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 좋아하는 동년배들 모여라!
페이스북 개인 타임라인에 편하게 썼다가 반응이 좋아 브런치로 옮기는 글입니다. 철저히 시청자의 입장에서 분석해 보았습니다. 어떤 자료 조사도 없습니다. 일명 내피셜입니다.
1.
최근에 TV를 보면 스타트업들이 연예인들과 함께 찍은 광고가 많이 나와 놀랍습니다. 피크 타임 대에도, 공중파 뿐만 아니라 jtbc나 tvn 같은 채널에도 꽤 많이 나옵니다. 그에 반해 유튜브 광고에는 오히려 대기업의 서비스/제품들이 많은 게 꽤나 흥미롭습니다.
2.
유튜브에서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면서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인기가요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그 때 당시 10대였던 사람들이 (현재 30대) TV로 대중문화를 소비하던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인기가요로 탑골공원을 만들었다면 지금만큼 이슈가 됐을까요? (2000년대 후반이라고 하면 원더걸스, 빅뱅, 소녀시대 시절.) 2002년만 되어도 인기가요는 재미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딱 1998 - 2001 여기까지가 재밌는 듯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멜론이 재작년에 2000년대 후반 노래들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릴리즈 했던 것은 유효타가 될 수 있었습니다. https://youtu.be/jebK50mID4A
2000년대 후반에 나온 음악은 그 자체로 추억 소환은 가능한데 '인기가요' 같은 시청각 자료로서는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만한 매력이 없으니 멜론 뮤비 정도가 적당했습니다.
그 때 당시를 생각해보면 저만 해도 대학생활 하느라 TV 본 기억은 거의 없고, 싸이월드, 음원 사이트를 통해서 음악은 줄기차게 들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멜론 뮤직비디오를 보고 갬성에 젖을 수 밖에 없고- 뮤비 바이럴도 꽤 잘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3.
이걸 달리 말하면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까지는 TV를 통해 대중문화를 '주입' 받았다면, 2000년대 후반을 넘어가면서는 각자 '취향'이라는 게 더욱 뚜렷해질 수 있는 환경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온라인 탑골공원을 보다 보면 기억 저편에 잠자고 있었던 가수들의 노래를 절로 따라부르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10대의 말랑말랑한 뇌에 고작 몇 가지 채널에서 나오는 가요 프로그램을 돌려 보다 보니 자동으로 입력되어 있는 메모리가 절로 활성화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싸이월드가 대세가 되면서는 '브금이 곧 그 사람의 상태나 아이덴티티를 표현해주는 수단'이 되었으니, 더 다양한 음악을 소비할 수 밖에 없었고 (프리스타일 Y부터 네미시스 솜사탕까지-) 그것이 곧 개성의 다양화, 취향의 세분화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니 날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란 20대, 10대 친구들의 컨텐츠 취향과 소비 패턴은 얼마나 더 다양해졌을지 말할 것도 없습니다.
4.
온라인 탑골공원에서 놀던 사람들이 EBS에서 만든 새로운 캐릭터 '펭수'로 넘어갔습니다. 2주 전 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타고 이슈가 된 EBS 연습생 캐릭터 펭수는 지금 구독자 16만을 돌파했습니다. (10월 9일 기준) 최근 며칠은 하루에 천명씩은 꾸준히 늘고 있는 듯 합니다.
펭수가 '아이돌육상대회'를 패러디한 'EBS 아이돌 육상대회' 즉 '이육대' 컨텐츠로 빵 뜨긴 했는데, 사실 그건 6개월 전에 채널 개설했을 때부터 쌓아온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오래된 컨텐츠들부터 쭉 정주행보면 약간 EBS 피디 & 작가들이 작정하고 TV 프로그램에서 못 했던 것들 쏟아 부은 느낌을 받습니다. 깨알같이 연습생 캐릭터를 살릴 수 있는 프듀 패러디 영상들부터 (머랭쿠키, 아이컨택 등) 오디션, 아이돌 체험, 아이돌 선배들을 만나서 조언을 듣는 등 진짜 별의 별 걸 다 해왔습니다.
거기다 펭수가 은근 춤도 잘 추고 랩도 잘 하는 데다가 재치도 있어서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하고, 가끔 성질도 내고 펭성 (펭귄 + 인성) 논란이 생길 만한 행동들도 하지만 한켠으로는 거대한 탈을 쓰고 얼마나 더울까 하는 측은지심도 자아내는 바 -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여러 재미를 느끼게 해줍니다.
그래서 댓글들을 보면 '퇴근하면서 EBS 채널에 들어와 있는 나 자신을 보니 놀랍다'라던가 '내 나이 29살. 요즘 내 동년배들 다 펭수 본다', 혹은 '어서 펭수 굿즈 내달라, 총알은 장전되어 있다'라는 식의 어른이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5.
종합해보면 유튜브 내에서만 봐도 컨텐츠의 유행이나 대박 컨텐츠가 나타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단 걸 알 수 있습니다.
와썹맨 - 워크맨 - 인기가요 온라인 탑골 공원 - 펭수 - 앞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나영석 PD의 채널 나나나 까지.. 모두 올 한 해 대박 났던 컨텐츠라는 걸 생각해보면 얼마나 빠르게 유튜브 트렌드가 변하는지, 실감이 되죠.
게다가 이런 대박 컨텐츠들은 기존 매체에서 컨텐츠를 만들어온 전문가들이 대거 디지털 컨텐츠 쪽으로 유입 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위 5개 컨텐츠만 해도 다 jtbc, tvn, sbs, ebs 소속에서 만들었죠) 전체적으로 유튜브 컨텐츠의 질은 향상되었으나, 그와는 동시에 시청자들의 눈높이 또한 같이 높아져 왠만한 기획력이 아니면 개인이 혼자서 하는 유튜브 채널은 살아 남기가 더 어려워진 것도 자명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유튜브는 블루오션 같은 이미지로 새로운 크리에이터들을 빨아드리고 있는데, 위와 같은 상황에서 유튜버로서 살아 남으려면 소통/진정성/성실함 같은 모범 답안 외에도 타겟을 쪼개고 또 쪼개 딱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카테고리에서 only one이 되는 게 그나마 가능성 있는 전략일 것 같습니다.
결론은 펭수가 짱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1일 1펭수 하세요! 펭펭!
글쓴이 지영킹은 페이스북커뮤니티 "스여일삶 -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여일삶은 대한민국 유일/최초/최대의 여성 중심 스타트업 커뮤니티로, 2018 Facebook Community Leadership Program에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선정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