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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킹 Feb 05. 2020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 생겼던 증상들

마음의 감기 치고 참 독했다.




저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아요.


이 말을 내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모른다. 우울증이나 수면장애, 화병 그런 것들은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남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올 수 있는 흔한 병. 나라고 걸리지 않으란 법이 없었다. 물론 감기치곤 너무나 독했지만.



우울증이 생긴 원인은 오랜 기간 심리적으로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다. 1년 가까이 지켜본 지인은 나에게 말했다. "가스 라이팅*을 계속 당하면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무섭다."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 출처: 위키백과)



나는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나 자신을 과신했다. 그 정도 괴롭힘에는 끄떡없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그러다 상대방의 말에 휘둘리면서 점점 나를 잃어갔고 상대방의 말처럼 모든 게 내 잘못, 나약한 내 탓, 애초부터 나는 아닌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의심으로 나를 가득 채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두말 않고 지원해주시는 부모님이 있었고, 대학교 졸업할 때부터 자존감이 튼튼한 남자 친구를 만나 오랫동안 연애하고 또래에 비해 이른 나이에 결혼도 했고.


이게 얼마나 운이 좋은 일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나 자신을 과신했던 것 같다. 언제나처럼 극복할 거라고, 지나가면 잊게 될 거라고. 그러나 1년에 지속된 가스 라이팅은 결국 나를 망가뜨렸다.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자존감 때문에 일상도 하나하나 붕괴됐다. 맨 먼저 나타난 증상은 무기력이었다. 나는 항상 하고 싶은 일이 많고 죽기 전까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삶을 살겠노라 꿈꿨던 사람인데 그냥 다 싫어졌었다. 심지어 회사에 나가기도,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보는 일도 힘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 온몸에 10톤짜리 추가 달려서 침대에서 내 몸이 떨어지지 않게 잡아당기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실제로 주변에 소홀해지기 시작했고, 이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지며 악순환이 되었다.


생활 습관도 불규칙적으로 변했다.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야식을 시도 때도 없이 먹었으며, 그러다 보니 늦게 자게 되고, 야식을 먹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도 더부룩하고 잠을 깊게 자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계속되었다. 그러니 하루 종일 피곤하고, 계속 무기력해지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원인을 찾기 시작했고, '아- 내가 무너진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구나, 어떤 사람이 나에게 영향을 너무 많이 주어서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이 변해버린 거구나-'를 서서히 알게 됐다.


그때부터 마음속 깊숙한 곳부터 분노, 원망, 증오의 감정이 밀려왔다. 도대체 그 사람은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화를 냈어야 됐는데 못 냈던 순간들, 그 상황과 주변의 공기, 그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 그런 것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러면서 밤에 잠을 잘 못 자게 되었다. 자기 위해서 수면 안대도 사고, 잠 잘 온다는 필로우 미스트도 뿌리고, 명상 앱을 따라 해보기도 하고, ASMR이나 화이트 소음이 나오는 유튜브도 찾아 듣고 별짓을 다 해봤는데도- 밤에 불을 끄고 누우면 너무 화가 나고 분해서 잘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난다거나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때 당시에 하지 못했던 말이 계속 생각나서 밤새도록 빈 노트에 편지 쓰듯이 할 말을 써 내려간 적도 있다. 잠을 그렇게 좋아하는 내가, 밤을 꼴딱 새우고 일하러 나가기도 했다.






마음의 병을 극복하는 과정도 여느 고난을 이겨내는 것과 비슷했다. 먼저 내 상태를 인지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 몸에서 보내는 이 신호들이 마음이 아파서 나타난 증상이었구나.


그것부터 인정했다. 그래 내가 지금 많이 힘들구나. 힘든데 살아내느라 참 애쓰고 있다. 이렇게 말이다.



그러고 나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히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누군가는 말하는 것 자체로도 많은 힐링이 된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함께 울어주고, 또 마음을 담아 나를 꼭 안아준 사람들과 함께 한 그 순간순간이 다 치유였다.



이후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들게 만드는 콘텐츠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재밌어 보이면 쉽게 빠져들고 자극적인 이야기에도 중독됐었는데 그런 콘텐츠들을 끊어냈다.


나를 웃게 하거나 내 마음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되는 콘텐츠들을 의도적으로 가까이했다. 영상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들을 보고, 노래도 좋은 것들만 듣기 시작했다. 이때 펭수가 진짜 큰 힘이 되었다. (진심ㅋㅋ)



지금, 오늘, 여기를 살아.



이 시기에 신기하게도 접점이 없는 두 사람으로부터 비슷한 말을 들었다. '마음 챙김'의 진리와 일맥상통하는 말인데 과거에 있었던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에게 두 사람 모두 '지금, 오늘, 여기를 살아야 한다'라고 말해주었다. 과거를 붙잡고 놓아주지 못하는 것 자체가 우울이라고.


그 말들이 쌓여서 나를 일으켜 세우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너무나도 힘들고 속상했지만, 지금까지도 종종 생각나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지만, 언제까지나 그 말들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고. 그것에 굴복하면 나는 주저앉아 못 일어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분노와 화의 감정보다는 연민과 용서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때의 나, 상대방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떤 부분은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절대 될 것 같지 않던 용서를 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를 좋아하거나 사랑한다는 건 아니다. - 나는 성직자가 아니다 ㅋㅋ- 그냥 그때의 그 상황을 바람에 날려 보낸 것뿐.)






받아들이고 나니 천천히 하나하나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무너져 내렸던 것만큼, 다시 차근차근 쌓고 싶었다. 그래서 내 마음의 소리에 따라, 나를 탓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먹고, 자고, 움직였다. 너무 게으름을 피우는 거 아닐까? 싶을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해보기도 하고,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생각을 리프레쉬해보려 노력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85% 정도 회복이 된 것 같다. 아직 100% 완벽하게 이겨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원래의 나다운 모습으로 많이 돌아왔다. input 자체가 버거워서 멀리하던 책도 다시 읽고 있고, 영어 공부도 시작했다. 무엇보다 야외 운동을 절대 하지 않았는데 2020년 들어 달리기를 시작했다. 마라톤 대회도 나가보려고 한다.


서서히 나의 루틴을 만들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챙기면서 일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움직이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 밖에 나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운동을 하려고 싫은 마음 한 번 더 짜내면서 움직였던 것이 우울감을 털어내는 데 효과적이었다. 나의 경우에는 과거의 기억이 맴도는 게 문제였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물론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그 시기를 통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는 것만큼 나를 망가뜨리는 사람은 빨리 멀리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런 사람에게 특히나 더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고도.


그리고 건강하고 행복한 일과 삶을 꾸리기 위해서 무작정 열심히 하고 달리기보다 내 몸과 마음을 잘 돌보면서 가는 게 꼭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나와 함께 일하거나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랬으면- 하는 바람도 커졌다.


아픔은 분명히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나처럼 아픈 사람들과 그 아픔을 주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졌다.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아픔을 안 겪는 일일 테니, 이 글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지금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면 주변에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를 얻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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