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ang Kim Jan 05. 2016

나의 컴퓨터들

잊혀져 가는 기억들에 대한 단상

카메라에 이어, 나이가 들면서 나의 관심도가 급격히 떨어진 것중에 하나가 아마 컴퓨터(PC; Personal Computer)분야일 것이다. 물론,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으며, 단순히 PC라는 이름을 가진(요즘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키보드를 가지고 있으면서, MS-Windows 내지는 MacOS를 가지고 있는) 기계가 자그마치 5개나 된다. 여기다, 타블렛과 스마트폰을 합치면, 예전보다 PC에 묻혀지네지 않나 싶다. 그렇지만, 컴퓨터에 대한 관심은 아마 인텔 80386 IBM호환 기종을 사용했던 시절까지가 아닌가 싶다.


내가 처음 컴퓨터를 가졌던 시기는 바야흐로 1980년대 초반, 국민학교 4학년때 였다. 그 당시에 자그마치 40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교동시장(대구의 용산상가로 보면 된다)에서 구매를 했다. 원래 이쪽 계통을 전공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그 당시에 다분히 고가인 문명의 이기(?)를 접할수 있었고, 그렇게 처음 접하게된 컴퓨터가 Apple ][  (엄밀하게 말하면 Apple II+)였다. 

Apple ][+

조금더 정확하게 말하면, 오리지널 애플이 아니라, 교동시장에서 조립한 애플 호환 기종. 이 컴퓨터의 사양을 간단하게 이야기 하자면, CPU는 6502 (8비트), 메모리는 자그마치 48KB !! 그렇다 48MB도 아니고, 48KB이다..! 그리고, 지금이야 (외부)저장 장치를 이야기하면, 외장하드나 USB메모리 스틱을 이야기 하지만, 그 당시에 사용하던 외부 저장장치는 5.25인치 Floppy Disk였다. 애플도 Floppy Disk Driver를 사용할수 있었으나, 처음 apple을 구매할 1980년대 초반에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버 가격이 애플 컴퓨터 본체와 맞먹는 30만원대 였으니, 쉽게 구매할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용한 물건(?)이 바로 테이프 레코더이다.

애플용 저장장치로 사용된 테이프 레코더

다만, 그 당시도 비약(?)적인 기술 발전이 있었던 관계로 애플외에 다른 기업들이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버를 개발하기 시작하면 그 가격또한 1/3이상 떨어지게 되었고, 덕분에 나도 처음 애플을 구입하고 2년즈음 뒤에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버를 구입할수 있었다. 

Apple Disk II 와 이후 대량 일반 5.25인치 드라이버

애플 II가 국내에 소개된게 80년 초반이고, 이미 이때는 상당수의 복제 게임들이 Apple IIe를 기준으로 만들어 졌었기 때문에 최소 메모리 사양이 64KB였다. 그래서, 국내에서 48KB인 애플을 구입할때는 64KB게임을 할수 있도록 해주는 16KB 메모리 확장카드를 같이 구매 했었다.

16KB Memory Card

당시,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확장 메모리카드 가격이 10만원이 넘었었다. 애플II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Fully Open Architecture라는 점이다. 소프트웨어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조차 그 확장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 했다. 당시 애플은 컴퓨터의 Software구조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구조까지 완전히 공개를 했었고, 누구든지 사용할수 있었다. 그랫기 때문에 애플이 아니어도, 누구든지 컴퓨터를 조립할수 있었고, 누구든지 다양한 하드웨어를 설계할수 있었다. 지금의 아두이노의 할배정도로 봐도 될 정도 이다. 지금 한창 유행하고 있는 스마트홈(Home Automation)을 애플을 이용하여 직접 꾸밀수 있는 방법이 일반 잡지에 소개될 정도 였으니, 그 확장성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따라 올수 없는 애플의 아이덴티디 였다. 다만, 스티브잡스는 이 후 맥을 공개하면서 이걸 포기하고, Closed Open Architecture (즉, API와 인터페이스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비공개)로 돌아서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지금도 가장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내가 애플을 사용한 기간이 대략 5년정도 되는데, 그 때동안 정말 많은 확장을 했었다. 우선, 위에서도 언급한 16KB 카드와 플로피 디스크드라이버, 와일드 카드, 80칼럼 카드, CP/M카드 등등 확장을 위해 열려있던 8개의 슬롯 가운데 5개 이상을 꽂아서 사용했으니, 나름데로 애정이 있었던듯 하다. 확장 장치가 가운데 가격이 가장 비쌌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프린터였다. 내가 처음 구입해서 애플에 연결해 사용했던 프린터는 EPSON의 LX-80이라는 모델이었다.

EPSON LX-80 Printer

당시, 이 프린터의 가격은 40~50만원대, 애플본체 가격보다는 훨씬 비쌌고, 물건 자체도 상당히 귀했었다. 양쪽에 구멍이 달린, 그래서 프린트하고 나면 양쪽에 있는 구멍들을 제거해야 했던 그런 프린터. 그리고 그 당시에 프린터용지(양쪽에 구멍이 달린)는 흔히 사용하는 A4사이즈가 아니라 조금은 당황했던...그런 프린터였다 (나중에 안거지만, 양쪽 구멍을 제외한 80칼럼 사이즈가 Letter사이즈라는거).



바야흐로 시간은 흘러 80년대 후반, 애플과 MSX으로 양분 되었던 8비트 컴퓨터 시장은 16비트로 넘어서게 되고, 이때부터 인텔이 PC의 CPU를 차지하고, MS가 OS를 독점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이 시기에 "국민보급형 PC"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 많은 대기업들이 싼 가격의 16비트 컴퓨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다만, 국민 보급형 PC는 16비트 CPU(인텔8086)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256KB/512KB메모리에 하드디스크조차 장착되지 않았다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어쨋든 이 시기에 내가 구입했던 PC는 대우전자의 코로나 XT를 사용하기 시작했었다.

1980년대 코로나 광고

국민 보급형 PC가 나오기전에 IBM XT 호환 기종은 100만원정도 대기업 XT는 100만원이 훨씬 넘는 가격이었는데 국민 보급형 PC가 나오면서 가격이 많이 떨어지긴 했다. 다만, 선전에도 보면 알겠지만 60만원대 XT의 경우는 5.25인치 디스크 드라이버가 한대 뿐이고, 램 용량도 512KB라는거다. 이걸 플로피 한대 추가, 램을 640KB까지 올리게되면, 가격은 일반 XT와 비슷했다는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내가 이당시 구입했던 코로나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경로(?)로 입수하게 된 경우라, 껍데기는 같으나 램은 640KB에다가 자그만치 20MB HDD가 장착된 XT였으니, 당시 이정도 사양을 대기업 제품으로 구할려고 하면 200만원 가까이, 용산이나 교동에서 조립제품을 구한다고 하더라도 100만원은 훨씬 넘는 가격의 사양이었다. 어쨋든 이 컴퓨터로 나는 대학 입학 후 군대가기전까지 사용했었고, 복학 하면서 80386 컴퓨터를 사용하기에 이른다. 이때가 바야흐로 90년대 중반이 되겠다.  


이 당시에는 나름데로 내공이 붙었던 때라, 386 컴퓨터는 교동에서 직접 조립해서 사용 했었다. 아마, 컴퓨터 하드웨어 사양을 가장 많이 꿰차고 있었던 시기가 바로 이때가 아니었나 싶다. 대구의 교동시장은 그당시에는 서울의 청계천이나 용산 지하 상가와 같은 곳이었다. 인터넷이 그리 활발하지 않던 시절, 교동시장은 최신 기술의 메카였고, 젊은 기업가들의 놀이터 였다. 실제로 내 고등학교 동기들 가운데에 몇 명은 졸업 후에 교동시장에서 (조립) 컴퓨터 장사를 했었다. 군대를 다녀온후, 발열 문제로 Full Tower를 선호 했던 나의 386컴퓨터는 대충 요런 분위기로 생겼다.    

PC Full Tower Case (대충 이런 분위기)

그 당시, 내가 직접(?) 조립했던 80386 PC는 메모리는 자그마치 4MB, 250MB WD HDD, 자그마치(?) 1024x768 SVGA를 지원하는 나름 초고(?) 사양이었다는 거다. 이후 유학을 가기전까지 4년여를 사용했던 이 컴퓨터는 메모리는 8MB로 확장, 400MB 하드를 추가를 마지막으로 장렬히 전사(?) 하였다.


1990년대 후반, 나는 유학을 가기로 결정이 나고 새로운 컴퓨터를 물색하던 중 노트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당시에는 노트북은 사양변경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용산이나 교동시장에서 조립을 할수가 없었던 시기라, 대기업에서만 생산을 했었으며, 같은 성능대비 가격은 2배이상 200만원 이상 하던 비쌌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국내 중소기업에서 팬티엄급 노트북을 100만원대에 내놓아 나름(?) 파란을 일으켰었는데, 애석하게도 내 기억속에는 이 노트북의 제품명이나 만든 회사명은 남아 있지 않다. 이 당시 팬티움(80586)을 장착한 노트북을 가지고 나는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내가 컴퓨터 부품별 사양이나 성능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시기는 아마도 이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유학을 다니면서부터는 이사 가기가 편해야 했었기도 했고, 코딩을 하기는 했지만, 학부때처럼 복잡한 계산은 할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컴퓨터 게임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는 고 사양의 컴퓨터 보다는 휴대가 간편한 노트북이 더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후 노트북의 사양도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정말 복잡한 계산이나 게임을 하지 않는 이상에는 적당한 성능만 되면, 사용하는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다만, 유학시절에 내 손을 거쳐간 가장 기억에 남는 노트북은 아마도 소니 Vaio 최초 모델(PCG-505)일 것이다.

SONY VAIO PCG-505

딴건 뭐 없다. 디자인 죽이쥬~ 지금이야 흔한 슬림 디자인에 힌지이지만, 그 당시에는 파격 그자체였다. 이 노트북은 아직도 내가 소유하고 있으며 (근데, 결정적으로 어디다 뒀는지 모르겠다...쩝~), 조만간 내가 가지고 있는 모델을 찍어 올리도록 하겠다.


이후에 여러 컴퓨터를 구입을 했었고 사용했지만, 각 부품별 성능이라던가 사양을 고민해서 제품을 구매했던 적은 없었던 것같다. 지금도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얘가 무슨 CPU를 사용하고 있는지, 성능은 어떻게 되는지, 메모리가 얼마나 되는지, 하드용량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다. 그냥, 문제가 생기거나 컴이 죽으면 뭐가 문제인지 찾아보고 고치는 정도.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참,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은 Thinkpad T430u이다. 뭐, 그냥 그렇다고.....ㅎ

Thinkpad T430u

-= Amang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