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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영 Jan 28. 2021

일머리

가족과 사적 대화


살면서 병원 법원은 멀리하라고 했건만,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기에 지금 내 이름으로 된 사건이 서울중앙지법에 올라가 있다. 전에 살던 집에서 이사를 나오면서 받지 못한 전세금 때문이다. 계약 만료 4개월을 앞두고 이사 가겠다고 했음에도 이사를 한 한 달 뒤 지금까지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참 애도 타고 화도 많이 났던 시간들이었는데, 내 화에는 집주인 지분도 있지만 남편 지분도 적지 않다. 남편의 이 사태를 대하는 감정은 분노, 액션 플랜은 집주인 응징에 집중되었다. 나도 집주인에게 화나기로 따지면 못지않았지만 어떻게 하면 우리 손해를 최소화하고 더 큰 피해를 막을 것인가를 고민했던 반면, 남편은 집주인을 x되게 하고 싶다. 빅엿을 먹이고 싶다 라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변호사라는 한 친구와 의견을 교환하면서 작전을 짜 왔다. 내가 직접 집주인을 상대하기도 싫고, 매번 집안일을 내가 처리해왔으니 이번엔 한번 남편에게 선두를 내줄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제버릇 개 못 준다고 항상 그렇듯이 계속 검색은 해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계약은 만료되었고, 또 시간이 흘러  우리가 예정한 이삿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주일 전이 되었다. 예상했듯이 전세금에 대해 집주인은 어떠한 대책도 사과도 없었다. 그래서 임차권등기를 설정 준비를 하는 중에 남편이 줄곧 이사하는 날 신청을 넣으면 된다던 임차권등기가 이사 가기 전이라도, 계약 종료 시점 그 날부터 하루빨리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등기가 완료될 때까지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등록이 된 날부터 지연 이자를 더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남편만 믿다가 열흘을 넘게 날려버린 것. 결국 남편에게 짜증을 한바탕 내고 회사엔 휴가를 내고 바로 다음날 관할 법원에 임차권등기를 신청했다. 변호사라는 남편 친구는 그날 당장은 소송이 있어서 자기가 하려면 하루가 더 지체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였는데, 남편만 믿고 있다가 낭패를 보았다. 남편이 캐치를 못한 것인지, 변호사가 제대로 노티를 안 해 준 것인지 확실치 않다. 여하튼 둘 다 귀책에 자유롭진 않았고 나에게 신뢰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임차권등기와 병행하여 전세금 반환을 청구하기로 했다. 셀프로 하기 수월하다는 지급명령과 전세금 반환 소송을 가운데, 남편은 변호사 친구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전세금 반환 소송을 하자고 했다. 왜냐 집주인에게 엿을 먹여야 하기 때문에;; 전세금 반환 소송이 집주인 입장에서 더 짜증 날 테니?

저 유일한 근거가 어이없었지만, 신경 쓰기 싫고 회피하고 싶어 알아서 하라고 했다. 소장이 접수되고 200만 원에 가까운 인지대와 변호사 수임료 몇 백만 원을 입금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주에 소장이 전 집주인에게 도달되어 소가 개시되었다. 소장 도달된 시점부터 12% 이자를 추가로 청구할 수 있고 우린 승소할테니 변호사 비용을 받을 수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가 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주인에게 연락이 와 집이 나갔으니 전세금을 주겠다고 했다. 우린 그간 받지 못한 전세금 때문에 다른 곳에서 급전을 빌리기도 했도 맘고생도 참 많이 했는데 소장이 전달되자마자 종결되는 느낌이 뭔가 아쉽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집주인에 대한 응징도 제대로 못한 듯했다.


그런데 남편이 덤으로 새로운 정보 하나를 더 전달해왔다. 이렇게 변론도 제대로 못하고 종결될 경우 변호사 비용을 집주인에게 청구해도 법원이 인정 안 해줄 수 있다고 한다. 이마저도 안 해주는 게 확실한지 줄 수도 있는지 확실치 않다. 정확한 게 하나도 없다.


집주인에게 몇 프로의 이자를 더 청구하기 위해 (즉, 엿을 먹이게 위해)

나까지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우리 집은 역세권에 오래되지 않은 아파트라 거래가 안될 집이 아니었다. 그래서 집주인은 괘씸하지만 비용 청구자체에 돈 많이 쓰지 말자고 셀프로 하던가 비용 저렴한 법무사 쓰자고 했었는데 남편 분노 해소의 대가로 큰돈을 써버린 꼴이 되었다.


안 그래도 일처리 하는 과정 과정마다 못 미더웠으나 별일 있겠나 싶고 귀찮아서 옆에서 잔소리 섞인 응원을 하기만 했는데, 이렇게 되어버렸다. 중간중간 변호사 친구의 카톡을 전해받았지만 이런 가능성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었던 것이다. 이번엔 또 누구의 실책인가.


돈 500도 아깝지만, 감정에 어두워 일처리를 잘 못하는 남편과 앞으로 인생의 대소사를 어떻게 처리할지 깝깝해온다.

이 일머리 없는 남편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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