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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Aug 01. 2021

기대

'관계에서의 기대는 흔하게 이뤄진다, '로 시작하는 글을 몇 년 전 쓴 적이 있다. 기대라는 낱말을 떠올리자마자 이 문장이 퍼뜩 생각난 것은 아마도 기대, 하면 사람.부터 연관 짓게 되는 내 성향 때문일 것이다. 결국은 기대가 어떤 마음을 그르치게 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장을 딱딱하게 만들 수는 없다. 살아있어서 괴로운 거야, 하고 컷 속 만화에서 큰 눈을 빛내며 말하는 어느 만화 캐릭터의 대사가 다 허구처럼 보일 리 없지.


누군가에게 호기심이 들기 시작하면, 보통은 관계의 향방이 정해진다. 더 알고 싶은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나는 쭈욱 그 과정을 통해 관계를 맺어 왔다. 더 깊게 알고 싶은 사람과 더 많은 것들에 대해 소통하면서. 그러다 보면 '나라면 이럴 텐데.' 하는 마음이 가시처럼 생긴다. 내 생각처럼 상대방이 반응해주길 기대하거나, 기다리는 일도 생긴다. 이런 게 나쁜 거냐고 묻는 누군가에게 나는 '나쁘지 않아. 기대하는 건 당연한 거야. 강요는 아니잖아.' 하고 대답해주곤 했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결국 사람에게 기대하고, 실망하거나 마음이 아픈 일들을 습관처럼 반복하곤 했다. 기대하는 것이 죄 같았다. 결국 마지막은 다 나 같지 않으니까. 체념하기 일쑤였다. 그런 말들은 보통 끓다 만 미지근한 물처럼 처연했다. 


관계에 기대하다, 사람에 기대하다. 아니면 이럴 것이라는 어떤 장면에서 좌절을 반복하면서 이제는 기대를 품는 것이 온도가 오르면 자연스레 솟는 땀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안다. 이렇게 인정하는 순간부터 사실 '기대'라는 말이 어떤 온도든 품을 수 있다는 것도 최근 들어 알게 되었다. 


잊고 있었던 기억 중 최근에 다시 생각난 기억이 하나 있다.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라 최근까지 쭈욱 잊고 지냈다. 교복을 입던 시절, '내일이 있는 이유는 뭘까?' 하고 묻는 친구에게 '적어도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어서가 아닐까, ' 하고 대답했을 때의 기억이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어제도 넌 이렇게 웃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을 지금답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면 네 웃음이 사그락 만들어졌다 풀어지는, 바로 이런 순간일 거야. 하고 떠올렸던 것도 같다. 내일을 기대했던 날들이 있었듯. 어떤 기대도 무겁지 않다는 걸. 그리고 기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이제는 나 스스로에게 속삭여주고 싶다.


새삼스럽게,

그리고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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