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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몽드 Jun 27. 2019

무지(無知): 알지 못함을, 알다

05.

이제서야 알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가 되었으니 햇수로 벌써 7년째다. 서로 다름이 있지만 누구보다도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친구다. 

그 친구(JS)는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의 몇 배의 고통을, 불안을 '이미' 경험했다. 



JS는 나에게 종종 '너는 참 안정적이어서 좋아'라고 말하며,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보다 큰 사람들(언니나 이모,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어 하는 느낌으로 나와 이야기를 종종 나누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그 어린아이가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아이도 아니고 눈도 안 보이는 두더지 한 마리였다. JS는 큰 어미 두더지처럼 나에게 "그 느낌 뭔지 너무 잘 알아"라고 말하며 나를 이해해주었다. 그 힘듦을 이해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가 베프 아니랄까 봐 똑같이 그랬다.



그날 JS와 오랫동안 이야기 한 뒤, 느낀 것들이 있었다.



첫째는,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내가 불안을 느끼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 평생 성실하고 계획적으로 살아온 나에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그려진다면 패닉이 오기 마련이다(이 메시지는 사라 윌슨의 '내 인생, 방치하지 않습니다'에서 나왔음). 당장 이틀 안에, 아니 5분 안에 엄청나게 중요한 발표를 해야 한다와 같은 미래의 '덩어리'가 도저히 현재 내 상태로는 컨트롤이 안되기 때문에 불안이 오는 것이다. 그런 당혹감은 현재를 잊게 만든다. 현재를 잊게 되면 모든 순간, 모든 공간과 상황에 나 자신은 없다. 그저 빈 껍데기일 뿐이다.

현재를 잊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삶에 충실하고 내 삶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뜻대로 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나의 현재, 지금으로부터 더 멀어져 가는 방향이었던 것이었다. 

모르고 살았고, 알게 되었다.




둘째는, 이제는 나의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것. 지금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아 공부했다. 사회심리학도 내가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그 분야를 '잘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지식을 배우는 것과 지식을 생산해내는 일은 다른 일이다. 나는 지식을 생산하는 일을 잘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생각할 때 JS가 말했다.

"이제는 꿈, 열정을 넘어서 내가 평생 가지고 살 수 있는 도구를 연마해야 하는 것 같아." 

나에게 평생 가지고 살 수 있는 도구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먼저 그 도구를 찾고, 그다음으로 그 도구를 '연마'해야 한다. 

그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닌 것을 이제야 알았고, 해야 되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으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셋째는, 내가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것. 나만 이렇게 열심히 살고, 넘어지고 울고 힘들어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남들보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는데 괜히 겸양 떨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가 힘들고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들 아닌 척, 꾹꾹 참고 살고 있었다. 내 진짜 감정과 생각은 뒷전이고 남들에게 멋있고 강하게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나 자신이 망가지는 것은 모른 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나 특별하지 않음을 인지하는 순간, 자존심은 조금 깎여도, 내 주변 사람들과 연결됨(connectedness)이 생겨났다. 





'내가 왜 몰랐을까'라는 생각은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킨다. 바보 같음, 후회, 부끄러움, 미련함 같은 감정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왜 몰랐을까'의 '왜'는 사라진다.

그리고 '내가 몰랐구나'로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몰랐구나. 알지 못했구나.





그리고

'이제서야 알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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