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통(育通)」 — 육아에서 얻은 통찰
가장의 구실을 다하기 위한 책임감이 일상 속에서 불안으로 다가와 스스로를 압박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것을 보며 저 역시 책임감이 얼마나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방해하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아침 등원길은 언제나 분주합니다.
윤식이, 현식이, 준식이와 함께 걷다 보면 길 위에 작은 이야기들이 피어납니다.
“윤식아, 오늘 뭐가 제일 즐거울 것 같아?”
“체육 활동!”
현식이는 와이퍼가 빗물을 밀어내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아빠, 이게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해?”
준식이는 형이 말을 하니 덩달아 이 말 저 말 따라 하며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 순간, 저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기보다 ‘오늘의 즐거움’을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불안이 앞섰습니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즐거움일까, 하루 전체의 즐거움일까?’
단순히 아이들의 대답을 즐기면 될 일을, 또다시 계획과 책임감의 틀 속에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부모로서의 책임감은 때로 마음을 짓누릅니다.
“바르게 제 구실을 하며 키워야 한다.”
이런 다짐은 처음엔 아이를 위한 것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저 자신과 우리 부부를 얽어매는 족쇄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오늘 본 유튜브 영상 에서도 가장의 구실을 다하기 위한 책임감이 일상 속에서 불안으로 다가와 스스로를 압박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것을 보며 저 역시 책임감이 얼마나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방해하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끝없이 떠오르는 할 일과 압박감이 그림자처럼 뒤따르며, 저를 끊임없이 몰아세우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모습 속에서도, 그리고 제 안에서도 그 그림자의 흔적들이 보였습니다.
도파민을 얻기 위해 무심코 쇼핑을 하거나 SNS 피드를 들여다보는 모습, 아이들에게 정답을 찾듯 대하는 태도, 웃음보다 한숨이 먼저 새어 나오는 순간들. 저는 그 속에서 부모의 무게에 눌려 감정이 무뎌지고 멀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내를 탓할 수 없었습니다. 저 역시 몇 해 전부터 오래도록 같은 기운을 느껴왔기 때문입니다.
불안이 전해지는 순간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을 생각보다 빨리 알아챕니다. 말하지 않아도, 표정이나 눈빛에서 전해지는 기운을 곧장 받아냅니다.
“아빠는 왜 맨날 표정이 화가 나 있어?”
저는 그냥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뿐인데, 첫째는 종종 이렇게 묻곤 합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문득 깨닫습니다.
저는 스스로 불안하다는 인식조차 못 한 채 살아온 것이 아닐까.
사회가 정한 룰 속에서 ‘착하게, 바르게’ 살고자 애쓰며, 뒤처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늘 저를 압박해 왔습니다. 그렇게 불안이 제 표정과 말투에 스며들어 아이들에게까지 전해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오늘 하루에는 틈이 있었습니다.
거실에서 셋째 아이의 옷을 입혀주던 중, 아이가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을 보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불안도, 책임도, 계산도 사라지고 오직 웃음만이 있던 몇 초의 순간. 그 짧은 웃음 속에서 저는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즐거움을 억지로 찾아내려 애쓰기보다, 스스로에게 웃음을 허락하는 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죠.
부모 구실을 하려면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을 허락하는 찰나가 있습니다. 아이의 한마디, 장난스러운 표정, 예기치 못한 웃음. 그 순간은 무거운 책임과 불안을 조금씩 녹여내고, 아이와 저를 다시 연결해 줍니다.
오늘 당신은 언제, 아이와 함께 웃음을 허락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