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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몽드 Jun 27. 2019

Tangible: 손으로 만질 수 있는

04.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반작용


항상 걸어왔던 길, 항상 익숙했던 환경과 풍경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내가 두 다리도 서 있던 땅도 사라졌다. 두 발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배경은 무(無)로 변해버렸다. 

자유로움은 가벼움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런데 이 가벼움이 주는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벼움은 주변의 바람, 내면의 생각의 파도에 아주 쉽게 휩쓸려버리기 때문이다. 사람은 방향감각을 잃으면 당황하고 불안해진다. 


불안해졌기 때문에, 안정감을 되찾고 싶은 반사작용이 일어났다. 눈에 보이고 확실한 무언가를 얻고 싶었다. 소비를 한다거나, 나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한다거나, 돈을 벌려고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거나. 이 마음이 1주일 정도 갔다.

나는 이 마음에 이끌려 서점에 갔다. 단지 책을 사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불안함이 나를 지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서점에 갔다. 






나는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에세이 코너는 보지도 않았을뿐더러 감상 팔이나 하는 책이라고 조금 무시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 책들이 왜 항상 베스트셀러에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에세이 코너를 지나 보니 내 처지와 내 마음, 내 목소리를 글로 써둔 책들이 무수히 많았다. 이럴 수가! 쭉 펼쳐진 책 제목들을 보면서 속으로 그리고 겉으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크으.'  그 많은 책 중 몇 권 샀던 책이 바로 사라 윌슨의 '내 인생, 방치하지 않습니다', 소노 아야코의 '약간의 거리를 두다', 그리고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부터 에세이 책을 읽고, 책의 구절을 메모하는 습관이 시작된 것 같다. 보이지 않는 나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 내 감정과 느낌, 생각을 글로, 텍스트로 쓰는 것. 손으로 느끼고 볼 수 있는 확실함을 찾고자 했던 나의 절박함이자, 모든 인간의 본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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