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 싸인하면 빚쟁이가 됩니다
대망의 열쇠 받는 날이 밝아왔다. 계약을 하기 위해서는 공증절차가 필요한데 주택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공증회사를 고용하면 된다. 네덜란드어를 못하는 나는 영어나 한국어로 통역해 줄 수 있는 통역가도 고용해야 했다. 마침 공증회사가 소개해 준 네덜란드어-영어 통역사를 고용했다.
공증 사무실에 집주인 부부, 공증인, 우리 부부, 통역사가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나에게 동시통역 때 쓰는 해드폰을 주었다. 마이크 테스트를 몇 번 하고 공증인이 간단하게 절차에 대해 소개해줬다. 우선 계약서를 모두 소리 내서 읽으면서 각 항목에 동의하는지 물었다. 통상적인 계약서였기 때문에 아무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먼저 집주인이 서명을 하고 그다음에 우리가 서명을 했다. 집을 사는 것은 일생일대의 이벤트이기 때문에 사진도 찍어줬다. 화기 애애한 분위기에서 서명을 마치고 집 열쇠를 받았다.
네덜란드에는 여전히 열쇠가 보편적이다. 열쇠꾸러미는 무거웠다. 현관, 뒷문, 창문, 창고, 뒷마당 열쇠까지 주렁주렁 한가득이었다. 열쇠를 받으면 모든 절차가 끝난 거다. 이후로 잔금 치르기가 남아있지만 모기지 어드바이저가 다 알아서 처리해 준다.
계약서를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점은 우리를 50/50 빚쟁이(debtor)라고 부른 항목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은행에 30년을 묶이게 된 우리는 집주인보다는 피프피피프피 뎁터가 더 정확한 명칭 같았다. 남편과 나는 이제는 낙장불입, 법과 돈으로 묶인 완벽한 가족공동체가 된 것이다.
열쇠를 받고 신이 난 우리는 집을 또 보러 갔다. 전 주인의 짐이 다 빠진 집은 바닥과 벽만 남았지만 공식적으로 집주인이 되어서 그런지 그조차도 아늑하고 좋았다. 다행히 전주인이 집 관리를 잘해놨기 때문에 큰 인테리어 공사 없이 페인트칠만 새로 하기로 했다. 거실, 부엌, 침실 3개에 기본적으로는 화이트로 칠을 하고 부엌과 침실에는 악센트가 되는 색을 칠하기로 했다.
주말마다 틈틈이 와서 페인트칠을 하고 대망의 이삿날! 처음 집을 합칠 때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너무나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이사업체를 고용했다. 우리나라처럼 포장이사가 보편적이지 않아서 짐은 우리가 싸고 풀러야 하고 업체를 집에서 집으로 이동만 해주는 서비스를 고용했다. 이삿날에는 두 명의 사람이 왔는데 우리가 살던 엘리베이터가 작아서 사람이 그 이상 있어봤자 돈낭비라는 이삿짐센터의 정직한 조언을 믿은 결과이다. 이 두 분은 슈퍼맨처럼 온갖 짐들과 박스를 번쩍번쩍 들어다 트럭에 실었다. 두 번만에 모든 짐을 새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소파와 침대같이 큰 짐도 놔달라는 자리에 놔주셔서 큰 힘들이지 않고 이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