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차의 눈물

빌어먹을 직장 생활 같으니

by 큐레이터박


직장생활 꽤나 오래 하면서 회사 사람 앞에서 회사일로 울었던 기억이 별로 (실제로 아예 기억이) 없다. 우는 것을 싫어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기도 했고, 남 앞에서 눈물은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회사에서 우는 동료나 후배를 보면 왜 사람들 앞에서 울까? 의아했던 적이 많다.


이런 내가 얼마 전 (그러니까 직장생활 24년 차에) 눈물을 흘렸다. 상사 앞에서. 그것도 회의실에서.


둘만의 편안한 회의였기에 그간 의아했던 프로젝트의 배경에 대해서 물었다. 당면한 과제(굉장히 회사적 용어다, = 밀린 업무)가 이렇게 많은데 이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면 안 되는가라는 식의 내 질문에, 상사가 당장 이렇게 되받아쳤다.

"OOO 팀장은 큰 그림을 안 보는구나. Task 처리만 하지 말고, 나랑 비전을 맞추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맺혔다. 이런. 막을 새 없이 문제의 액체가 낙하했다. 순간 상대도 보고 말았다. 되려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을 지으며 '제가 왜 이러죠?' 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회의는 어색하게 끝났다.


집에 가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떻게 내가 회사일로 울 수가 있지? 그것도 이 나이에, 이 연차에? 내가 울었다는 사실. 상대방에게 내 약점을 보인 것에 더 쪼그라들었다. 그날 저녁 남편과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으며 이 사건에 대해서 셀프 비아냥을 섞어가며 '나 완전 어이없지?'라고 말을 건네었는데.

"많이 힘들었던 거지."

라고 남편이 답하자, 진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대성통곡으로 이어졌다.


맞다. 난 힘들었다. 지금도 힘들다.

1년 전 이곳으로 이직하며 팀장으로 왔을 당시 팀원이 10명 정도였는데 현재 2배 이상이 되었다. 팀이 합쳐지고 급하게 인력이 늘어났다. 계획과 달리 중간 리더들이 나를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내가 챙겨야 할 업무, 결정해야 할 일들이 그만큼 늘어나 버렸다. 부담감과 중압감도 커졌다. 목표 달성을 위한 task를 챙기고 조직원들을 관리하는 것으로도 힘에 부치고 허덕이는 상황에서, 큰 비전을 못 맞추고 task 처리만 하면 안 된다는 상사의 말이 나를 자극한 것이다.


남편은 내가 있는 회사가, 내가 처한 상황이 쉽지 않은 것이지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힘든 것은 당연하다 도닥였다. 나는 그간 내 부족함만 생각했더랬다. 내가 회사의 방향성과 얼라인하고 더 빠르게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더 잘하기 위해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물이 난 것마저도 마치 내가 못난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쏟아낸 눈물과 남편의 말들에서 정신이 들었다.


맞다. 이것도 일종의 가스라이팅 아닌가. 나를 탓하고 있었으니.


이게 다 회사, 빌어먹을 직장 생활 때문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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