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일잘러
오늘은 회사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
어려운 업무를 척척 해오는 사람?
맡겨진 범위 이상의 결과물을 가져오는 사람?
혼자서 여러 종류의 일을 다 할 수 있는 사람?
손이 빠른 사람?
우리는 회사에서 종종 소시오패스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내 상식과 니 상식이 다른 경우를 보기도 하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월급만 축내는 젖은 낙엽 같은 사람과 엮이기도 하므로 위와 같은 질문이 참 배부른 소리이긴 합니다. 그래도 완벽한 동료에 대한 꿈을 같이 꾸어본다는 관점에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이버 그리고 IT스타트업에서 십 년 넘게 일하고 있고, 사업개발 조직을 맡고 있는 리더 입장에서 일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를 꼽자면 '업무의 Visibility, 가시성이 있는 사람, 예측이 되는 사람'입니다. '업무의 가시성'이란, 업무의 진행상황, 일이 얼만큼 진척되었는지 이슈와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가입니다.
작은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회사가 성장하면서 규모가 30명이 넘어가면 내 옆의 동료가 무슨 일을 어떻게, 얼마만큼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없습니다. 특히 협업이 많고 업무가 빠르게 진행되어야 하는 회사라면 (모든 회사가 이런 것 같지만, 제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회사들을 되짚어 보면 모든 회사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매번 루틴한 일을 하는 회사도 있는데, 이런 곳들이 아니라면) 내 동료의 업무 상태에 따라 내 업무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서비스 개발을 하는 일반적인 순서, 기획 > 디자인 > 개발 > QA 라는 아주 보편적인 상황에서도 그렇고요. 아주 작은 서비스 운영 정책을 바꾼다고 해도 서비스에 공지하고, 약관을 변경하고, CS 대응을 준비하고 하는 과정을 서로 다른 담당자가 합을 맞춰햐 합니다. 또한 외부와 사업 제휴를 한다고 하면 사업 제휴 관계에 발생할 수 있는 이슈에 대해서 법무 검토를 마치고, 실 서비스에 적용하고, 외부에 홍보를 할 때에도 그렇습니다. 옆 사람의 일의 진행 경과에 따라서 내가 언제 이 일을 시작해야는지 내 일의 종료 시점이 언제가 될지 감을 잡을 수 있고, 옆 사람 일의 퀄리티에 따라 내 일의 양이 늘어나기도 하고 줄기도 합니다. 조직의 리더 혹은 프로젝트 관리자라면, 어디가 병목인지 이슈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어야 조율 및 문제 해결을 하여 일정 내에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업무 가시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협업 도구(tool)를 쓰기도 합니다. 구성원들은 협업 툴에 업무 리스트를 적고, 예상 소요 시간을 입력합니다. 업무 별 우선순위를 적기도 합니다. 그리고 업무별 진척 상황을 입력하고 STAGE를 옮기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 파악(=가시성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런 협업 툴 도입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듭니다. 회사는 툴을 도입하면 사용법을 알려야 하고, 사용자들은 일정 부분 교육도 받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들입니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면(혹은 스프린트마다) 업무를 입력하고 예상 소요시간 산정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모두가 가시성을 확보하지는 못합니다. tool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tool을 도입해도 변수는 사람입니다.
우선 업무 리스트를 정확히 입력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각자의 역할을 완수함에 있어 자신이 처리해야 할 일을 세세하게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알더라도 세세하게 나열하지 않고 본인의 머릿속에만 생각하고 꺼내놓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혼자 하는 업무가 아니고서야, 함께 결과를 체크하고 넘어가야 하는 경우라면 모든 업무 리스트를 꼼꼼하게 늘어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일정 예측이 제대로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그리고 이는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본인과 그 일감이 완료되길 기다리는 다음 사람의 일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두 번째, 본인의 업무가 계획대로 진척되고 있음 혹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음 혹은 언제 끝날지 모르겠음을 다양한 협업 채널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다면야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빨리 진행 상황을 공유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묵혀 두고 있거나, 혹은 스스로가 상황 파악을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행 상황을 물었더니 "오늘까지 될 줄 알았는데, 아직 안 되네요. 근데 이것만 처리되면 가능할 것도 같아요."라는 애매한 답을 하는 경우 상대방은 애매해집니다. 업무가 연기되어도, 아무리 늦추어져도 며칠 이상은 안된다 라는 판단 기준이 필요합니다. 전체 일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동료의 업무에 영향을 주기 전에 빠르게 red flag를 띄우고 공유를 해야 합니다. 좀 더 하면 될 것 같아서, 아직 말할 때가 아닌 것 같아서, 말하려니 미안해서 등등의 이유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예정대로라면 오늘까지 이만큼 되었어야 했는데, 사정상 문제 해결을 하지 못했다고, 전체 일정에 차질이 있을 것 같다고 먼저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업무의 기복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몇 번 같이 일하다 보면, 상대방의 업무 패턴과 속도에 대한 기대치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정도면 상대방이 어느 정도 어느 수준으로 진행하고 있겠구나 감이 오는데요. 업무 진행 속도가 평이하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업무 속도와 퀄리티에 굴곡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협업이 쉽지는 않습니다. 또한 즉흥적으로 휴가를 내는 사람,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함께 뛰는 레이스인 만큼 상대방의 기복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이전 레이스에서 갑자기 주저앉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함께 뛰기에 불안한 것이 사실입니다.
가시성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결국 상대방을 배려하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일에 영향을 받는 동료들에게 내 상황을 좀 더 투명하게 보여준다면 문제는 좀 더 빨리 해결되고, 회사 생활의 짐이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