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볕
오후, 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품었었는지 모른다. 해가 중천까지 떴다가 기울어지는 시간들을 못내 아꼈던 건, 무엇보다도 길어지는 그림자를 볼 수 있어서였다. 아침, 밤과 다르게 오후는 조금 느지막이 표정을 바꾸는 느낌이 있었다. 조금씩, 서서히, 그리고 은근하게. 급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려 보면 오후가 가고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을 만나는 게 좋았다. 사진을 찍으면서는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빛의 방향이나 느낌들을 살폈다. 해가 긴 여름에는 오후 일곱 시 반에도 채도가 짱짱한 빛을 만날 수 있었고, 해가 짧은 겨울에는 해가 가장 가운데 떠 있을 정오에도 빛의 색이 찼다. 사진을 하는 동안에는 빛과 볕에 대해서는 유난히 많은 이야기를 해 왔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겨울, 너무너무 추운 오후에 볕이 드는 창가에서 아 따끈하다, 하고 중얼거려 보는 일이다. 기온이 낮은 겨울이어도, 오후 두세 시쯤에는 어김없이 볕이 드니, 따뜻한 방에서 그 볕에 살갗을 대어 보는 시간을 일부러 가져 보는 거다. '빛'은 빛의 조도에 대해, 밝기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볕'은 온도에 대해서, 그리고 그 온도가 만드는 따뜻한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니 어쩌면 오후의 볕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따뜻한 말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