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어릴 때,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참 자주 하는 꼬마였다. 친구들과 다투는 일이 있더라도 늘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게 익숙했던 것 같다. 엄격했던 아버지는 내게, 나의 욕구를 보는 법보다 남의 의견을 살피는 것을 먼저 가르치셨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때의 일기는 늘 누군가의 마음을 살피다가 지치고 눈치를 보던 시간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부모님은 남의 눈을 많이 신경 쓰시는 눈치였다. 어떤 모습들이라도 그게 '남에게 납득되는 모습' 이 아니면 불편해하셨다. 지금 와서야 그때의 부모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반듯하게 보이기 위해서, 빈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이 험난한 세상에서 최대한 씩씩하게 살기를 원하셨던 그 마음을 다 모른 체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꼭 쥔 손을 풀지 못한 채로 눈치를 보며 하고 있을, 30년 전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괜히 짠해지는 마음도 숨기기는 어렵다.
사실 갈등이 생겼을 땐, 언제든 '미안하다'는 한마디면 되었다. 내가 먼저 사과하면 갈등에 깊이 발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나는 때론 진심이 아닐 때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올렸다. 억울할 때에도 미안했고, 가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미안했다. 그래서일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친구를 마주하면 할 말을 찾지 못해 멀뚱히 사고가 정지할 때도 있었다. 어? 아닌데, 내가 먼저 미안해야 하는데.
어릴 때는 미안해요, 또 성인이 되고 나서는 '죄송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특별히 죄송할 일 없어도 '죄송해요'를 입에 달고 사는 나를 보면서 아직 미안의 늪에서 다 걸어 나오지 못했구나, 하고 쓸쓸할 때도 있었다. 12년을 내리 했던 사진을 그만두고 새로 지금 하는 일을 시작했을 때, 하루가 멀다 하고 죄송해요, 의 연속이라 돌아가는 퇴근길에 뭐가 그렇게 죄송했을까 싶어 눈물이 찔끔 솟을 때도 있었다. 그것은 습관처럼 돋는 알러지성 두드러기와 비슷한 것이었다. 손님에게 그렇게 저자세면 안 돼요, 하는 말을 들으며 아득해지기도 여러 번이었다. 카페에 가거나, 음식점에 가도 점원 분을 부르는 첫마디는 늘 '죄송한데요.' 였던 것 같다.
습관처럼 익숙해졌던 그 말에서 조금 가벼워져야겠다, 여긴 것이 아주 최근의 일인데. 서비스업을 하면서 내게 '죄송한데요, ' 하고 말문을 여는 고객을 만날 때다. 굳이 죄송할 필요가 없는 일에 죄송한데요, 하고 말문을 여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지 않기에. 최근의 나는 '죄송할 일이 전혀 아니에요. 언제든 말씀하세요.' 하고 더 따뜻하게 웃게 된다. 그런 말들을 입에 머금을 때마다 언젠가 눈치를 보았던, 정중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고 싶어서 첫머리에 조금 공들여 꺼냈던 그 말을 할 때의 나를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기분이 들어서.
조금 늦었지만 이제야 정말 필요할 때 그 말을 꺼낼 수 있을 것 같다. 미안할 일보다 감사한 일들을 조금 더 자주 만나고, 자주 하게 되면 좋겠다. 미안할 때 미안하다. 감사할 때 감사하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