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구를 매우 좋아한다.
맛있는 살구에서는 꽃 향기가 난다. 꽃 향기를 잔뜩 머금은 달콤함과 부드럽게 퍼지는 상큼함이 좋다. 아주 잘 익었을 때 손으로 반을 '찢어'먹는 느낌은 짜릿하다.
살구의 향과 맛도 좋지만 맛있는 살구를 먹었을 때 느껴지는 '알참'이 살구를 더 찾게 만든다.
마트나 시장에 가면 살구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살구를 구입할 때 약간의 밀고 당김이 있다. 흔히 살구 하면 떠오르는 말이 '빛 좋은 개살구'다. 주홍빛에 털이 보들보들하게 덮인 귀여운 살구는 시각적 배고픔을 극도록 자극한다. 그런데 먹어보면 눈이 보았던 기대감에 훨씬 못 미치는 밍밍함과 머리가 찡 할 정도의 시큼함을 경험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겉만 예쁘고 실속 없는 것을 거부하자'라는 강한 마음가짐이 생긴다.
올해 '하코드'라는 품명의 살구를 발견했다. 엄마의 단골 과일가게 사장님한테 하코드 살구만 적어도 3박스는 샀을 것이다.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큼직하고 향기로운 하코드 살구 한 입 베어 물면 온 몸이 싱그럽게 깨어난다. 보기에도 예쁘고 탐스러울 뿐 아니라 살도 토실토실하고 과즙이 넘쳐흐르는 살구를 먹다 보면 이 살구를 먹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살구 살을 다 먹으면 접시에 깨끗하게 분리된 씨 하나가 남는다. 살구 하나당 씨 하나. 접시에 놓여 있는 씨에서 왠지 모를 당당함이 느껴진다.
씨를 감싸고 있던 화려하고 달콤한 코트는 없다. 향긋한 꽃 향기도 서서히 사라져 간다. 눈 앞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민낯으로 씨 하나가 있다. 그런데 그 민낯의 씨는 당차게 '알맹이가 있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내면에 향기로움과 달콤함, 그리고 감사함으로 채울 것. 나 자신뿐 아니라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내 삶의 과육이 사라져도 알맹이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 하루, 내 삶의 살구를 가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