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fulness | 마음챙김]
손편지를 쓰시나요?
모바일로,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게 익숙하다 보니 손으로 글을 쓰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일기도 쓰고,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과 구절을 필사하다 보니 손으로 글을 자주 쓰는 편입니다. 하지만 일기를 쓰고 필사하는 작업과 손으로 직접 편지를 쓰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편지를 쓰면 그 편지는 상대방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다시 돌려달라고 하지 않는 한, 제 손을 떠난 편지는 오롯이 상대방을 위해 남습니다.
얼마 전에 남자 친구와 기념일이었습니다. 기념일 전날 밤에 책상에 앉아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꺼내고 펜 뚜껑을 열었습니다. 남자 친구와 저와 그간 있었던 이야기도 적으며 편지를 써내려 갔습니다.
모든 글은 과거의 기억과 느낌이 재구성된 것입니다. 한 달 전 함께 마신 커피와 디저트의 맛을 정확히 묘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 당시 함께 있으며 느껴진 따뜻함과 달콤함이 기억에 남아서 편지 속 글자로 살아납니다. 평소에는 잊고 있지만, 처음으로 손 잡은 날과 같이 강력한 경험은 더 큰 느낌으로 남아 오랫동안 제 기억 속에서 숙성되고 재구성되어 기록되고, 환상적인 기억으로 남습니다. 그렇게 알콩달콩한 말과 사랑을 듬뿍 담으며 글을 써내려 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편지를 쓰다가 문뜩 낯선 느낌이 들었습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은 남자 친구인데, 편지의 주인공은 바로 제 자신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남자 친구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남자 친구와 저와의 '관계'에 대해, 제가 느끼는 것을 재구성하여 쓰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상대방을 생각하며 쓴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편지를 쓴다는 것은 상대방과 저와의 관계 안에서 제 느낌과 목소리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편지를 쓰면서 편지를 받는 대상 자체만 생각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 생각하면, 남자 친구가 읽는 편지의 주인공은 바로 저였습니다.
손편지의 특별함은 정성이 담겨있다는 것이겠지요. 편지를 받은 사람은 편지를 쓴 사람의 정성을 느낍니다. 하지만 편지를 떠나보내기 전, 손편지를 쓰며 나를 더 명료하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쓰는 속도에 맞춰 생각이 이어지고 구성됩니다. 타자를 칠 때 보다 느리지만, 속도가 느린 만큼 내면의 감정과 생각이 더 정돈되고, 상대방과 관계, 상대방에 대한 내 마음이 잘 보입니다.
손으로 편지를 쓰며, 나를 써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