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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킹 Sep 19. 2022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한계에 갇히지 않는 창업가

스여일삶 로컬 여성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 제시키친 제시킴 대표님 편


여러분은 북한의 요리를 맛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한 민족의 음식이지만 아쉽게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지는 않는데요, 음식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지 못하는 문화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북한의 문화 역시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며 이를 보존하고 알리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이야기하는 제시키친의 제시대표님을 만나보았습니다.


'한반도를 잇는 음식'을 비전을 갖고 북한식 레시피를 기반으로 한 제품들을 개발해 세계까지 뻗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제시 대표님의 긍정 에너지 넘치는 인터뷰, 함께 살펴보시죠.



Part 1. 북한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방법, 

‘음식’이라면 가능할 거라 생각했어요.


Q. 안녕하세요, 먼저 대표님과 제시키친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020년에 창업한 주식회사 제시키친 대표 제시입니다.


제시키친은 ‘한반도를 잇는 음식’을 비전 삼아 북한 음식과 한국 음식을 접합해 많은 분들에게 북한식 레시피를 기반으로 한 제품들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시키친은 식품을 만드는 회사라고 생각하지만, 식품을 만드는 것과 더불어 문화 콘텐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국내뿐만 아니라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보존해야 하는 북한의 다양한 전통문화를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북한에는 여러 문화가 있는데 그 또한 우리의 문화적 자산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것들을 누군가 기록하고 남겨놓지 않으면 그대로 소실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라도 그 일을 해 나가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제시키친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Q. 제시키친의 비전은 ‘한반도를 잇는 음식’이라고 했는데 남북한의 차이가 음식 말고도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특히 음식을 주요 판매 상품으로 잡은 이유가 있나요?


무엇보다 제가 음식과 요리를 좋아해요. 그 이유가 큰 것 같아요. 사업도 그렇고, 모든 일은 하는 사람이 관심이 있어야 진행할 수 있잖아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갑자기 개발한다고 하면 이상하죠. 저에게는 음식이 그런 분야예요. 제가 잘 알고 좋아하니까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도 있고요, 자연스럽게 열정적으로 일하게 되더라구요.



Q. 음식 자체를 정말 좋아하고 애정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요. 혹시 그렇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대학생 때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지 고민하고 찾아보다가 이미 제가 음식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맛집 찾아다니기, 요리를 해서 집에서 파티하기, 심지어 음식 영상 보는 것도 좋아했죠. 그래서 그때부터 음식에 관심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 더 깊게 파게 됐어요. 



Q. 음식이나 요리를 좋아하는 것과 ‘창업'을 하는 것은 별개인데, 창업가의 삶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창업 전에는 북한이탈주민의 인권과 관련된 일을 했어요. 북한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에는 사명감이 있지만 어느 순간 북한이탈주민의 이야기를 하는 게 피곤해지더라고요. 청중들도 그걸 느끼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지루하지도, 지치지도 않는 일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쿠킹 클래스 진행 당시 모습)

나도 재미있게 일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찾다가 발견한 게 ‘음식'이에요. 음식은 인종, 정치, 종교를 불문하고 누구나 앉아서 평화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매개체니까요.


본격적으로 창업을 하기 전, 북한 음식 쿠킹 클래스부터 진행했어요. 클래스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음식을 만들고 같이 웃고 떠들면서 재미있게 일을 하게 됐죠. 코로나가 터지면서는 단순히 클래스만 말고 제품화를 해서 온라인 판매를 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 진행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지금 이렇게 사업까지 하게 됐네요. (웃음)



Q. 북한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알고 있어요. 혹시 어린 시절에 즐겨 먹던 음식 중 지금도 생각나는 음식은 어떤 건가요? 


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제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냉면이에요. 정확히는 ‘농마국수’라고 함흥냉면의 원형인데 감자녹말로 만든 국수랍니다. 냉면도 되고 온면도 되는 국수예요. 할머니가 명절이나 먹고 싶을 때 직접 만들어 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한국에 와서도 이 농마국수가 먹고 싶어서 냉면집에 갔는데 그 음식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할머니와 부모님, 가족을 떠올리게 되는 음식이 됐어요. 



Part2. 탈북도 했는데 창업을 못 하겠어?


Q. 북한이탈주민으로서의 삶은 사실 낯설거든요. 어떻게 탈북을 결심하셨는지, 또 남한에 와서 직접 경험해보니 남북한 여성들의 일과 삶은, 이런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더라… 싶은 부분이 있을까요? 


가장 큰 차이는 ‘자유가 있는 삶'이죠. 한국은 노력을 하면 뭐든 할 수가 있잖아요. 여행을 가고 싶으면 가고, 공부하고 싶으면 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면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고요. 또 반대로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근데 북한에서의 삶은 그렇지가 않아요. 이동에도 한계가 있고 해외 나가는 건 꿈도 못 꿔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평생 오지 않죠. 어릴 때부터 일 하며 돈도 벌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데 왜 이렇게 밖에 못 살까, 나는 왜 '여권'이라는 것도 가질 수 없는 걸까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어요.


19살 때부터 진지하게 삶의 계획을 고민했어요. 70살까지 산다고 하면 앞으로 5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이 나라에서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결론이 나왔죠. 그때까지의 제 삶은 제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면, 앞으로는 내가 내 삶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탈북을 하게 되었고, 계획한대로 한국에 와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Q. 남한 여성들을 보면서 느낀점이나 자극을 받은 부분이 있나요? 


남한으로 넘어와서 26살에 대학교 신입생이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졸업하는 나이인데 저는 대학 생활을 시작한 거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만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 답 중 하나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보려고 노력했죠. 그게 제 커리어를 개발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사회적 커리어에 대한 야망이 점점 더 커졌어요.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은 부분도 있죠. 예를 들어 어떤 친구가 영어를 잘하는데 저는 못해요, 그러면 미친 듯이 영어 공부를 하는 편이었어요.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스스로 부족하다 느끼면 부러워만 하는 게 아니라 ‘나도 해 봐야지’ 하고 실행해요. 저는 그런 타입이에요. 열심히 자신의 일과 삶에 투자하는 여성들을 보면서 저 또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방식으로 자극을 많이 받았습니다. 



Q. 창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점이 한계가 되지는 않았나요?

 

‘북한이탈주민’이라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창업은 북한이탈주민 청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청년한테도 그렇고, 그냥 이유 불문, 출신 불문 누구한테나 어렵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표들이 정말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왜냐하면 아무한테나 함부로 사업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까요. 가족이 있으면 가족들에게 털어두고 응원받을 수 있겠지만, 저는 힘들어도 혼자 삭이고, 무슨 일이 생겨도 저 혼자 해결해야 하니까 그 부분이 제일 어렵고 힘들어요.



Q. 그렇다면 이런 어려운 점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다양한 방식으로 창업의 어려운 고비들을 이겨나가고 있는 제시 대표님의 모습)


이상하게도 정말 어렵고 힘들 때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오히려 어떻게 하면 이걸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원동력이라기보다는 사명감도 크고, 제 성격상 시작을 했으면 열심히 해야 해요. 


사실 아직까지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한계에 부딪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탈북도 했는데 이걸 못해내겠어, 이 마인드가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그리고 주위에서 응원해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정말 많이 계세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믿어주고 지지해주시는데 어떻게 포기를 하겠어요.



Q. 정말 상상도 못 할 원동력인 것 같아요. 이 원동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 개발하거나 소개하고 싶은 이북 음식이나, 따로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을까요?


소스처럼 이미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은 아마존과 해외 수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향후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기업들과 협업을 해서 제시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더 확고히 하고, 더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즈니스 모델을 조금 변경하고 있는데요, 생산뿐 아니라 콘텐츠 쪽에도 집중하려고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콘텐츠 쪽에는 많이 집중을 못했다면 앞으로는 이쪽에도 더 힘을 쏟고 싶습니다.



Q. 제시키친의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 같은 게 있을까요? 


단기적으로는 올해 아마존에 제품을 입점하는 거예요. 올해 준비를 해서 늦어도 내년 초반에는 아마존에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시키친 두부밥과 함께!)


장기적인 목표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제시키친의 소스를 한 번만이라도 먹게 되는 날이 오도록 하는 거예요. 또한 그 목표를 통해 단순히 북한이탈주민, 북한의 이야기가 아닌 북한이탈주민이지만 결국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이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스토리를 알게 되는 날이 왔으면 해요. 


제시키친은 거기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게끔 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아무런 공통점 없이 대화를 하는 것보다 ‘예전에 북한 음식 소스 먹어봤어.’라는 이야기로 물꼬를 틀 수 있는 그런 도움이 되고 싶어요.



Q. 그렇다면 대표님만의 개인적인 비전은 어떤 건가요?


지속적으로 기업을 운영해 나가는 것이 제 개인적인 비전이에요. 기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함으로써 많은 남북한 청년들, 특히 북한이탈주민 청년들이 저를 보면서 꿈을 갖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창업을 시작할 때는 아직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먼저 한 사람이 있냐, 없냐는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대표님들이 흔히 많이 느끼는 건데요, 비즈니스 모델을 피칭하면 이전에 그걸 했던 기록이 있냐, 했던 사람이 있냐 그래서 반응이 어떻냐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데 저는 그런 게 아예 없다 보니까 정말 맨땅에 헤딩하듯이 진행했어요. 


(2019년 창업 경진대회 때의 모습)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저의 경우를 보며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더 자신감을 갖고 살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어떻게 보면 이게 개인의 작은 목표 중 하나고 희망사항이에요. 그런 이유 때문에 창업가 분들의 멘토링을 열심히 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과 멘토링 혹은 피드백을 받아서 지금의 제시가 있다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는 내가 베풀 수 있는 걸,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른 분들에게 돌려 드리고 싶어요. 그게 제 개인적인 목표이자 사명입니다. 



Q. 해외 이주민이나 대표님처럼 한국에서 새로운 삶 또는 창업을 꿈꾸거나 고민하고 있는 여성들한테 응원의 한마디 한번 부탁드릴게요. 


사업은 누구에게나 다 힘들고 어렵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방법을 찾는 데에 집중하면서 그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스스로를 믿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북한이탈주민이라서, 여자라서, 외국인이라서 힘들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에게나' 힘들다고 생각하면 어려운 부분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극복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 


‘누구에게나' 힘들지만, 또 ‘누구나' 노력하고 극복해나가잖아요? 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고요. ‘제시도 했는데 나라고 못 하겠어?’라고 생각하세요! (웃음) 




제시 킴 대표님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내용에서도 느껴지지 않나요? 늦은 시간에 진행된 인터뷰였는데도 끝까지 기운 넘치셔서 두 에디터 역시 즐겁게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저도 했는데 못할 게 뭐가 있겠어요.’라고 하신 것처럼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갖고 계셔서 그걸 전달받은 인터뷰였습니다. 


낯선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공통되는 어떤 사소한 계기나 주제가 있다면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텐데요, 이처럼 제시키친의 제품이 한 사람의 단편적인 면모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된다면 좋겠다는 목표는 아주 인상이 깊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되는 날이 그리 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터뷰 진행 및 편집: 스여일삶 이으뜸 & 이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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