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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Sep 03. 2021

여름의 복숭아


계절, 하면 기다려지는 것들이 있다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봄엔 프리지어, 늦가을엔 스웨터, 겨울엔 고구마. 같은. 특별히 여름을 조금 더 사랑스럽게 여기게 되는 건 복숭아를 기다리게 되는 마음 때문일 거다. 물렁한 복숭아냐, 딱딱한 복숭아냐. 에 대해 말이 많은데 의외로 나는 딱딱한 것을 조금 더 좋아하는 편이다. 사실 그건 탕수육의 부먹 찍먹만큼 중요한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사실 아무려면 어떻겠냐만, 잘 익어 과즙이 그득 나오는 황도도 좋지만 깎을 때 사각사각 소리가 나서일까, 단단한 복숭아에 더 마음이 간다. 단단한 복숭아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좀 많은데, 우선 적당히 단단한 것이 좋다.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적당히 2-3미리정도 들어갈 듯 말 듯한 경도의 것을 좋아한다. 솜털이 적당히 지문에 밸 것 같은 감각이 들면 더할 나위 없는 단단함이다. 잘 닦은 과일을 왼손에 잡고, 오른쪽 손으로 과도의 첫 '탁'을 베어 넣을 때, 그 절묘한 감각을 아낀다. 딱딱한 복숭아의 그 '탁'은 사과나 참외, 여타 다른 과일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고 연약하면서도 기품이 넘친다. 그러면서도 과일 껍질의 똬리를 만들어나가는 동안 '사각사각' 하는 소리를 내어주는 센스도 놓치지 않는다. 외유내강. 이런 느낌일 거야. 딱딱한 복숭아 하나를 앉은자리에서 깎으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여름의 복숭아에는, 그러니까 이를테면 여름의 딱복에게는 희한하게도 배울 것이 있다. 다 깎은 보오얀 복숭아를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으면서 나는 충분히 단단한 걸까, 하는 의미 없는 생각들을 해보기도 한다. 사실 아무려면 어떻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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