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TP가 우리의 가치관에 미치는 영향
ChatGPT(챗GPT)가 광풍이다. 너도 나도 챗지피티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ChatGPT를 다루고 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해서, 모 패친에게 답변 했던 내용으로 ChatGPT가 앞으로 남길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우선, 챗GPT가 뭔가를 알아서 대답을 하는건 아니다. 챗GPT의 기본이 되는 NLP(Natural Language Process)가 기본적으로 기존의 (알고있는) 정보를 주는게 아니라, 기존에 학습한 내용을 기반으로 관련 사항들을 "조합" 하는 원리인지라, 더 많은 양으로 학습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답을 주지는 않는다. 많은 데이터로 학습하면 할 수록 조합할 수 있는 가짓 수가 많아져 보다 그럴싸한 답을 다양하게 해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사항, 즉, 기준의 데이터(학습)를 기반으로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답을 조합한다는 점이 개념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문학, 사회, 예술과 같이 정답이 딱히 없는 분야에서 보다 나은 답을 구해가는 집단 지성이 더 이상은 의미가 없어 진다는 의미이고, 수학, 과학과 같이 정답(혹은 진리)는 존재 하지만, 아직까지는 완벽한 정답을 찾아 가는 분야에서는 다수(데이터)가 떠드는데로 해당 연구의 방향성이 쏠릴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꿔 말해, 소수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실질로 정답일 경우, 챗지피티에서는 오답이 된다. 혹자는 해당 분야를 알고 있는 전문가 그룹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정하여 학습을 할 경우, 대답의 질이 좋아지지 않겠나고 하겠지만, 전문가들조차도 정답을 모르는 (그렇지만, 안다고 착각 하고 있는) 분야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무용지물이다.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방향의 접근을 방해하는 도구로 동작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자면, 이런거다. 챗지피티가 16세기에 지식들에 대해 학습을 했다고 가정 해보라. 천동설이 주류였던 그 시대에서 챗지피티가 내놓는 답은 지동설이 아닌 천동설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전문가 집단의 데이터로 학습을 해도 마찬가지로 천동설일 것이다. 그당시에 만약 챗GPT가 대중화 되었다면, 대중의 집단 지성이 아닌, 극소수의 과학적 사고로 증명한 지동설은 영영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 했을 것이다.
챗GPT는 "크리에티비티"에 대해 새롭게 정의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창조적이라 여겼단 많은 것들(문학작품, 작곡/작사, 그림, 디자인, 심지어 혁신활동까지)이 더이상은 창조적인 것과 전혀 관련이 없는 "조합"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이는 마치 컴퓨터가 발전 하면서, 예전에 수학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주산, 암산과 같은 단순 계산의 수학의 영역에서 떨어져 나간 것과 비슷하고, 알파고가 세상에 나오면서, 바둑과 같은 복잡한 게임도 실상은 더이상 "무한"의 조합을 가진 게임이 아닌, 조금 복잡하지만 "유한"한 조합의 게임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것과 유사하다. 챗GPT의 등장으로 많은 이들이 창조적 혹은 혁신적으로 여겨졌던 많은 일들이 단순한 기계적이 조합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경영 대학원에서 리더쉽이나 혁신관련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반드시 하는 그룹 활동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Ideation(생각의 발산)이라는 것이다. 보통, 비지니스, 경영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비지니스 모델등)을 해결하기 위해 집단이 모여 머리를 맞대어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Ideation(아이디에이션)을 들어보지 못했더라도, 브레인 스토밍(Brain Storming)은 들어 본적이 있으리라. 브레인 스토밍이 대표적인 Ideation 도구이다. 혁신이나 리더쉽 과정에서 이러한 아이디에이션 그룹 활동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 하는데, 그 기저에는 "한명의 머리보다 여러명의 머리가 낫다"는 집단 지성의 우월성에 기인 한다. 나는 이러한 평범한 머리의 집단 지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평범한 머리가 아무리 모여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봐야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식으로 이야기 했다가는 리더쉽, 혁신등으로 밥벌이 하는 전문가들에게 욕을 먹겠지만, 양자역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들이 아무리 모여서 양자역학 기술에 관련된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보편적인 지식을 조합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봐야, 양자역학적 지식이 없다면 그건 그럴싸한 아무말 대잔치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말하는 이쪽 관련 경영대 교수들은 이러한 아이디에이션 집단 활동을 혁신적인 생각을 할 수있는 중요한 도구라고 장사 했었다. 하지만, 챗GPT의 등장으로 평범한 얘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 한답시고 몇시간 동안 집단활동 하는게 전혀 필요없게 되었다. 평범한 얘들 모아서 Ideation하는 것보다 챗GTP가 보다 그럴싸한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차피 아무말 대잔치이긴 마찬가지니까.
물론, 기존의 데이터나 정보를 조합하는 수준이 아닌, 제대로 된 창조적인 생각이나 아이디어라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부류의 창조성은 한 명, 혹은 소수의 천재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 이지만, 세상을 바꾸는 초석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진정한 의미의 창조성은 챗GPT가 (기존의 데이터를) 조합해서 만들어 된 "가짜" 창조성과는 확실하게 구별 된다. 챗GPT의 발전은 미래의 이러한 진정한 창조성을 방해하는 도구로 동작 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들은 예술의 영역을 너무 고귀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문학, 미술, 음악과 같은 예술 활동에 나오는 창작물은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기에 그 가치를 인정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소위 말하는 이쪽 계통 전문가들이 이런 소리를 많이 하던데, 특히, 예술의 가치를 알려면, 공부를 해서 배워한다는 개소리를 시전하기도 한다. 이들이 무시하는 또다른 부류가 아마도 보면 가요나 팝아트같은 대중 예술을 하는 이들 것이다. 그런데, 이들도 대중 예술/문학(작가주: 여기에는 단순히, 소설, 가요, 팝아트 뿐만 아니라, 너튜버, 웹소설, 웹툰, 춤같은 것들도 포함)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으면, 앞서 언급한 (순수)예술가들처럼 어깨 뽕들어 가서 거들 먹거리는 마찬인데, 마치 자신들이 뭔가 특별한 창조적인 능력이 있어서 히트곡을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말이지, 예술은 감정의 영역이다. 누군가에게 가격을 메길 수 없는 예술적 가치가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 판단에 대해서 틀렸다 무시 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술도 공부 해야지만 그 가치를 알수 있다고 떠드는 사짜들을 보면 답이 없다. 특히, 온갖 예술적 지식을 떠들면서, 마치 예술이 뭔가 지식의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것처럼 떠드는 사짜들을 보면 솔직히 토나온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는 별감흥 없는 K-Pop 작곡했다고 거들먹 거리는 작곡가들 보면 어이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그 알량한 예술적 창조성으로 돈을 벌고, 유명해지며, 일반 대중을 향해, 예술을 배우라며 훈계질을 한다. 챗GPT의 등장(작가주: 챗GTP는 문학작품만 해당하지만, 현재 많은 AI기반의 도구들의 상당한 수준의 새로운 화풍의 그림을 그리고, 어디서 들어본듯한 신선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으로 누구나 어느 정도 수준의 문학작품을 만들수 있고,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왠지 흥이 나는 음악 가락을 구성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만이 창조해 낼 수 있다고 생각 했던 예술 창작 활동이 웹상에서의 몇번의 클릭으로 가능해 진 세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예술 작품에 대한 가격은 오로지 대중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느냐(x 지속시간)로 판단이 될 것이다. 유명한 셀럽의 대충 그린 그림이 몇 십년 미술 전공한 이가 그린 그림보다 훨씬 비싸게 가격이 매겨질 것이며, 유명한 너튜버의 1분짜리 작곡이 몇십년 작곡 공부를 한 이들의 곡보다 귀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한 가격을 매기는 대중들은 셀럽의 유명세가 아닌 그림 자체에 감동이 있다고 게거품 물며 떠들겠지만, 소위 말해 인간을 풍요롭게 한다는 그 알량한 예술적 감동이 사실은 본인이 방구석 앉아서 새로 나온 야동을 볼 때의 그 설레임과 생리학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싶다.
기(술)로서 가지는 예술적 가치는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글쓰기의 가치가 사라졌고,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그림의 (기술적) 가치가 사라졌고, 축음기가 나오면서 음악의 가치가 사라졌다(작가주: 많은 이들이 예술이 미에 대한 어떤 가치로 알고 있지만, 원래 예술(Arts)은 오랜 연습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었다. Art라는 어원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돈만 많고 머리에 든것 없던 당시 부자들의 지적이지 않은 지적 허영심이 만들어낸 카르텔이, "예술의 가치는 기가 아니라, 창조성이 있다"는 개소리를 시전하면서 지금껏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믿게 만들었고, 돈 없고, 힘 없던 무지한 다수 인간들을 가스라이팅 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맹목적 믿음으로 예술 작품의 카르텔을 더 곤고하게 형성했다. 기술적으로 봤을 때 쓰레기인 물건이 유명한 작가가 만들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예술 작품으로 둔갑하며 창조성 혹은 예술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고가에 유통되는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챗GPT는 이렇게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겼던 예술이라는 영역에 반기를 든다. 예전에 인쇄술이, 사진기술이, 녹음기술이 예술이 가졌던 기의 가치를 박살내었던 것처럼, 인간 고유의 창조성이라며 받을었던 예술적 가치관을 박살 낸다. 챗GPT의 등장은 이러한 작품들이 인간에 의해 창조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부여되는 절대적인 예술적 가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작품의 "가격"(가치가 아님)은 오로지 대중성에 의해 매겨지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