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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몽드 Jun 27. 2019

고식(姑息): 잠시 동안 한숨 돌리다

01.

2019년 2월. 숨이 안 쉬어지다.


지난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나는 참 성실하게 살았다. 주어진 일에 잘하고 싶었고, 주어진 역할에 충실히 하였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온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고 성취하는 데 있어서 약간의 인내와 끈기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웬만하면 다 이루어 냈다.




답답함을 처음 느꼈다.

처음에는 나 스스로가 앞을 못 보는 두더지 같다고 생각했다.

앞도 제대로 못 본 채 땅만 파는 두더지.

어찌어찌 땅을 파서 원하는 종착점에 도착했었는데, 이제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아무리 파도 앞으로 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높이도, 넓이도, 깊이도 알지 못하는 칠흑 같은 땅 속에 그대로 갇혀 버린 두더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함은 더 강해졌다.





두더지라고 느낀 뒤, 약 한 달 뒤에 그것이 왔다.

패닉어택. 공황발작.

처음에는 그 신체적 반응에 그냥 압도당했다.

잠이 안 오고, 손발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무엇보다

숨이 안 쉬어졌다.




그날 밤, 그 증상이 얼마나 지속됐는지는 모르겠다.

잠시 충격이 약해졌을 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주 큰 소리가 들렸다.


'이건 아니다.'






숨을 쉬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야 한다.

격렬하게 달리기를 하다가 심장이 터질 것 같을 때가 있다. 누군가는 그 한계를 넘었을 때 더 성장한다고 하지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반응에는 이유가 있다.


'멈춰. 쉬어.'


내 몸이 보내는 신호, 내 마음이 말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잠시 동안 한숨 돌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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