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책 _ 마쓰이에 마사시
세밀한 묘사에 남의 인생이 내 인생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이 책을 인생책이라 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책이면서도 사람의 생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고민하고
노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일본 홋카이도 에다루 지역에 살아가는 소에지마 가문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모두 평범한 인물이고 이렇다 할 엄청난 사건은 없다. 아이를 낳고, 태어난 아이가 가족, 친구와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연인을 만나고, 누군가와는 가정을 이룬다. 그리고 아프고, 늙고, 병든다. 그렇게 죽는다. 그럼에도 이 책이 대단한 것은 뭉쳐놓고 보면 놀라울 것 없는 생로병사의 일들이지만 한 명 한 명의 인생에는 모두 새로운 이벤트라는 것을 정성스럽게 보여주는데, 그 과정들에 매우 몰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비슷한 순간일 수 있어도, 개개인에게는 매우 찬란하고 또 쓰라리다. 너무 세밀해서 눈물이 차오르는 책이다.
담담하기만 한 문체와 사건인데, 500여 페이지나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을 계속 붙들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의 인물들이 내 아버지, 어머니였고, 또한 내 동생 이야기였고,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마쓰에이 마사시의 전작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이 한 편의 고전 영화를 보는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에서는 우아하면서도 쓸쓸한 이웃을 들여다보는 듯했다면 이번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섰다. 당연히 영화 같지도 우아하지도 않다. 때론 따뜻하고 활기차지만, 슬프면서도 외로운.. 이것이 인생이고, 일생이다 라고 말한다.
다 읽고 나면, 다 이렇게 살아.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자연스럽게 떠나자.. 로 귀결되어 한없이 쓸쓸하다. 그러나 잘 만든 허구의 이야기니까 옆으로 치워버리자 하고 놓아지지 않는 책. 오래 기억될 것 같은 책이다.
범인들의 일생을 관통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출산은 기다리는 일이지.' <조산사 요네가 하는 말> 497p
"짐 없이 그냥 산책을 하세요. 자신에게 기분 좋은 속도면 좋아요. 서두르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멍하니 걸으세요. (...) 다만 다른 사람과 함께 걷지는 말아야 해요. 걸음걸이가 흐트러지고 옆을 향하고 말하며 걸으면 건성으로 걷게 되거든요. 기분 내키는 대로 혼자 걷는 게 중요해요." <요네의 스승이 임부에게 했던 말> 83p
인생에는 왜 되돌아가기가 없을까, 하고 신지로는 생각한다. 때가 되면 산란하고, 수컷은 서둘러 알에 정자를 뿌리고, 알은 곧 치어가 된다. 부모는 힘이 다하여 또는 늙어 죽어간다. 246p
부모의 비호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아이가 있는 일상은 일시정지를 할 수도 없고, 한숨을 쉬며 등을 돌린 채 내팽개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412p
오래 애용해서 낡은 가방이 입을 벌리고 방구석에 놓여 있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마음. 버릴 마음도 없지만 왁스도 칠하지 않고 지퍼를 잠근 채 어딘가에 넣어두지도 않는다. 언제든 손에 들 수 있는 것. (...) 삿포로에 있으면 부모님을 생각하는 시간도 마음도 어딘가에 넣어둔 채 잊고 있는 일이 많아졌다. 253p
가족은 가족을 어색하게 보낼 수밖에 없다. 403p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라는 걸 절감해.' 406p
사람이 사건을 겪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장면이 사람을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그리는 표현들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들이 겪는 커다란 사건도 누구나 공평하게 한 번씩 통과하는 과정인 것처럼 말이다.
아유미는 다가오는 광경을 좌우로 갈라지며 뒤로 물러난다. 210p
달콤한 냄새가 감도는 거리를 자신의 속도로 걸어가는 것이 최고였다. (...) 센트럴파크의 마차가 떨어트리고 간 말똥 냄새도 걷는 속도로 다가가도 멀어져간다. 305p
멀다는 것에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작게 하여 보이지 않게 하는 작용이 있다. 은하계도 수십, 수백 광년이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소용돌이 몽야의 형태를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330p
결국. 이 소설은 사건으로 위와 같은 문장들로 같은 메세지를 전했다.
'모두 이렇게 사는 거야.' 라고...
소설에서 작가의 평소 생각, 삶을 대하는 시선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중간중간 작가의 독백 같은 메세지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울림이 컸다. 마쓰이에 마사시는 분명 멋진 어르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리는 속도야. 속도가 소리가 된다고 해도 좋겠지. 미닫이를 빨리 닫는 소리는 빨라. 천천히 닫는 소리는 느리고. ."
선생이 미닫이문 앞에 서서 오른손으로 휙 열고 휙 닫았다. 직선 같은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이번에는 천천히 열고 천천히 닫는다. 다다미 위를 기는 듯이 곧 가라앉는 소리.
"서두르든 서두르지 않든 결국 걸리는 시간은 이 초 차이도 안 나. 그런데도 서둘러 열고 닫지. 서두르고 있다고 자기주장을 하는 것에 불과해."
84p. <조산사 요네의 스승이 하는 말>
자신의 마음조차 잘 알 수 없는데 남의 마음을 알 턱이 없다. 남의 마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몰라서 다행이다, 하고 아유미는 생각한다. 알 수 있는 거라면 개나 고양이처럼 서로의 냄새, 울음소리, 몸짓이 더 믿음이 간다. 말 같은 건 사실상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319p.
애초에 개의 우열을 다투고 채점한다는 것도 남자나 생각할 법한 일 아닐까. 아유미는 생각했다. 여자만의 세계가 있다면 우승이니 준우승이니 하는 결말을 짓는 경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타인에게 가치를 정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상당히 이상한 절차다. 지로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우리 가족이다. 131p.
나의 소실점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