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외계인

by 순진한 앨리스

어릴 적 저는 인사성이 바르지 못한 아이였습니다. 집에서도 학교를 가거나 올 때, 누가 시키지 않으니 딱히 "다녀오겠습니다"나 "다녀왔습니다"를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길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는 건 더 큰 부담이었습니다.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해야 하는데 어떨 땐 못 본척을 하고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마지 못해 인사를 하는 아이였습니다. 왜 그 "안녕하세요!" 라는 말 한마디가 힘든지
인사는 저에게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강요된 감정 노동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 후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빠는 마당에서 무언가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늘 하던 대로, 인사 없이 눈만 마주치고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아빠는 갑자기 엄청난 화를 내시는 겁니다.
"너! 인사도 안 하고 그냥 들어가려고 해? 어른을 봐도 인사를 안 해?!"

저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습니다. 평소 잔소리도, 간섭도 없던 아빠였습니다. 늘 무심한 듯 제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던 분이 갑자기 '인사성' 이라는 문제로 폭발하듯 화를 내시는 모습은 너무나 낯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속으로 생각 했습니다.. " 저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니다. 아빠 몸에 외계인이 침투했구나."
평소의 아빠라면 절대 저렇게 화를 내지 않을 껀데... 그리고 눈빛이며 아빠가 뭔가 낯설어 보였습니다. 겉모습은 우리 아빠인데 아빠가 아닌듯 했습니다. 아빠는 분명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저는 아빠를 경계하며 '외계인에게 붙잡힌 아빠를 어떻게 구출해야 할까?' 하는 황당한 상상까지 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아빠의 감정이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가장 비현실적이고 극적인 이유를 찾았던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그때를 돌아보니, 아빠가 화를 낸 진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동네 어르신들이 "저 집 아이는 어른을 봐도 인사를 잘 안 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을 것입니다.
아빠는 자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예의 바른 아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속상하셨을 겁니다. 또는 자꾸 반복되는 어르신들의 지적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날 한 번에 터뜨리셨던 것이겠지요.
그 호통은 외계인의 침입이 아닌, '내 자식이 세상과 잘 어울려 살기를 바라는' 지극히 평범한 아빠의 마음이었음을 이제야 이해합니다. 비록 그 방식은 조금 강렬했지만, 덕분에 제가 '인사'라는 사회적 약속을 다시 생각하게 된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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