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ang Kim Mar 27. 2018

어느 젊은 아버지의 교육관

아버지, 가치관, 그리고, 자녀교육

[작가주] 이 글은 아주 오래된 지인께서 적어주신 글을 옮긴 글입니다. 옮긴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브런치에 적는 이유는 이 글이 저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지요. 이 글이 적어진 시기가 2004년이니까, 10년도 더 된 글이지만, 가끔 생각나면 찾아봅니다. 인터넷이 정말 좋긴 좋습니다... :)


(2004년 어느날)

수능시험에서의 조직적 부정이 드러나면서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확인하게 되면서, 얼마 전에 KTX를 타고 오며 나누었던 대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전날 부산에서 만난 형제와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평준화정책을 비난하고 명문중학교, 명문고등학교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터이라, KTX를 타고 상경하는 동안 대구에서 탑승한 옆좌석의 승객과도 자연스럽게 교육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승객은,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 아이를 둔 젊은 아버지로서 우리네 교육의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아주 시원스레 정리된 의견을 전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과 관련된 문제는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어느 제도도 허점이 없는 게 없습니다. 명문학교들을 부활시켜도 거기서는 또 다른 문제점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항시 제도를 바꾸면 새로운 제도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그 장점은 당장 드러나지 않는 데 반해 단점들이 더 크게 부각되어 버리므로 제도 자체를 비난하게 되는데, 사실은 그 제도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잘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학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제도나 사교육, 조기유학 등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이 아이의 교육적 성취를 좌우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물론 억지로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성취를 꾸며낼 수는 있겠지만 아이가 자신의 그릇을 스스로 키워 갈 수 있는 내적 역량을 키우지 못해 그 후에 엄청난 좌절을 갖고 오게 마련입니다. 

아이의 수용능력이 10개밖에 안 되는 때에 100개를 강제로 집어넣으려 하면 결국 최선의 결과라고 해도 90개를 그냥 흘려 버리고 말게 되고 아이는 아이대로 엄청난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10개의 수용능력을 가진 아이에게 6-7개 정도만을 공급하여 스스로 남은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여유를 줍니다. 자력으로 공간을 채울 수 있을 때라야 그만큼 그릇 자체를 늘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장의 성취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릇 자체의 확장에 관심을 갖습니다.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은 외형적인 성취보다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에 발맞춰 죽을 때까지 자기를 수정하고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유연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아이에게 사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조기유학등 특별한 수단을 강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강남의 유명한 학교나 특목고에 보내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대신에 아이가 당면한 학교의 현실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눈여겨 볼 것이고, 아이의 학습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아이와 함께 대화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학교 시험에서,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만이 풀 수 있는, 아직 필요하지도 않은 어려운 문제를 내어서 우리 아이가 0점을 받아 왔다면, 저는 아이에게 잘 했다고 진심으로 칭찬을 해 줄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한 명목적 성취에 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우리 아이 자신의 “그릇을 키우는” 발달과정에만 초점을 둘 것입니다. 마음껏 놀게 하면서 스스로 호기심을 가지고 즐겁게 자기 그릇을 키워 나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그렇게 시도해 볼 수 있는 내적 공간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대구라는 지방도시의 지극히 평범한 동네 학교에서도, 전혀 특별하지 않은 선생님들과 학교 환경 속에서도 저는 훌륭한 아이들을 기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학교 추첨에서 별로 좋지 않은 학교에 당첨되었을 때 저희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셨고 결국 저는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성공적인 길을 걸어 왔습니다. 제 아이 역시 그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이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결국 아버지인 저 자신에게 있습니다. 아이는 아비의 행동을 보고 그대로 흉내낼 것이니까요. 제가 아이에게 어떻게 사는지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제 장점들은 좋지만 약점까지 흉내낼까 봐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약점을 숨기려 들면 아이들은 직감적으로 이를 알아채고 저의 이중적 행동에서 혼란을 느낄 것입니다. 일관성 있는 행동이 관건입니다. 약점까지 드러내고 아이에게 솔직히 “이것은 좋지 않으니 닮지 말아라. 내가 고치려 해도 잘 안 되는구나.” 하고 고백하는 게 필요합니다. 외부지향의 패러다임이 내부지향으로 옮겨 가지 않으면 우리네 교육현실은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KTX가 빠른 것인지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 어느 새 서울에 도착하여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언젠가 한번 더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명함을 교환하였습니다. (나중에 그가 이메일을 보내 와서 우리는 반갑게 통화를 하였고, 이제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교육관이 관심 있는 분들께 알려져 자유롭게 토론을 해 보는 것을 환영했습니다.) 


위의 글을 소수의 사람들에게 온라인으로 소개한 후, 미국에 계신 어떤 분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글을 받았습니다.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한가지는 문제를 너무 간단히 만든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아이에게 너무 교육을 강요하는 것은 안 좋지만 방임이 최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그동안 방임주의적 교육이, 특히 교육에 관심이 없는 저소득계층 어린이들의, 수학능력을 떨구고 결과적으로 사회 경쟁력을 낮추었다는 반성이 큽니다. 

비싼 과외신화는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어린이에게 TV나 인터넷등 집중력을 낮추는 매체를 멀리한다든지, 매일 조금씩이라도 숙제를 하는 습관을 갖게 한다든지, 독서를 많이 한다, 조기 외국어 교육, 여행을 많이 한다 등은 자녀의 수월성 있는 교육의 필수 조건이라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어떤 방법에 도덕적 우월성을 주는 것은 위험합니다. 미국에서는 홈스쿨이 많고, 홈스쿨 어린이들도 주기적으로 국가 테스트를 받으면 공교육을 받은 것으로 인정이 됩니다. 그런 반면에 아주 체계적인, 고가의, 사립학교도 있습니다. 사립학교에서는 오히려 전인교육과 사회봉사를 많이 강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무교육 > 홈스쿨 > 공립학교 > 사립학교 식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어떤 교육이 좋은 가는 실증적으로 입증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의 방법에 도덕적 우월성을 둘 때, 실증적 방법이 매도가 되기 때문에, 가장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약간 논리가 뜁니다만, 저의 경험에 의하면 평준화교육이,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사실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가장 무기력한 제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그분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요약하다 보니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그분 이야기의 초점은, 교육제도 자체가 아니라 자녀교육을 대하는 부모의 기본자세와 마음가짐에 있다고 봅니다. 저는 사실 "어떤 제도가 좋습니까?" 하고 물었던 것인데, 더 좋은 대답을 해 준 것이지요. 

그리고, 자유방임을 의미한 것이라기 보다는, 아이가 자신의 그릇을 스스로 키워 나갈 수 있도록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하고 적절한 도전을 주어서 호기심을 갖고 고민하며 시행착오를 해 볼 수 있는 "적절한 공간과 여유"를 허용한다고 하는 뜻이었다고 믿습니다. 즉, 처음의 10개짜리 수용능력이 20개, 30개... 이렇게 늘어나서 언젠가 100개, 200개를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커지게 한다는 것이지요. 어릴 때는 충분히 뛰어놀면서 배우게 하겠지만, 좀더 큰 다음에는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학습습관을 길러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이면에 전제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제가 전달을 잘 못 했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평준화정책을 쓰고 있지만 우리보다는 문제가 적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이유가, 초등학교부터 엄격하게 시행하는 유급제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가르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라는 사회적 기반에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솔직히 저는 아직도 우리나라에 맞는 교육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앞으로 많이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홈스쿨링 같은 대안교육은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저는 이러한 대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교육은 제도 자체보다도 학부모의 가치관을 비롯한 문화적 차원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얻은 것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 몇 가지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교육을 제대로 시키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 고로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해결책이다."고 생각하고 아이 교육을 돈으로 외주(Outsourcing)를 준 채 부모가 다 돈 버는 데 혈안이 되어 아이에게 더욱 중요한 사랑과 관심을 쏟지 못하게 되는 모순적 현실에 대한 깨우침을 준 것. 
2. 자녀교육의 핵심은 부모가 삶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는 점.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를 버리고 약점까지 드러내어 인정하는 정직함과 아이에 대한 인격적 존중이 필요하다는 점. 
3. 우리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태도에 대해 자신의 내부에서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고 거기서 교정하려 드는 "내부지향적 태도"로 외부의 문제를 극복해 나가는 패러다임의 변화.

우리 사회의 교육문화가 한 차원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젊었던(?) 아버지는 이제 40대가 되었고, 그 당시에 2살박이 아기였던 그 아버지의 딸래미는 이제는 십대가 되어, 그 젊었던 아버지와 당당히 논쟁(?)을 하는 숙녀가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천방지축이기도 하구요). 아직은 이 아이가 여전히 성장하는 시기라 위의 교육관이 일반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잣대를 기준으로 성공을 했는지 판가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워 오면서 교육에 대한 가치관은 바뀌지 않은 걸 보면 아직까지는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좀더 지켜봐야 겠지만 말이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의 모토(?)가 된 미드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