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서른 발표를 하고 나서..
2월의 마지막 수요일, 30대를 위한 컨텐츠 플랫폼 <월간서른>의 연사로 초대되었습니다.
<월간서른>은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30대들을 보여주는 곳인데요,
(참고: 월간서른 홈페이지 - http://www.monthly30.com )
2월에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고 일한다는 것>을 주제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날, 자리에 오신 분들께 말씀드렸지만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고 일한다는 것"에 대해 발표 준비를 하는 게 부담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고 일하는 사람이 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저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고 일해왔던 날'보다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고 일해야 할 날'이 더 많은 사람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일과 삶'이라는 키워드를 따라 길을 걷고 있는 저만의 스토리가 있기에 월간서른에서 초대를 해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고 일해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정리해서 이야기드렸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분들이 이미 SNS나 브런치에 후기를 많이 올려주셨지만, 발표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꼈던 점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2017년 11월부터 페이스북 커뮤니티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여일 삶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일했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입니다.
스여일삶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던 운영진 분들의 도움과 여러 멤버 분들의 참여에 힘입어 2018년에는 페이스북에서 선정한 글로벌 100대 커뮤니티 중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원을 받게 되기도 했습니다.
(스여일삶 페이스북 그룹 바로 가기: https://www.facebook.com/groups/StartupWomenInKorea/)
저는 2016년 한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일하면서 결혼 준비를 했습니다.
그때 다녔던 스타트업은 소위 말하는 스타트업의 장점들을 다 갖춘 곳이었어요. 정말로 자율적으로 일을 하고, 수평적인 분위기였으며, 기술력도 있고 매출도 꽤 나고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 괜찮은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 준비를 하고, 또 결혼을 하는 과정까지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 누구도 저에게 압박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좋은 와이프가 되고 싶다"와 "스타트업 일잘러가 되고 싶다"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 했죠.
결혼하고 6개월이 될 때까지 탈모까지 생길 정도로 꽤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제가 더 힘들었던 건 위와 같은 욕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던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공감대의 부재가 컸던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에서 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임신을 하거나 출산을 하는 등) 그 이후의 삶이 상상이 잘 안 된다는 게 저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가까이에 여성 선배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런 고민 상담을 할 텐데, 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죠.
그래서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거든요.
커뮤니티가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었던 초반에는 1:1이나 소규모로 사람들을 만났는데, 300명이 넘어가자 모임의 형태로 전환을 해서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모임을 한 번 할 때마다 10~15명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모일 때마다 꼭 한 번씩 '눈물 타임'T^ T이 생기더라고요.
아마 제가 스여일삶을 만들기 전에 느꼈던 갈증과 비슷한 답답함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겠죠?
이렇게 매번 모이고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스타트업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룹 안에서만, 모임에서만 공유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큰 자리에서도 얘기할 기회들이 생겼죠.
더 많은 사람들과, 더 큰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여성 분들의 목소리를 나누다 보니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내 문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모두의 문제'였다는 거죠. 그리고 그런 자각을 하는 데에는 커뮤니티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스여일삶을 통해 많은 스타트업 여성 분들과 대화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예요.
제가 처한 상황이 제가 이상해서, 혹은 우리 회사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페이스북 커뮤니티 리더십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전 세계 46개국에서 온 커뮤니티 리더들을 만났을 때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아, 여성의 일과 삶에 관련된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스타트업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인 거구나!
오랜 시간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다 보니 여러 기회와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일하는 여자들을 위한 멤버십 커뮤니티에서 일하게 된 것도 그중 하나였죠.
'일하는 여성'이라는 공통된 키워드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 회사를 설립하는 순간부터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가지고 있던 최초의 문제의식 -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일과 삶을 최소한 적당히~ 조절하고 또 제대로~ 할 수는 없을까? - 에 대한 갈증을 놓기가 힘들었고,
결국 퇴사하고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 커뮤니티 운영에 좀 더 매진하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월간서른>에서 발표 후에 많은 분들이 SNS에 후기를 올려주셨는데요, 저에게 특히 와 닿았던 한 줄은 "퇴사는 회사를 떠나는 게 아니라 나의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외국의 창업가들의 책을 봐도 창업을 시작하기 전에 사이드 프로젝트나 사이드 허슬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그 규모가 어느 정도 커졌을 때, 혹은 어떠한 시점에서 본래의 job에서 원래 하고 싶던 일로 넘어가라는 조언들을 많이 하잖아요.
저 역시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준비를 해왔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여일삶 페이스북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경험하게 된 많은 것들이 저만의 길을 만들었고, 이제 거기에 집중을 해야 될 때가 된 것 같아 그동안 다녔던 회사에서는 퇴사를 선택하게 된 것이죠.
그동안 저는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아니, 때로는 맞서지 않고 피할 생각부터 하기도 했고요.
경영학 비전공자인데 마케팅 일을 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스터디나 강연을 들었고,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외국계 회사에 지원하거나 외국에 가는 일은 상상도 안 했죠.
그러나 이제는 핑계를 대면서 뒤에 숨거나 맞서지 않는 선택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마주하고 부딪히고 극복해보려고요.
그 한 발짝 내딛는 것이 지금의 저에게는 퇴사라는 선택이었어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저 또한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에요. 내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싶을 때도 있지만요, 지금은 끝까지 한 번 가봐야겠다, 결과가 어떻든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끝을 보는 게 낫겠다, 싶습니다.
정말 정말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옆에서 응원해주시고 함께 해주시고 흔쾌히 도움도 주시기에 이 길이 외롭지만은 않아요. 아니, 때로는 외로워지겠지만 감수해야죠.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에 바칠 제 30대, Keep going 하는 과정을 앞으로는 더 열심히 기록으로 남겨보려 합니다.
내 인생, 쫌만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