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람
밤을 이루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지는 건 꽤나 필연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라디오를 켜 두고 무엇이든 쓰며 시간을 흘리던 열일곱 때보다는 다음날에 대한 겁이 조금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밤은 매력적이고, 또 많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임이 분명하다. 요즈음 가장 좋은 것은 바로 밤바람이다. 25도를 넘지 않는 기온. 이 정도라면 한정거장 전에 내려서 산책을 해도 좋겠다,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아끼게 된다.
최근 마감 근무가 조금 잦았는데 근무하면서 열심히 땀을 낸 뒤, 집까지 돌아오는 길을 더욱 애정하게 된 것도 바로 밤바람 덕이다. 출근을 할 때는 보통 조금 따뜻한 낮인데 조금만 걸어도 더울 때 출근해서 있는 힘을 다 해 뻘뻘 양껏 땀을 흘린 다음, 퇴근길에는 옷깃 사이로 들어오는 청량한 바람을 느끼면서 '아 살 것 같다.' 중얼거려보는 거다. 땀을 식히는 바람의 서늘함이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맥주 한 캔쯤을 홀짝이며 걸어가도 좋을 텐데, 하릴없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쓰고만 있어도 몸의 기온을 올리는 것 같은 마스크만 내리고 걷더라도 더 그럴싸할 텐데. 내년 이맘때 즈음엔, '맥주를 한 캔 마시면서 걸으면 더할 나위 없는 밤의 완성형이다.'라는 문장을 망설이지 않고 적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열린 베란다 너머로 시원한 바람이 드는데 오늘 밤도 역시, 밤바람이 좋다.
사실, 요새 밤바람보다 더 좋은 걸 못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