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통(育通)」 — 육아에서 얻은 통찰
며칠 전, 늘봄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첫째 아이가 연극 수업 시간에 친구 얼굴을 공으로 때려 자국을 남겼고, 또 다른 친구에게는 상처를 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게다가 이후 지도 과정에서 “왜요? 왜 그래야 해요?”라며 반항했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또 가해자로 불리게 되는 걸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늘봄 선생님께 요청드려 곧바로 담당 연극 선생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알고 보니 상황은 조금 달랐습니다.
* 놀이 중 공이 얼굴에 맞은 사고였고,
* 다툼 과정에서 생긴 상처였으며,
* 두 경우 모두 아이들이 사과했고, 부모도 괜찮다고 확인한 상태였습니다.
이미 현장에서 마무리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전달된 이야기는 첫째 아이가 ‘일방적 가해자’로 비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늘봄 선생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사실이 한쪽으로만 전달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선생님도 급히 알리려다 착오가 있었다며 사과해 주셨습니다.
저녁에 첫째 아이를 불렀습니다.
“왜 아빠한테는 먼저 말하지 않았어?”
“혼날까 봐…”
그 대답에 순간적으로 많은 감정들이 오갔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래도 이런 건 말해야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야!!”
그리고 오랜만에 함께 호수공원을 뛰었습니다.
혼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인디언 부족의 모카신 바꿔 신고 걷기’처럼 ‘함께 감당하며 나아가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2년간의 경험 속에서 저는 이런 것들을 배웠습니다.
* 같은 사건도 기억은 다르게 남는다.
* 피해의 크기도 아이마다 다르다.
* 억울하지 않으려면 사실적 기록과 증거가 필요하다.
* 사실에 기반한 설명이 여론과 인식을 만든다.
* 한 번의 선입견이 낙인이 된다.
*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 넘기면 손해를 보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다.
예전의 저는 사회에서 늘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태도로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 불이익을 받아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첫째 아이를 지켜내려다 보니 깨달았습니다.
사실을 기록하고, 권리를 지키는 힘이야말로 아이와 부모가 함께 배워야 할 삶의 기술이라는 것을요.
이번 사건은 단순히 ‘아이들 싸움’으로만 볼 수 없었습니다.
저와 아내에게는, 그리고 첫째 아이에게는 “일상의 권리를 배우는 작은 훈련”이었습니다.
이번 고비를 잘 넘긴다면,
첫째 아이는 앞으로 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며 살아갈 힘을 얻게 되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저와 아내도, 아이와 함께 성장하게 되길 기대합니다.
당신은 언제, ‘나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본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