춰 들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특별하지 않은 것이 또 있을까, 진부한 유행가처럼 들리는 캐럴이 때때로 쓸쓸하다.
올해의 캐럴은, 근무하는 매장에서 선 채로 들었다. 제목과 가사마저 대충 알고 있는 서사마저 닳도록 완벽한 곡들. 고객을 응대하며 듣는 캐럴이 흐르는 공기 위에는 누군가들의 시간이 함께 흐르고 있을 것이다. 캐럴이 울려 퍼지는 점 내 의자 위에는 누군가들의 감정과 누군가들의 흔적이 가득. 그마저도 이제 이브와 당일에는 들을 수 없더라. 크리스마스는 지나가고 있고, 아마 새해를 준비하는 것이리라. 익숙한 캐럴이 흘러나오지 않는 매장에 서서 가만히 모든 것이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릴없이 했다. 모든 것이 이렇게 화려하게, 그리고 때로는 있었다는 흔적을 진부하게 남기고 스쳐간다.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는, 1년이 다 가기 전의 길목에 아주 애매하게 위치해 있다. 누군가에게는 끝도 없이 영광스러운 날,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겐 의미 없이 심드렁한 날. 그러면서도 이전부터 그러기로 정해져 있던 날이었기 때문에, 날짜 자체의 상징성이 갖는 느낌을 다 무시하기 어려운. 12월쯤 되면 크리스마스가 있네, 느끼는 내가 그렇고 이쯤 되면 캐럴 들을 때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는 당신이 그렇고, 크리스마스니까 케이크라도 사둘까 생각하는 누군가가 그렇고.
그러니 그래도 크리스마스, 나는 네모창을 열어 아끼는 사람 몇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메리 크리스마스.' 빨간 날과 상관없이 밥물을 올리고, 능숙하게 식탁을 준비하고, 밥상을 무르고 적당히 해가 지면 또 허울 좋은 생산활동을 하러 나서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유 없이 그런 인사들이 필요한 날도 있다. 크리스마스는 적당한 핑계,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인사하기 좋은 말 한마디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