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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Jan 12. 2022

뤼피니언(Lupinien)의 씹고 뜯는 Lupin 리뷰

씹고 뜯었지만 맛보고 즐길 수는 없는 불편한 리뷰

아무도 나에게 물어본 적 없지만, 어릴 때 나 혼자 런던 vs 파리를 매우 고심했던 적이 있다. 나는 독일에 살았었는데 베를린이나 뮌헨이 아니고, 또 영어라면 뉴욕도 있었는데 왜 하필 런던과 파리였을까. 고심 끝 후자를 선택한 나는 결국 프랑스어를 전공해 여기까지 왔는데 만약 런던을 선택했다면 영어를 전공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었을까? 하는 가지 않은 길도 꿈꿔보기도 했다(영국 학비는 논외로 하고...). 이렇게 런던과 파리를 혼자 고민했던 이유는 아마도 셜록 홈즈 vs 뤼팽의 영향이었을 거라 추측한다. 계몽사에서 나온 디즈니 전집, 국제판 세계명작 등을 사주신 덕분에 어릴 때부터 책과 가까이할 수 있었고 이런 시리즈의 일환으로 셜록 홈즈랑 뤼팽도 읽었던 기억이 있다. 홈즈보다 뤼팽이 좋았던 나는 홈즈가 대표하는 런던과 뤼팽이 대표하는 파리 중에 자연스럽게 파리를 선택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뤼팽과 제대로 사랑에 빠진 순간은 검정고시를 보고 재수학원에 다니던 때였다. 고등학교를 자퇴했던 동갑내기 친구와 학원이 끝나면 당시 동네에서 가장 컸던 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열심히 읽었는데 한 명은 수능 언어 만점을 받고(심지어 공부도 안 하고) 한 명은 논술 덕분에 대학을 갔으니 독서의 힘이 헛되진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잠깐의 일탈에 뤼팽 전집을 만나게 되었고 (공부하기 싫었던) 나는 뤼팽과 제대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만난 책은 까치글방에서 나온 성귀수의 번역본이었는데, 번역가는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의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내가 가고 싶은 학교에는 내가 원래 가고 싶었던 일어일문학과가 없어서 다시 학과를 결정해야 했는데 뤼팽의 영향이었을까, 덕분에 불어불문학과를 목표로 삼게 되었다. 입학하면 꼭 전집을 사겠다고 다짐했건만, 입학은 했지만 아직까지도 구매는 못했네...



어쨌든 아르센 뤼팽은 이렇게 나의 진로를 결정해준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점 바닥에 앉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읽던 시리즈 중에서도 최고를 뽑자면 단연코 '기암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 '기암성'의 무대인 에트르타(Étretat)는 기독교의 이스라엘, 무슬림의 메카처럼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가고 싶었던 학교의 학과에 들어가기 앞두고 처음 방문한 에트르타의 언덕 위에서 맞은 편 절벽을 바라보던 그 풍경과 벅차오르던 감정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했던 모리스 르블랑의 집에 한이 맺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다시 찾아가기도 했다. 파리에서 에트르타에 가려면 고속도로를 달린 후 엄청 큰 유료 다리를 건너 가로등도 없는 꾸불꾸불한 2차선 국도를 지나 다리가 아파서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때쯤 목적지에 도착하는 은근히 힘든 경로를 거쳐야 한다. 나는 한 번 간 장소는 다시 가지 않는 편이지만 이런 빡센 경로를 감수하고서라도 에트르타는 가도 가도 또 항상 가고 싶었던 그런 곳이었다.


 

가도 가도 가도 항상 좋은 에트르타. 또 가고 싶다...






아르센 뤼팽의 덕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나는 당연히 넷플릭스에서 나온 뤼팽을 안 보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방영된 지 1년이 넘었음에도 몇 주 전에서야 처음 보게 되었다. 처음 방영되었을 때는 프랑스에서 강제로 한국으로 이주당한 상처가 너무 커서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화관에 거의 안 가는 나를 영화관으로 가게 만드는 영화들이 바로 원작 소설 배경, 유럽(및 유럽 시대극) 배경,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스케일의 영화 이 세 가지 유형이었는데, 뤼팽은 (영화는 아니지만) 2가지 조건이 충족되었지만 파리를 보면 마음의 상처가 되살아났기에 도저히 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프랑스를 마음에서 떠나보내게 된 나는 드디어 뤼팽을 볼 용기가 생겼다. 그런데.......


리뷰를 하기 전 우선 나는 지독한(?) 원작충에서 비롯한 까다로운 불만러인데다 오랜 뤼팽 덕력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리뷰에는 불편한 시선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우리(한국인)끼리 했던 자조 섞인 불만이긴 하지만 백인, 흑인, 아랍인 다음의 계급(?!)인 동양인이자 여성으로 프랑스에서 살았던 사람으로 넷플릭스의 블랙워싱을 인종차별적인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도 아님을 말하고 싶다.






넷플릭스 드라마 뤼팽은 드라마에서 밝히고 있듯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여러 시리즈가 섞인 것 같지만 뼈대를 이루는 줄거리는 1권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의 왕비의 목걸이이다. 원작에서는 뤼팽과 그 어머니(친구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였다면, 21세기에 부활한 드라마는 아버지와 아들, 프랑스로 이민 온 아프리카 사람으로 주인공이 바뀐다. 목걸이의 소유자인 펠레그리니는 목걸이 도둑으로 누명을 씌울 아프리카계 이민자를 운전기사로 채용했고 뤼팽의 현신인 아산의 아버지는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린다. 나는 원작빠이긴 하지만 현대에서 각색되면서 바뀌는 것들을 무조건 비판하지 않는다(오히려 셜록처럼 와 이걸 이렇게 바꿨어? 하고 감탄하는 편). 더군다나 이민자가 프랑스에서 어떻게 힘들게 살아왔고 살아남았는지, 아직도 힘들게 살아가는지 잘 알고 있기에 또 기존에 영화화, 드라마화가 된 아르센 뤼팽과의 차별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라는 면에서 넷플릭스의 뤼팽이 현실을 잘 반영해 각색했다고 생각한다.


뤼팽. 아르센의 그늘 아래.



그럼에도 원작충으로서 불편한(아니 화나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았다. 현대적 해석, 재창조도 물론 좋지만 '아르센의 그늘 아래'라고 소개할 정도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원작을 따르면 좋지 않았을까?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바로 주인공의 변장술과 트릭이었다. 드라마에서도 줄곧 강조하는 것처럼 아르센 뤼팽은 신출귀몰한 변장의 귀재, 그리고 혀를 내두를만한 트릭의 대가이다. 그러나 아산에게는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아산 역시 변장의 달인이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특히 가장 압권은(여러 장면이 있지만;;) 샤틀레 극장에서 가발과 수염을 붙이고 나오는 아산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티브이에 극악무도한 살인자로 얼굴까지 노출된 사람이 그냥 수염 하나 붙이고 가발 하나 썼을 뿐인데 단 한 명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또 감옥에 들어가기 위해 감옥 안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와 옷을 바꿔치기 해 감옥 입성에 성공하는 장면도 있는데, 그러기엔 둘이 체격 차이가 너무 나잖아. 변장에 능수능란하다는 캐릭터라고 한다면 평균 키와 평균 몸집이 가장 중요한 핵심일텐데 (오마르 시가 할리우드에서 잘 나가는 프랑스 배우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아산을 연기한 배우는 평균 이상이었다.


두 번째, 아산에게 '가니마르'라고 불리며 아산이 신뢰하는 경찰이자 뤼팽 덕후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캐릭터가 너무 무능했다. 초반에 그가 뤼팽과 아산의 연결 고리를 발견했을 때 그 누구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동료 경찰은 '삼총사랑 아기 돼지 3형제까지 말하지 그래...'라며 그를 비웃었다. 결국 에트르타까지 가 아산을 찾아낸 건 이 게디라라는 경찰이었지만 뤼팽과 아산을 연결시키는 추리는... 개연성이 너무 떨어졌다(동료들에게 비웃음 당할 만함..). 그가 뤼팽 덕후라는 것은 스토리에 녹아 있는 그의 추리라기보다 경찰서에 붙어 있는 뤼팽 포스터, 책들, 그리고 휴대폰 비밀번호 813(진짜 설마설마했음) 등 삽입된 장면(즉, 억지 연출)으로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뤼팽 덕후로서 뤼팽 덕후를 오히려 물 먹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담이지만 사크레쾨르가 바로 뒤에 보이는 아산의 집이 어딘지 찾고 싶어서 구글에서 사크레 쾨르 앞 광장을 뒤진 지 5분도 안돼서 아산의 집을 찾은 나도 (심지어 드라마에 나온 뤼팽 책도 갖고 있음) 뤼팽 덕후로 인정?(그런데 왜 게디라가 북아프리카계라고 언급하는 대사를 굳이 넣었을까)



처음에는 푸니쿨라가 있는 광장인 줄 알았는데 거기는 큰 건물이 없었고 밑으로 좀만 내려가 보니 바로 비슷한 건물이 있었다. 드라마 볼 때 수도원인가 했는데 고등학교였음



게디라 사무실에 있던 뤼팽 책과 포스터. 저 기암성(L'Aiguille creuse) 어디서 많이 보던 건데...?


현재 가지고 있는 뤼팽 시리즈들


휴가 갔을 때  르블랑이 있었던 곳에 우연히 방문하고 산 책


모리스 르블랑은 아니지만, 또 다른 프랑스 소설가 가스통 르루(오페라의 유령 작가)의 '검은 옷의 부인의 향기'





 

블랙워싱의 연장선상인지 모르겠지만 굳이 넣지도 않아도 될 장면도 있었다. 에트르타에서 아들을 납치한 레오나르는 에트르타 근처 소도시의 한 카페에 들러 펠레그리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님과 주인은 모두 백인으로 레오나르 그리고 아산이 가게에 들어오자 못 볼 것이라도 보듯 모두 노골적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장면을 두 번이나 집어넣은 의도 역시 잘 느껴졌다(영상에서 절대 그냥 집어넣는 장면은 없다). 또한 이민 온 나라에서 그저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인 선량한 아프리카계 이민자에게 누명을 씌워 그를 자살하게 만들고 25년이 지난 후 그 아들까지 파멸시키려는 거대 악은 프랑스 백인 부자로, 선과 악의 구도를 너무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다.


이러한 의도가 특히 불편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파리 지하철에서 Sex Education이라는 드라마 광고에 충격을 받은 유교걸(a.k.a. 나)은 그 기억에 이끌려 훗날 한국에서 순화된 제목의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란 영드를 보게 되었다. 역시 영국 드라마야~라고 하며 남편과 친구에게 강추했던 시즌 1과는 달리, 과도한 pc 주의(시즌 1도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에 물든 시즌 2는 도저히 이어 볼 수가 없었다. 더 화가 났던 이유는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언어적 표현을 쓰지 말자는 정치적 올바름으로 떡칠된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와 같은 드라마에서조차 "내 체액에서 김치 맛이 난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며 아시아를 차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옐로우워싱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다시 말하지만 나는 원작 사랑..). 결국 영상에 담고 싶어 하는 인권과 평등은 모두를 위한 인권이 아닌 선택적 인권과 평등에 불과한 허울 좋은 말이라는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에 (+유럽에 살았던 동양 여성으로서) 더더욱 불편했던 것이었다.



그 밖에도 모리스 르블랑 생일이 12월 11일인데 12월의 에트르타 여행객 옷차림이나, 모리스 르블랑 생일에서 며칠밖에 지나지 않은 파리 시내에서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나, 이런 옥에 티는 정도는 귀엽게 봐주기로 하자.



12월의 노르망디 해변에 있기에는 너무 추워 보인다. 근데 진짜 12월 11일에 저런 코스프레하고 돌아다니는 사람 있을까? 팩트 체크하러 가봐야겠다...
모리스 르블랑 생일(12월 11일)에 에트르타에 놀러 갔다가 아들이 납치된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저기 반팔 입은 사람은 뭐지?



루브르 박물관을 위시한 오르세 미술관, 카타콤, 샤틀레 극장, 프랑스 국립 도서관까지... 프랑스에서 이런 유명 관광지 촬영 허가를 받으려면 얼마나 욕 나오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만큼 넷플릭스가 얼마나 투자했는지, 또 프랑스에서는 얼마나 이 드라마를 밀어주었는지 잘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자꾸만  '셜록'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라이벌 영국의 셜록 홈즈의 인기로 인해 그를 능가하는 추리소설을 만들기 위해 탄생한 아르센 뤼팽은 그 탄생부터 홈즈의 그늘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원작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명작들이지만 솔직히 드라마는 완패했다고 본다. 콘텐츠로서는 뒤지지 않는데 영국 드라마와 프랑스 드라마는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나는 뤼팽 때문에 파리를 선택해서 인생이 이렇게 됐는데 말이야. 프랑스, 앞으로 분발 좀 하라고!








얼마 전 스페인 뉴스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스페인의 한 성당의 벽화가 엉망으로 복원되어 스페인이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한 두 번이 아님). 스페인 복원, 보존 전문가 협회(ACRE)는 이것을 '반달리즘' 행위라고 규탄했고 미술계는 충격을 받았지만 오히려 이 소동으로 벽화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는데, 일본에서는 이 엉터리 복원 작품을 열쇠고리로 만들어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오페라까지 만들어져 그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같이 보존을 공부한 친구에게 이 기사를 공유하면서 원작은 훼손되었지만 도리어 문화유산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 관광객이 쇄도하고 성당과 마을의 수입에 기여하게 되었으니 좋은 것일까?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관광과 직결되는 문화유산의 경제적 가치로 보았을 때, 훼손된 복원으로 인해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반사이익을 얻게 되었다면 좋은 것일까? 하지만 이런 경제적 이익에도 불구하고 문화유산은 원형과 보존이라는 가치가 더 중요하기에 원작이 훼손된 건 재앙 그 자체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원작을 보존해야 하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를 차지한 드라마에 힘입어 아르센 뤼팽이라는 원작 소설이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드라마 덕분에 원작이 재조명되는 일은 원작러버❤로서도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역시 원작러버이기 때문에 아쉬움을 감출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원작이 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는 문화유산 원형 보존과의 비교는 물론 과할 수도 있겠지만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 아닌 이상 어찌 됐든 원작과 역사라는측면에서 원작을 존중했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앞으로 원작을 바탕으로 할 작품들이 이 문제를 잘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끝을 맺는다.



논란이 된 스페인의 'Ecce Homo' 복원 전후




프랑스 문화부에서 업로드한 모리스 르블랑 게시물에 달린 댓글.

'아르센 뤼팽은 흑인이 아니네? 오마르 시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걸까?' 이런 댓글은 왜 달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사례가 그저 한낱 원작충의 기우에 불과하기를 바란다.







P.S. 방출의 시간!


P.S. 1


아산과 벤자망이 방문했던 도서관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BNF) Richelieu로 국립 미술사 연구소(INHA) 도서관과 문화재 보존 등으로 유명한 그랑제꼴인 École nationale des Chartes 도서관이 있는 곳이다. 저 안에는 미술사(및 관련 전공) 석사 이상의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다. 도서관 메이트랑 열심히 논문 썼던 추억이 새록새록...



P.S.2


진짜로 우연히 들렀던 곳에서 아르센 뤼팽의 흔적을 만났다.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에 영향을 준 쥐미에주에 머무는 동안 살던 집이라고 한다. 아래는 폐허가 된 쥐미에주 수도원.



P.S.3



둘 다 단역이긴 하지만 남편과 같이 촬영했던 배우들이 뤼팽에 나왔다. Quelle ch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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