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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몽드 Jul 07. 2019

알맹이가 있는 삶


나는 살구를 매우 좋아한다.

맛있는 살구에서는 꽃 향기가 난다. 꽃 향기를 잔뜩 머금은 달콤함과 부드럽게 퍼지는 상큼함이 좋다. 아주  잘 익었을 때 손으로 반을 '찢어'먹는 느낌은 짜릿하다.



살구의 향과 맛도 좋지만 맛있는 살구를 먹었을 때 느껴지는 '알참'이 살구를 더 찾게 만든다.


마트나 시장에 가면 살구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살구를 구입할 때 약간의 밀고 당김이 있다. 흔히 살구 하면 떠오르는 말이 '빛 좋은 개살구'다. 주홍빛에 털이 보들보들하게 덮인 귀여운 살구는 시각적 배고픔을 극도록 자극한다. 그런데 먹어보면 눈이 보았던 기대감에 훨씬 못 미치는 밍밍함과 머리가 찡 할 정도의 시큼함을 경험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겉만 예쁘고 실속 없는 것을 거부하자'라는 강한 마음가짐이 생긴다. 



올 초여름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하코드 살구.


올해 '하코드'라는 품명의 살구를 발견했다. 엄마의 단골 과일가게 사장님한테 하코드 살구만 적어도 3박스는 샀을 것이다.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큼직하고 향기로운 하코드 살구 한 입 베어 물면 온 몸이 싱그럽게 깨어난다. 보기에도 예쁘고 탐스러울 뿐 아니라 살도 토실토실하고 과즙이 넘쳐흐르는 살구를 먹다 보면 이 살구를 먹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살구 살을 다 먹으면 접시에 깨끗하게 분리된 씨 하나가 남는다. 살구 하나당 씨 하나. 접시에 놓여 있는 씨에서 왠지 모를 당당함이 느껴진다. 

씨를 감싸고 있던 화려하고 달콤한 코트는 없다. 향긋한 꽃 향기도 서서히 사라져 간다. 눈 앞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민낯으로 씨 하나가 있다. 그런데 그 민낯의 씨는 당차게 '알맹이가 있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내면에 향기로움과 달콤함, 그리고 감사함으로 채울 것. 나 자신뿐 아니라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내 삶의 과육이 사라져도 알맹이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 하루, 내 삶의 살구를 가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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