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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영 Oct 03. 2023

좋은 의도와 선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결과

사업의 기술 4

이색적인 제휴 사례를 하나 더 소개하려고 한다. 기술 마케팅 캠페인을 셀럽과 함께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네이버 클로바의 대표 목소리는 유인나이다. 네이버지도 내비에서도 유인나의 목소리를 통해 길안내를 받을 수 있다. 유인나 님이 네이버 목소리가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2016년, 나는 네이버랩스의 음성합성 기술을 알리고, 사업성이 있을지 확인하라는 미션을 받았다.


음성합성이라는 것은,  Text-to-Speech(TTS). 입력된 문자를 소리로 바꿔주는 것이다.

음성합성기술을 알린다라는 것은, 미리 녹음해 둔 최소의 음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장을 입력했을 때에 얼마나 음성이 자연스럽게 발화하는지를 자랑하는 것이다.   


네이버랩스의 음성합성기술이 당시 구글이나 몇몇 음성 기술 회사들보다 우월하다는 학술적 근거가 있었지만 일반인들 세계에서는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고, 아직 이렇다 할 쓰임새도 없는 상황이었다. (바야흐로 2016년이니... AI 스피커가 활성화되기 직전..)


연예인을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홍보가 될 수 있을 테니 연예인 목소리로 음성합성 결과물을 만들어내 보기로 했다. 말은 참 쉽다만.. 사실 꿈같은 소리였다. 어떤 연예인이 그걸 해준단 말인가.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았다.


1. 어떠한 연예인? 그가 대체 이걸 왜 하지?

2. 연예인의 목소리 녹음에 상당한 시간이 들어갈 텐데, 돈은 얼마나 줘야 하지?

3. 녹음 한 목소리를 가지고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할까? 오디오북? 내비게이션?


우선 3번, 어떤 결과물을 만들 것이냐에 대한 문제부터 답을 내렸다. 당시 내비게이션 음성 안내를 합성 목소리로 하는 곳은 없었다. 연예인으로부터 모든 발화 문장 (500미터 앞 우회전입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입니다. 300미터 앞에서 구간 단속이 시작됩니다 등)을 모두 통으로 읽게 하고 녹음된 내용이 그대로 나가는 케이스는 있어도, 합성한 내비게이션은 없었다. 우리를 받아줄 서비스도 없었지만 결과물을 개런티 하기도 힘든 모험적인 상황이었다. 결국 기술 적용의 난이도나 안정성 측면에서 오디오북이 적절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오디오북으로 결정되자, 많은 부분에서 방향이 잡혔다. 당시 국내에서는 윌라나 밀리 같은 오디오북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전이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연예인의 오디오북 캠페인이 간헐적으로 있었다. (하아- 옛날 사람.. 또 한 번 현타가 온다..) 그것도 당연히 음성합성은 아니었고, 재능 기부의 형식으로 연예인이 책 한 권을 통째로 다 읽은 것들만 존재했다.


기부? 재능기부!? 라는 데에서 힌트를 얻었다. 사실 회사는 음성합성기술을 알리자 해놓고 예산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즉 마케팅 예산이 하나도 없었다. 반면 우리가 가진 것은 오로지 기술력,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댈 것은 상대의 선한 의지였다. 우리도 수익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사회공헌이라는 판을 벌렸다.


사업제휴의 Tip.
정공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의도와 선한 마음이 만나는 사회공헌이라는 포맷도 가능하다.


얼마뒤 유인나 님의 소속사인 YG 제휴사업팀 그리고 사회공헌팀과 함께 하는 미팅이 잡혔다. 이날 내가 강조한 것은


1. 유인나의 목소리를 활용한 재능 기부, 사회 공헌을 통한 이미지 제고

이게 미팅을 성사시킨 부분이었다. 이전의 오디오북과 달리 기술 기반의 새로운 시도이며, 유인나 님의 예쁜 목소리를 좋아하는 시각장애인들 혹은 일반인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설명했다. 두 시간씩 세 번만 책의 일부를 읽으면 된다고 했다.


2. 유인나의 목소리 녹음을 통한 향후 수익 활동의 가능성

이게 진심을 다해 유인나 님에게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었다. 유인나의 젊은 시절의 목소리를 하나라도 더 DB화 하고, 음성합성 소스로 활용한다면 향후 음성합성기가 더 많이 상용화되는 시점에 꼭 YG와 유인나 님의 수익으로 돌아올 것이라 강조했다. (그리고 약 1-2년 후 실제 그렇게 되었다.)



매우 운이 좋게도 YG와 유인나 님이 승낙을 해주었다. 해피빈과 함께하는 오디오북 기부 캠페인이라는 타이틀 아래 캠페인을 만들 수 있었다. 유인나 님은 생각보다 긴 시간 녹음에 동참했고, 결과적으로 네이버랩스는 기술력을 뽐낼 수 있는 오디오북 3권이 완성시켜 세상에 내놓았다.


https://zdnet.co.kr/view/?no=20160804140310




이 사회공헌 캠페인 이후, 음성합성 기술은 네이버 클로바 서비스에서 전면으로 나서게 되며 유인나의 목소리는 네이버가 만든 스피커의 공식 목소리가 되었다. 오디오북 캠페인을 위해 무상으로 녹음한 DB에 신규 녹음까지 더해졌고, 네이버는 유인나 측과 목소리 사용 계약을 정식으로 맺었다. 음성합성 기술이 점차 고도화되고, 읽어둔 DB의 양이 타 셀럽보다 많으니 가장 자연스러운 음성합성기로 네이버의 목소리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우수한 음성합성 기술력을 홍보하고, 유인나 님의 선한 마음과 예쁜 목소리를 알리려는 작은 캠페인이 네이버에 좋은 씨앗이 되었고, 유인나 님의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하게 해 주었다.


뚜렷한 자산도 예산도 없는 때에 진행한 이 기술 마케팅 사례는 사회공헌 캠페인이라는 포맷 아래서

YG로부터 유인나 님의 오디오북 녹음 시간과 목소리 사용권을 허락받았고,

민음사로부터 고전문학 텍스트를 받고,

네이버랩스는 음성합성기술을 자랑하는 기술마케팅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네이버랩스는 매우 순박했다. 기술력 하나만 생각하는 순수한 개발자들과 함께 사업을 논하는 상황에 실소가 나오기도 했지만, 사실은 나도 최고의 엔지니어들과 일한다는 만족감과 음성합성 오디오북이라는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는 도전적인 과제에 취해서 즐겁게 일했다. 그 결과 네이버의 AI 음성 기술이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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