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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영 Oct 04. 2023

제휴를 위한 제휴는 그만

앞선 글들에서 소개한

대표적인 전략적 제휴 케이스라던지, 다양한 형태의 이색적인 사업 제휴 케이스들과 다른 허울뿐인 제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뉴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oo-oo 제휴 협약식, 양해각서(MoU) 체결 등등의 현수막 아래 사인을 하는 장면, 사인한 문서를 가운데 들고 포즈를 취하는 장면, 양복을 입은 분들이 손을 맞잡은 장면들 대부분은 서로 다른 회사나 기관이 이제 우리 둘이서 혹은 셋이서 잘해보기로 했습니다- 하고 약속을 하는 행사인데, 이런 행사들의 가장 소중한 결과물은 '행사' 그 자체, 혹은 '뉴스 기사'인 경우가 많다.



실제 경험을 소개하자면, 언젠가 S시의(우리나라에 S시는 수없이 많다. 상주시, 성주시, 순천시, 시흥시 등등 그러니 때려 맞추기는 금물) 청년 지원 사업 부서와 당시 내가 있던 회사가 협약을 맺게 되었다. 사실 팀원이 S시와의 협력 아이템을 들고 왔을 때부터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인 우리에게 S시와 MoU기사가 작게나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을 해서 진행을 했다. 담당 팀원은 S시 주무관을 만나 미팅도 하고 MoU 문서의 내용을 몇 차례 주고받으며 협약 내용을 완성했다. 그리고 협약식 당일, 우리 대표와 함께 행사장으로 이동하니 그야말로 온갖 허례허식의 끝판이 펼쳐지고 있었다. 입구부터 전문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고, 협약식 현수막이 흰 천에 가려져 있었다. 줄을 당겨 현수막을 내리는 행사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와우! 이런 행사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이날 해당 팀의 과장님과 회의를 희망했으나 당일은 어렵다고 차후로 미루어졌었는데, 사정을 알 만했다. 협약식이 시작되고 우리 대표님이 시장님과 나란히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악수를 하고 협약서를 사이좋기 나눠 들기도 하고,  마지막엔 현수막 줄까지 당기며 멋내기 포즈를 수십 번 취하니 행사가 끝났다. 잠시 해당 주무 과장님과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였고, 돌아와 협력안 논의 미팅을 몇 번 제안했지만 한 번도 진행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S시 홍보팀의 네트워크를 타고 우리 회사 이름이 이런저런 뉴스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위 케이스에서, S시는 행사 자체가 중요한 결과물이었다. 유망한 블록체인 스타트업 대표를 한 자리에 앉혀서 MoU 행사를 진행했다는 것으로 해당 팀은 좋은 고과를 받았을 수 있다. 우리는, 뉴스 기사를 얻었다. 검색창에 우리 회사의 사명을 검색했을 때에 회사의 사업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기사가 노출된 것이 소득이다. (내 입장에서는 이 행사 참석으로 시간을 뺏긴 것이 아깝고, 내 성과평과에 한 줄도 쓸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렇듯 행사를 위한 행사에 참여하는 경우도 남는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좀 더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혹은 미래를 예견하기 위해 알아두면 좋은 것을 남겨보려고 한다.


국내 공기업(혹은 대기업)과 제휴 협약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간단하게 말하면 대충 이렇다.


1. 공동의 협력 목표과 양사 역할이 담긴 MoU 문서를 만들어야 한다.

1) 해야 할 일이나 양사의 의무가 두루뭉술하게 기재되어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보자. 이런 경우 대부분 실질적 업무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 상대도 우리에게 딱히 요구하지 않는다면 일단 반쯤 글렀다고 봐도 좋다...

2) 상대편 의무는 두루뭉술하면서 우리쪽 의무/역할만 디테일하게 잔뜩 집어넣은 케이스도 조심해야 한다. 우리도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거나, 상대에게 좀 더 명확한 역할을 요구해야 한다.

3) 양해각서 내용은 물론 상대방 회사의 내부 승인을 위한 문서를 만들어달라는 경우도 있다. 카운터파트너를 잘못 만난 것인데, 꼭 필요한 제휴라고 판단되면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가야 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핵심 기술이 있거나 상대방도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되면 적당한 선에서 커트해야 한다.


2. 행사 당일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장소 세팅, 현수막 제작 및 설치, 양해각서를 넣은 판때기, 자리에 놓일 이름표, 촬영을 도와줄 포토그래퍼 등등이 준비되어야 한다. 코사지를 준비하는 곳도 보았더랬다. 공기업(혹은 대기업) 입장에서는 양사가 만나서 약속을 하는 자리이고, 높으신 분들이 나오시니 형식 또한 무시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에게는 익숙하지 않고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어느 회사에서 진행할 것인지, 현수막을 누가 준비하느냐에 따라 일이 가중될 수 있다. 스타트업 담당자라면 공간이 없음, 경험이 없음 등을 이유로 상대방 공기업 측에게 위의 역할을 넘겨라. 상대는 경험이 많고 매뉴얼이 있다. 이런 행사 전담 인원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냥 CI(기업 로고) 하나 보내주고 잘 부탁한다면 될 일이다. 참석하는 스타트업의 의상도 복장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상대편 담당자에게 사전에 전달만 해두면 된다. 저희 대표님은 정장 안 입으십니다. 라고 쿨하게 말해두자.


우린 바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만큼 상대방의 형식에 너무 얽매일 것 없다. 상식적으로 대응하면 된다.




정말 일이 되는 제휴계약은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 아예 대면 행사 없이 양사 전자서명으로 날인하는 경우도 많다. 정히 뉴스 기사 배포를 위한 사진이 필요한 경우 로고만 넣기도 하고, 화상으로 서로 양해각서를 들고 찍은 사진을 내기도 한다. (참고로 로고보다는 인물 사진이 들어가는 경우 뉴스 기사 채택률이 높다고 듣긴 했다.)



사업 제휴 파트 부분을 마치면서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휴 아젠다를 준비하고 행사를 준비하면서 애먼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전에 이 제휴를 통해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명확히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설사 사진이고 뉴스 기사 한 줄이라면 그를 위해 약간의 리소스를 쓰면 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실속 있는 사업 파트너를 찾도록 하자. 상대방이 충분한 의지와 능력이 있는 파트너인지, 양사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지, 어떠한 결과를 이뤄내고 싶은지에 집중해야 한다. 제휴를 위한 제휴에 시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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