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평소처럼 TV를 보고 있었다. 특별히 볼륨을 크게 튼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한밤중의 두드림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혼자 사는 내가 이 시간에 누군가 찾아올 리 없었으니 더욱 그랬다.
"누구세요?" 하고 묻자, 옆집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TV 소리가 커서 잠을 못 자겠어요. 줄여주세요.”
그리고 짜증 섞이 혼잣말이 살 짤 들려왔다.
“ 자지도 않고 이 시간까지 티브이 보고 있어."
평소와 다름없는 소리였고 잠을 방해할 정도로 그렇게 크지도 않았는데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물론 예민해서 조금의 소리도 방해가 될 수 있겠고, 참다 참다 말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은 짜증이 났다.
문득 몇 달 전 일이 떠올랐다. 내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현관 앞에 커튼을 달려고 잠깐 못질을 했을 때였다. 10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옆집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못질을 하루 종일 하네." 그 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참았다. 정작 옆집이 이사 와서 정리하느라 시끄러울 때도, 손자가 와서 하루 종일 울어댈 때도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다 몇 달 뒤, 문 앞에서 아주머니를 우연히 마주쳤다. 처음 얼굴을 보는 자리였는데, 생글생글 웃으며 "앞집에 예쁜 아가씨가 사는 줄 몰랐네. 앞으로 자주 봐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때는 마음이 풀리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날에는 무뚝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주머니는 마치 두 얼굴을 가진 사람처럼, 기분에 따라 태도가 달라졌다.
그 일을 떠올리니 다시 근심이 생겼다. 예민한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동시에 밑집 할머니가 떠올랐다. 피해를 봤다면 옆집 보다 더 많이 보셨을 텐데도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늘 웃으며 인사하던 분. 그 따뜻한 얼굴은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살다 보면 다양한 얼굴의 사람들이 곁에 머문다. 어떤 이는 예민하고 까다롭지만, 또 어떤 이는 늘 웃으며 다가온다. 결국 이웃과의 관계는 그들의 성격만큼이나 나의 태도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불편함 속에서도 웃음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