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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Sep 04. 2021

이름

사실 지금 지속하고 있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가늠하거나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일을 하면서 누군가의 이름이나 가명을 이렇게 자주, 많이 부르게 될지는. 알만한 커피 프랜차이즈 전문점, 음료를 핸드오프에서 낼 때마다 나는 누군가가 정해 놓은 닉네임을 부른다. 그것도 아주 우렁차고 큰 목소리로.


부르다 보면 평범하게 본명부터 의도치 않게 웃음이 터지는 이름이나, 가끔은 부르는 것을 망설이게 되는 이름도 간혹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일의 마무리는 늘 핸드오프에서 음료를 떠나보내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잘 완성된 음료의 주인을 찾아야만 한다. 임의대로 부여된 주문번호나 원래부터 그러기로 정해져 있었거나, 혹은 아닐 이름들을 나는 연거푸 부르거나 외친다. 물론 뒤에 '고객님'을 붙여서 부르게 되므로 조금은 경건한 마음이 들지만. 아직도 본명으로 닉네임을 설정한 고객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 참 묘한 기분이 든다.


본명 닉네임이라면 가장 흔한 종류가 이름 석자를 솔직하게 닉네임으로 설정한 경우다. 그게 아니라면 성만 떼고 이름만 설정한 경우. 또 다른 변형은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솔직히 적은 종류다. 세 가지 전부 부르면서 묘한 기분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하루는 흔하게 본명 석 자를 닉네임으로 설정한 고객님을 매장 바깥까지 들릴 것 같은 큰 소리로 찾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얼굴을 손으로 반쯤 가린 여자분이 총총총 오시면서 한마디 하시는 거다. '아, 닉네임을 바꿔야겠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서로 피식, 웃음이 터져서 그냥 웃어버렸다. '제가 너무 크게 불러드렸나요?' 하고 입술을 열었더니 '네 좀 부끄러워서...' 하고 음료를 들고 황급히 사라지시는 거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조금 귀여운 에피소드다. 사실 설정해 두고 닉네임을 잊으시는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에, 목 터져라 음료의 주인님을 찾아도 나타나지 않으시는 경우도 왕왕 있다. 닉네임을 본명으로 설정한 경우라면 사실 이럴 일은 거의 없지만. 본인의 본명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테니까.


처음 일을 시작하고, 바에 서서 콜링. 아, 그러니까 우리는 그 행동을 콜링이라고 부른다. 콜링을 할 때는 정말 매번이 새롭고 매번 떨리고, 본명 닉네임을 마주칠 때마다 늘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기분은 어떨까 를 늘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콜링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목소리만 그냥 왕왕 계속 커지는 기분이지만 여전히 가끔씩 생각하곤 한다. 내가 부르는 이 이름을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듣고, 어떤 기분이 들까. 


최근 매장에 자주 들르시는 고객님의 닉네임은, 얼마 전 떠나보낸 강아지의 이름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바에 서서 음료를 건네드리기 전 그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 먼저 떠난 아이의 행복을 같이 기원했던 적이 있다. 이미 멀리 떠났지만 누군가들에게 많이 불리기를 원해서 차마 바꾸지를 못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수 지은 그 닉네임을 들을 때마다 본인이 강아지가 된 것 같아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그분은 머쓱하게 웃으셨다. 나는 자주 불러드릴 테니 자주 오시라 말씀드렸고, 그분은 여전히 집과는 꽤 거리가 있는 우리 매장에 일주일에 몇 번이고 들르는 단골이 되셨다.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지어졌으면, 불려야지. 하고 생각하는 게 바로 이름이다. 김춘수 님의 꽃이라는 시를 아끼던 어느 시점부터 아끼는 누군가들의 이름을 참 많이 부르며 지내온 것 같다. 조금 고집스럽게도 앞으로도 이름에 대한 마음은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부르고, 불리고 싶은 게 이름 아닐까. 그러니 어떤 이름을 부르는 데 있어, 주저하지 않기로 한다. 가만히 내 이름 석 자를 띄워놓고 생각해보니 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불리는 내 이름은 참 근사하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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