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주영 Oct 08. 2023

판을 접어야 할 때

지금까지 프로덕트의 성공을 위해 판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비스가 돌아갈 수 있도록 판을 까는(마중물을 붓는) 초기 상태를 거치면, 서비스를 성장 단계가 온다.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외부 리소스를 가져오기도 하여 판을 키우는 것. 그렇게 성장만 하면 좋겠으나 방향을 바꾸거나 (피봇팅이라고 말하는 것) 혹은 느닷없이 판을 접어버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스타트업씬에서는 서비스 방향을 바꾸고 프로덕트를 접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팬데믹 같은 사건을 겪으며 세상이 전혀 예측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고, 경쟁 시장의 변화가 오는 등 외부 변수도 있지만, 우리의 가설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프로덕트의 성과가 좋지 않아서인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이제껏 만들어놓은 판을 어떻게 접을 것인가. 이 글은 서비스 피봇팅 혹 프로덕트 출구 전략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네이버를 포함 현재의 회사에서 약 8년 정도 프로덕트 개발에 관여하며 총 2개 프로덕트의 서비스 중단을 경험했으며, 출시 직전에 무산된 1개의 프로덕트까지 여러 번의 피봇팅을 경험했다. 이 정도면 프로덕트 브레이커라고 할 수도 있겠다만, 흔치 않은 경험 속에서 배운(실은, 배우고 싶지는 않은) 것들이 있다.


모든 피봇팅은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시간과 노력이 아깝고 조금만 더 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봇팅을 결정한(엄밀히는 결정당한) 순간을 돌아보면 매몰비용과 기회비용 앞에서 승복하고 말았던 것 같다.


출시를 무사히 하고 시장의 반응을 확인했더라도 경영진, 그리고 PO와 사업개발 담당자는 이 시장이 충분히 큰 시장인지, 수익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를 따지게 된다. 스타트업이 자본금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런웨이)을 따지고,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 지금까지 투입하였고 앞으로 투입할 리소스 대비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작거나 혹은 성공의 시점이 몹시도 멀리 있다고 예측되면, 프로덕트 운영을 지속할 것인지에 대해 검토하게 된다. 여기까지 하다 중단하게 되면 지금까지 투입한 리소스는 모두 매몰 비용이 될 텐데, 여기서 멈추는 게 맞을까, 아님 더 가볼까. 


사용자수가 늘어나고 기존 사용자의 충성도가 증가하는 모습 등 작은 가능성이라도 확인되면 해당 구성원들은 프로덕트를 놓기가 힘들어진다. 작은 마켓이더라도 누군가의 크리티컬 페인포인트를 정확히 해결하고 있다면 연장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나 고민을 하고 망설이는 순간이 길어질수록 향후의 매몰비용도 늘어나는 것이고, 수익성(혹은 가능성)이 더 높은 타 프로젝트에 리소스를 투입할 수 있는 기회(대체 옵션, 잠재 이익)를 포기하는 것이기에 회사와 경영진을 포함한 모두의 마음이 더욱 분주해질 것이다. 


결국 회사 입장에서는, 매몰 비용 그리고 기회비용을 함께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구성원들은 회사와 프로덕트를 대표하는 이들의 결정에 따르게 되고 허망한 마음이 크겠지만, 서비스 피봇팅에 따라 발생하는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 




프로덕트가 접히는 상황에서 요구되는 일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더 건지는 일이다. 프로덕트가 접히는 판국에 대체 무엇을 건지란 말인가. 


1) 우리의 경험이 휘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프로덕트의 오너(PO), PM, 각 팀의 리드/시니어들은 회사와 구성원들 사이에 끼어있는 사람들이다. 피봇팅이 오롯이 이들의 결정이 아님에도 구성원들에게 의사결정 과정을 충분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구성원들이 패배감이 젖을 확률이 높으므로 이것이 비단 구성원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소통해야 한다. 이 프로덕트를 통해서 검증하고 싶은 가설을 무엇이었고 그것의 어느 부분이 맞고 틀렸는지 헤아려보고, 프로덕트 가설을 근거로 하여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납득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회고의 방법론 중 가장 많이 이용하는 KPT(Keep, Problem, Try) 회고 중 Keep과 Try 중심으로 구성원들끼리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이다. 프로덕트 진행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복기하며 중요한 모먼트, 각자가 성장한 순간을 나누고,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좀 더 해보았으면 좋았을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각자의 경험과 배움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Problem(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공유하는 순간, 과도한 자아비판과 지적질이 난무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소스코드, 디자인 산출물 등 각종 결과물 아카이빙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당장 쓸 데가 없더라도...)


2) 사용자를 챙기자.


유사한 서비스를 만들어 피봇팅 하기로 했다면 서비스 간 사용자가 넘어갈 수 있도록 파이프라인을 잘 만들어야 한다. 서비스 초창기부터 우리 서비스를 이용해 왔고 숫자가 적은 만큼 더욱 소중한 고객이다. 이들 또한 사용하던 서비스가 종료 혹은 이관됨으로 불편함을 겪게 됨은 물론이고, 개인정보 보호에 민감한 분들이 많다. 충분한 안내로 불안감과 불편함을 없애줘야 한다. 


3) 특허 매각, 서비스 매각 등의 가능성을 알아보자.


우리가 등록한 특허 혹은 서비스 자체를 원하는 회사가 있을 수 있다. 서비스 종료를 결정하고 오픈하고 나서는 인수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매각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서비스라면, 서비스가 종료를 고지하기 전에 가까운 파트너사, 관련 회사들에게 알리는 것도 좋다. 다만 해당 서비스가 낮은 가격에 매각되면 회사의 손실로 처리되기 때문에 제무재표 등 지표에 안 좋은 영향이 있다. 투자사와도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4) 관계를 정리하자.


프로덕트를 굴리기까지 도움을 준 분들이 많다. 협력한 제휴사도 있을 것이다. 이들과 관계를 잘 마무리해야 한다. 서비스가 종료되었을 뿐 회사가 망한 것은 아니고, 담당자인 우리가 한국을 떠나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어디서 또 만나게 되어 있다. 손해를 입을 만한 혹은 문제 제기를 할만한 회사가 있는지 계약 문서를 검토하고, 이슈가 생길 소지가 있다면 대안을 마련하고, 만나서 풀어야 한다. 그리고 계약을 넘어서서 신의성실로 협력한 파트너사, 도움을 주었던 지인들에게는 진실한 설명을 하자. 우리를 안쓰럽게 여기거나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살필 것은 우리 자신이다. 스타트업씬에서 프로덕트가 접힌다는 것은, 은퇴의 꿈이 뒤로 후퇴했다는 의미이며 우리가 쏟아부었던 노력들, 전전긍긍했던 시간들이 모두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스타트업의 초기멤버라거나 온 마음으로 프로덕트를 만들었던 많은 구성원들은 허망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에 성공한 스타트업은 거의 없다. 일본에서의 모든 서비스를 말아먹고 뚝심을 버티다가 소 뒷걸음질 치는 형국으로 LINE을 성공시킨 네이버도 그러했고, 토스 또한 기능 단에서 많은 피봇팅을 하면서 지금의 토스가 되었다. 


피봇팅 및 프로덕트 중단이라는 경험 또한 쓸모없는 것만은 아니고, 지금의 멈춤은 또 다른 동력이 되고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의 생사고락을 잘 기억하고 담아두며 에너지를 응축하자. 




이전 14화 제휴를 위한 제휴는 그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