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옥스퍼드 올해의 단어 '뇌 썩음'
'뇌 썩음(Brain rot)'이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가 꼽은 2024년 올해의 단어로 최종 선정됐다. 드디어 무분별한 미디어와 쇼츠의 영향으로 뇌 기능이 저하되는 현상을 명명할 적당한 단어가 탄생한 것이다.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MBTI처럼 카테고리를 정해 우리의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가 명확해지긴 했다.
스트리밍 시대라고 불리는 만큼 내 취향에 맞는 정보와 콘텐츠는 단 몇 초만에 판가름되며 아무리 넘겨도 콘텐츠는 고갈되지 않는다. 모르거나 궁금한 것이 생겨도 그것을 찾아내는 것 역시 몇 초 소요되지 않는다.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서다. '뇌 썩음'이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비행할 때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기내식 트레이 사이즈가 바뀌면서 밀 카트 하나에 기내식이 총 40개 들어가도록 서비스가 바뀌었다. 기존 승무원들은 변경된 내용을 보고 스스로 업데이트를 했고 신입 승무원들은 애초에 변경된 내용으로 교육을 받았다.
어느 비행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한국인 신입 승무원이 있었고 나는 미드갤리, 그 친구는 뒷갤리를 맡았다. (한국인이 일을 잘해서 한국인만 보면 갤리로 배정하는 사무장들...) 아무튼 신입에게 갤리 포지션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최대한 도와주기로 했다. 뒤에서 콜이 왔고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카트에 밀 몇 개 들어가요?"
"네?"
"카트에 밀 총 몇 개예요?"
"아... 40개예요. 근데 큐진(바뀐 밀 서비스 이름)으로 트레이닝받지 않으셨어요..?"
"네."
부사무장이 무슨 일인지 물었고 나는 약간의 황당함을 표현하며 통화 내용을 설명했다.
부사무장은 말씀하셨다.
"젠지(Gen Z)들을 이해하려 하지 마. 그들은 우리랑 달라. 우리는 모르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책을 찾아보거나 그걸 알아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저들은 원하는 정보는 손쉽게 얻어왔기 때문에 그런 프로세스 자체가 없거든."
나는 정말 카타르항공 사무장, 부사무장님들께 많은 걸 배웠다. 그들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는 정말 놀랍다. 물론 아닌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왜 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며 이해를 하려 애썼는가. 그냥 나와는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정보를 습득하고 사고를 하는 방식이 아예 다르다. 그들은 그들이다.
인간이 고지능 동물로 구별되는 이유는 '판단력'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미안함과 감사함 등 상황을 판단하고 그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등정신작용을 담당하는 곳은 전두엽이다. 전두엽은 입력되는 정보에 의거하여 판단하고 사회적으로 적절한 행동을 수행하도록 기능하는 뇌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내가 원하는 정보만을 수집하고, 생각할 겨를 또는 필요 없이 짧게 지나가며, 지속적으로 도파민을 주는 콘텐츠들 속에 파묻혀 살고 있다. 가장 문제는 실제로 사람들과 대면해 표정과 상황을 파악하고 대화를 나눌 때 발생하는 피드백을 받으며 즉각 반영하는 뇌의 기능을 사용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뇌의 궁극적 목표는 우리의 '생존'이다. 우리의 생활패턴과 습관을 파악하여 에너지를 분배하고 결국 잘 쓰지 않는 기능은 그 효율성을 위해 스위치를 꺼버린다. 필라테스 레슨을 할 때 오른발부터 움직이라고 하면 나는 당연히 '왼팔이 나가겠지.' 생각하지만 간혹 '그럼 팔은 어디부터 나가요?'라고 묻는 어린 친구들이 있다. 척추를 기준으로 어깨와 골반의 당연한 교차 움직임이 우리 뇌에서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가 어렸을 땐 학교를 왕복 4시간 넘게 걸어 다니셨다고 한다.(밥대신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학교를 다니셨는데 어디서 그런 체력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아버지 손에는 휴대폰이라는 물건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요즘 걸어 다니는 사람들(걷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손에는 휴대폰 아니면 커피 등이 들려있다.
당신의 뇌는 어떤 기능을 지우고 있는가?
그래도 썩은 뇌기능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 사고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독서를 하면 좋겠지만 미디어 콘텐츠를 포기하기 힘들다면 숏폼대신 롱폼을 보며 생각이나 감상을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타이핑보다 손글씨를 쓰며 자기 전에 하루를 시간 순으로 정리해 보는 것도 좋다.
나는 사실 일상생활이나 업무에서 뇌 썩음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 두렵다. 나중에는 어떤 모습일지 겁이 난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읽고 쓰고 말하고 운동할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