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원이의 방은 낡은 가구 들과 외로움이 겹겹이 쌓인 공간이었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창가 오른편에 놓인 낡은 스탠드. 베이지색 천 갓은 세월에 바래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었고, 불빛은 은은하게 퍼지며 방 안을 겨우 밝히고 있었다. 벽지는 오래되어 군데군데 벗겨졌고, 그 아래엔 연한 회색 콘크리트가 드러나 있었다. 창문은 작고, 유리엔 미세한 금이 가 있었으며 커튼은 해가 바래 푸르스름한 빛을 띠었다. 침대는 벽 쪽에 붙어 있었고, 침대 옆 협탁엔 책 한 권과 반쯤 마신 물컵이 놓여 있었다. 방 한쪽 끝엔 오래된 장롱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닥은 나무 마루였지만, 몇 군데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고 그 위엔 작은 러그 하나가 깔려 있었다. 러그는 오래되어 가장자리가 해졌고, 리원이가 자주 벗어놓는 슬리퍼가 위에 놓여 있었다. 방 전체는 조용했고, 그 조용함은 때로는 평온했고, 때로는 으스스했다.
매일 밤, 어둠 속에서 오래된 스탠드 불빛 하나에 의지해 리원이는 잠을 청했다. 혼자가 된 외로움과 우울 그리고 불면증은 그녀를 매일 밤 깊은 뒤척임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날도 리원이는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뒤척이던 중, 시야 한쪽에 그림 하나가 들어왔다. 방 한쪽 끝에 있던 장롱문이 살짝 벌어져 있었고, 그 틈 사이로 어떤 작은 소녀의 그림이 반쯤 가려진 채 걸려 있었다. 그 그림은 리원이가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 낡은 거실 한쪽 구석에 조용히 놓여있었다. 누가 남겨두고 간 것인지,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림은 마치 그 집을 오래 지켜온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처음엔 그림을 치울까 고민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해바라기 작은 소녀가 자신을 붙잡는 것 같아 그녀는 결국 그림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림 속 작은 소녀는 하얀 피부에 가느다란 몸, 햇살처럼 노란 긴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해바라기 핀을 머리에 꽂고, 해바라기 무늬 원피스를 입은 채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뒤돌아보는’ 시선은 늘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런데 리원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소녀는… 근데 왜 나를 보고 있지? 분명히 뒤돌아 있는 그림인데…”
리원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림을 다시 바라보았다.
분명 그림 속 해바라기 소녀가 확실히 리원이를 향해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미소는 우울한 표정과 슬픈 눈빛으로 바뀌었다. 리원이는 얼어붙었다. 분명히 뒤돌아 있던 그림이었는데, 지금은 고개를 돌려 리원이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 미소 따뜻했고, 또 너무나 슬퍼 보였다. 따듯함과 슬픔의 공존되는 눈빛이었다.
어느새, 아침 밝아왔다. 리원이는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어젯밤의 일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헷갈렸다.
'그림...'
그녀는 조심스럽게 장롱 쪽으로 다가갔다. 그림은 여전히 뒤돌아 있는 모습이었다. 해바라기 소녀는 고개를 돌린 채,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원은 잠시 그림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웃었다.
‘꿈이었구나. 그 따뜻한 눈빛도, 슬픈 미소도… 모두 꿈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