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으나 사라진 것. 회사 친구.

회사생활의 단비같고 찰흙같은 존재

by 큐레이터박

몸은 사무실에 와 앉아 있지만, 정신은 아직 집에 두고 왔을 때. 대뜸 "커피 한 잔?"이라고 톡을 보낼 동료가 있는가?


업무를 해도 해도 쌓일 때 혹은 애써 만든 문서를 리더에게 들고 갔더니 융단폭격 같은 지적을 받았을 때. 숨을 고르며 사무실 주변을 같이 걸을 동료가 있는가?


퇴근 시간 무렵 회사 근처에서 술 한잔할 동료는? 필 받으면 2차 가고 3차도 가고 그의 집에도 가고. 마지막엔 노래방에 가서 민망함 따위 집어치우고 막춤을 함께 출 동료는..?


내겐 있었으나 사라졌다.




이직 후 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마음을 철썩 못붙이는 이유가 뭔가 생각해보니 있다가 없어진 것. 동료, 회사 친구의 존재였다.


나에게도 과거엔 첫 직장 입사동기가 있었고, 가장 오래 다닌 N사 경력공채 동기, 스타트업을 만들어 갈 때 의기투합했던 초기 멤버가 있었다. 이들과 업무의 어려움과 포지션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으며, 직장상사에 대한 디스를 하기도 했다. 믿을만한 동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막힌 속이 풀리고, 상대가 조금이라도 이해를 해주면 그럭저럭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때론 동료와 연대하여 직장 상사에게 의견을 개진하고, (대부분) 좌절하기도 하면서 전투력과 쌍욕을 함께 키워하면서 두고두고 씹을 이야깃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다만 나이가 그득하게 차서 이직하고, 설상가상 리더까지 달고 들어간 나의 경우엔 위의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이심전심이 가능한 사람이 주변에 없다. 내 위엔 임원이고 아래엔 팀원들뿐이다. 내 옆에 팀장들을 편한 동료로..? 나보다 오랜 기간 임원이랑 합을 맞춰온 이 팀장들의 속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더라는 것. 푼수같이 나 먼저 속을 터놓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미 살짝 그렇게 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무응답이었다는 것!! 그렇다고 팀원들에게 '나 힘들어. 사실 나도 이거 안될 거 같아. 나도 잘 모르겠어. 나도 하기 싫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가 털어놓은 엄살이 그들에게 전해지는 순간 사실이 될 테고, 더 큰 걱정과 의욕상실이 될까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한 명에게 말했으나 삼십 명에게 퍼져나가갈 수도..


결국 난 입을 다물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일기를 쓰는 것. (참고로, 아주 생생하게 써야 한다. 언젠가 퇴사 카드를 내미는 순간에 주저하지 않게끔 잘 저장해 놓자. 이것은 나중에 더 얘기하기로 하고..) 그리고 가끔 만나는 전 직장 동료에게 이런저런 답답함을 요약해서 말해보는 것. 그러나 리얼타임 분노와 좌절을 담지 못하니 생생하게 전달되지 않을뿐더러 이제 다른 곳에서 일하는 이에겐 다른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말더라는..


내가 현재의 회사에 있는 동안 동료를 통한 안정감을얻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요인들을 통해 이 회사에 정착할 것이고 또 언젠가는 떠나겠지만,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하루에 최소 9시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 회사의 변화뿐만 아니라 내 개인의 변화를 바로 가까이에서 지켜봐주는 동료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해보길. 마음 맞는 동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길. 그리고 그는 평생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더 마음을 터놓고 의지하는 것도 좋다고. (참고로 나의 최고의 술친구, 여행친구들은 15년도 더 전에 만난 동료들이다)


사실 많이도 필요 없다. 딱 한 명만 믿을만한 동료, 회사 친구만 있어도 무방하다. 물론 원한다고 바로바로 생기는 것은 아니고, 조직 구성에 운이 따라야 한다. 나이와 연차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심전심이 가능해야 하고, 이들이 공감불능자가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대부분 상황이 팍팍하다 보니 위아래 다섯 살 아니 열 살까지도 붙들고 하소연하고 같이 욕하고 들어주고 하다 보면 한편 먹고 그렇게 되지 않던가.


우리 회사원들은 25일에 들어오는 월급 때문에 한 달 한 달을 견디기도 하고, 지금 하는 업무가 끝나고 나면 업데이트될 커리어 한 줄을 생각하며 프로젝트 종료를 바라보며 달리기도 하지만, 지금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당장의 숨쉴 곳이 되는 직장 동료, 회사 친구다.


과중한 업무와 직장상사의 잔소리, 이상한 팀원들의 행태를 바라보며 소진되고 고갈되어 쩍쩍 갈라진 내 마음에 시원한 물줄기를 뿌려주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옜다- 받아라 하며 휘발유(알코올)를 뿌려대기도 하고, 산화되고 재만 남아도 속속들이 다 아는 사이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엉겨 붙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이 되기도 하는, 단비와 같고 찰흙 같은 회사 친구가 지금 옆에 있는가? 있다면 커피 한잔 사주길. 없다면 지금 당장 레이더를 돌려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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