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선으로 삶을 그리는 사람
매거진 B의 단행본 시리즈 '잡스(JOBS)'에서 다루는 세 번째 직업은 건축가다. 에디터, 셰프, 그리고 건축가. 이들 모두 JOH가 영위하는 주요 비즈니스와 맞닿아 있는 직업들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된 매거진 B의 직업 탐구 여정이 울타리 너머 낯선 세계에 다다를 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책의 표지가 전하는 기분 좋은 질감을 느끼며, 나는 벌써부터 잡스 시리즈의 다음 직업을 상상하고 있었다.
이번 시리즈 역시 조수용 발행인과의 대화에서 출발하여 존 포슨부터 위고 아스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다양한 건축가를 만나 '건축가'라는 직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영화 <콜 미 바이 유어네임>의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와의 인터뷰가 포함되었는데, 이는 그가 영화 제작을 넘어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도 '건축가'와 '영화감독'이라는 두 직업이 여러 공유점을 지닌다는 점 또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입체적인 시선과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사람을 둘러싼 스토리. 낯설면서도 비슷한 시선으로의 변주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탐구의 여정에 작은 재미를 더한다.
이차원에 불과한 면적에 시간을 더해
사차원으로 관점을 전환하면
그 안에서 숨 쉬며 사는 사람이 보입니다.
이번 시리즈를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이 '건축가로서의 사명감'이라는 커다란 물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건축물을 완성된 하나의 독립적 존재로 보지 않고, 이를 맥락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도시(환경)와 호흡하는 건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시에, 이들은 건축가라는 직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한다. 광고라는 일을 하며 내 직업과 작업물이 '사회의 일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던가. 그들의 고민은 맡은 일을 작은 일로 치부해버리기 일상이던 내게 직업과 사회의 관계성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건축은 사람을 바탕으로
장소를 만드는 행위입니다.
한편, '건축가'편의 또 다른 키워드로는 '한계'를 뽑을 수 있다. 건물 하나를 짓는 행위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수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건축가가 이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제약은 건축적 창의성의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즉, 건축가는 이러한 '한계'에 도전하고 이를 극복함으로써 건축이라는 행위에 숭고한 '존재 의미'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건축가에겐 지루할 정도로 관찰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며, 건축주를 비롯해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발견하며, 설득해 나가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요구된다.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건축 외에도, '일'이라는 보편적 행위에 대한 건강한 태도/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중간 부분에 삽입된 조재원 건축가의 <건축가의 힘과 마음>이라는 에세이가 인상적이었다. '좋은 건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좋은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았다는 그의 고백에 무척 공감되었다. 나 또한 '성장'의 단서나 가능성을 내가 하는 '일'에서 찾는 사람으로서, 늘 마음속에 '좋은 브랜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살아왔다. 취준생 시절에는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그처럼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여러 기업에 제출해보기도 했다. 그런 내게 "일하는 사람은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한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백 마디 격려를 넘어선다"는 그의 말은 흐리멍텅한 눈으로 노트북 앞에 앉은 내게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준다.
자신의 업이 지닌 영향력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이를 자주 꺼내어 환기하며, 결국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는 건축가들. 그들처럼 나의 업에 대한 능동적 수행자가 되고 싶다.
내게는 '좋은 건축'과 '좋은 삶'이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