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사실 나는 제법 혼자, 에 익숙한 사람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기도 하고. 독립하여 새로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여전히 혼자, 가 좋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라는 말이 품는 다정함에는 다른 말을 얹기 어렵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둘, 이라는 말을 입에 가만히 머금으면 참 다정한 음절이네, 생각하게 되곤 했으니까.
혼자에 대한 이야기도 언젠가 해 보고 싶지만, 우선은 '둘'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내게 둘이 따뜻할 때는 단언컨대 '무언가를 함께 먹을 때' 다. 맛있는 것을 앞에 두고 '맛있네, '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맛있네.' 하고 대답할 좋은 사람과 맛있는 시간을 보내는 걸 유난히 좋아해서일까. 혼자 무언가를 먹을 때에는 식탁 위가 허전해도 크게 상관없지만, 누군가가 마주 앉게 되면 차리는 모양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신경 쓰게 된다는 점이 조금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다. 물론 스스로를 챙겨 먹이는 것에도 가끔 에너지를 쓰지만,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혼자 먹으면 조금 허전하게 느껴진다. 마주 앉은 사람과 나누는 짤막한 대화들은, 그 공기까지 맛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여긴다. 오물오물 무언가를 씹다가 잠시 말에 공간을 두고, 그 틈새로 인해 식사를 천천히 하게 되는 것도 좋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핑과 퐁이 오가는 식탁이라니. 더할 나위 없는 풍경이다.
내가 써보니 좋아서, 하나 더 샀어. 하고 '둘'을 준비하게 되는 마음도 좋아한다. 어떤 물건을 살 때 누군가가 생각나서 하나를 더 집어 드는 마음. 스스로 써 보거나 경험해보고 좋았던 것을 골라 선물할 때마다, 내 취향과 선택을 누군가에게 부담 없이 알려주는 기분이 든다. 이런 내 선택을 상대방이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 때. 그 취향에 대해 '좋았다' 고 말해줄 때, 기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건, 둘이 하는 밤 산책. 여럿이 왁자지껄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밤 산책엔 역시 '둘' 이 좋다. 손을 잡고 걷다가 익숙한 풍경을 조금 다르게 여겨보기도 하고, 밤하늘에 대해서, 때론 달에 대해서 시시콜콜하게 떠들어 보기도 하고. 우연히 고양이를 마주쳐 보기도 하고. 그러다 불이 환하게 켜진 편의점에 들러 보기도 하고. 특별할 것 없지만, 나란히 걸으며 만나는 풍경들이 조금 더 특별해지는 건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이 새삼 따뜻하게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둘, 하고 따뜻한 음절을 입에 올려 본다. 사실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자연스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함께 '둘'로써 시간을 보낼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