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카페에 노트북을 들고나가 일을 하던 어느 날.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심심했었던 걸까, 주로 앱으로 웹툰을 보는 나는 우연히 웹으로 네이버 웹툰 페이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평소에는 잘 보지 않았던 '베스트 도전'이 눈에 띄었고, 또 우연히도 어떤 한 만화가 눈을 사로잡았다. 이름하여 '예수쟁이 다이어리.' 작가는 이렇게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었다.
기독교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던 사람, 어느 날 예수쟁이가 되다!
아니, 이거 내 얘기 아냐? 나도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었는데... 그런 내가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를 제 발로 나가는 것도 모자라 소위 말하는 '예수쟁이'가 되었는데,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네? 이 사람은 어떻게 안티 크리스천에서 예수쟁이가 된 거지? 나와 비슷한 이야기에 어느새 빠져들었고 올라온 에피소드를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왜 기독교인이 되었는지 굉장히 관심이 많고 궁금해했다는 것이었다. 특히 믿지 않는 사람들은 더더욱! '안티 크리스천은 어쩌다 예수쟁이가 되었는가' 작가는 그 과정을 매우 간결하게 표현했다. 사실 나는 그 과정이 어떤 것인지 알았기 때문에 많은 말이나 묘사가 필요 없다는 것을 잘 이해했지만 다른 독자들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심지어 논리적이고 설득적인 이유를 원했다. 생각보다 많은 관심에 의아했던 나는, 나야말로 왜 교회를 가게 되었나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 그 이유를 읽고 단 한 명이라도 기독교에 관심을 가진다면 타자 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나의 일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한 번 써 내려가 보자고 생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교회에 대한 첫 기억은 아마 '달란트'였던 것 같다. 교회 학교의 달란트 잔치 같은 곳에 초대를 받았던 거겠지? 구체적으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웃의 초대를 받아 교회 학교에 가서 달란트를 받아서 선물을 교환하고 뭐 그랬을 것이다. 덕분에 '달란트'라는 말은 안티 기독교인이었던 나에게도 매우 익숙한 그런 단어였다. 하지만 교회와의 접점은 그게 다였다. 단지 주변에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어떻게 황금 같은 주말 중 일요일에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갈 수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을 했다. 매 일요일 교회에 나가는 것만으로 정말 대단한 믿음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제와 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지만.
사실 교회에는 어떤 접점도 없을 수밖에. 가족 중 아무도 교회를 다니는 분이 없었고 주변에 딱히 교회에 오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 있었어도 들은 체도 안 했을 테지만. 그러던 중, 엄마가 성당에서 세례를 받게 되었다. 드디어 처음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를 아우르는 말로 사용하지만 천주교에서는 그리스도교라고 한다고 한다. 보통 기독교=개신교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걸까?)와 접점이 생긴 것이다. 열성적인 초신자인 엄마는 나도 교리 공부를 받고 세례를 받기 원했다. 그래서 20만 원을 줄 테니 교리 공부를 하라고 했다. 지금도 물론 큰돈이지만 당시 20만 원은 매우 큰 유혹이었다. 돈에 약했던 나지만 머리가 이미 커버린 나는 20만 원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절~대~ 돈을 억만금을 줘도 교리 공부 따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돈만 받고 대충 다닐 법도 한데, 돈도 필요없을 만큼 기독교가 정말 싫었던 것이다. 참고로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동생은 엄마 손에 이끌려 세례를 받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오히려 천주교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가톨릭 국가였던 프랑스를 좋아했고, 유럽의 역사와 미술은 가톨릭과 관계가 깊었으며 천주교인들은 꼭 자기 성당에 오라고 하지 않았던 게 좋았다. 내가 개신교를 싫어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극성맞아 보이는 전도 때문이었다. 교회 나오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왜 꼭 자기네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걸까? 성당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다니면 되는데, 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집 앞에 널린 교회를 안 가고 굳이 굳이 먼 곳으로, 심지어 교회를 따라 이사를 가면서까지 한 곳을 고집하는 걸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랬던 내가, 파주에서 인천까지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니! 이래서 사람은 입 조심을 해야 해.
그렇게 기독교를 싫어하던 나의 첫 자발적 종교 행위는 삼반수를 하던 때였다. 역시 인간은 고난 중에 자기가 필요할 때만 신을 찾게 되는 걸까? 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을 것이 필요했다. 모름지기 반수란 돌아갈 곳이 있어서 더 마음이 편하다고 하는데, 오히려 나는 생재수보다 더 두려웠다. 그 돌아갈 곳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돈을 준다해도 교리 공부를 안 받는다고 했던 나였지만, 수능 시험 전날 성당에서 신부님이 기도를 해준다기에 불안하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 발로 성당에 찾아갔다. 지금도 그렇지만(지금은 추워서 양말은 꼭 신지만) 겨울에도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던 나는, 그 와중에도 슬리퍼를 신고 성당에 갔고 슬리퍼를 신고 신부님께 나가 기도를 받았다. 그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슬리퍼 신은 발이 매우 부끄러웠던...)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XXX(aka. ㅇㅇㅊ)였는데... 양아치 같든 이기적인 이유였든 간에 어쨌든 그날이 내 생애 첫 자발적 종교 행위가 이뤄진 날이었다. 얼마 전 수능 시험이 끝났다. 교회의 고3 학생 한 명과 연결이 되어 그 학생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를 하고, 또 교회에서 모든 교인들이 고3 수험생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어떻게 나 혼자서 그 모든 길을 헤쳐나갔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찔하기만 했다. 물론 하나님은 항상 내 옆에 있어주셨던 걸 그때 나는 몰랐었지만. 하지만 나홀로 감내하던(한다고 생각했던) 그 고통에 절여진 마음은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리스도로 나가는 데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하여튼 기도빨(?) 덕분이었을까.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없게 원하는 대학에 붙여주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