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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oh Jul 04. 2019

어떤 점(dot)에서 출발하셨나요?

용감한 페미니스트

시에서 주관하는 제1회 미래 교육 국제포럼을 다녀왔다. 로비에서 방명록에 굳이 이름을 적어 넣고 1층부터 천천히 둘러본다. 교육재단에서 주관하는 스터디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결과물이 나오는 작품들로 진열되어 있는 틈을 비집고 나는 우리 ‘독서토론’ 팀에 관한 내용을 찾으려고 눈을 바쁘게 움직였다.


없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독서와 관련한 팀의 전시물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독서 스터디와 관련한 내용을 전시할 수 있는 방법을 못 찾았으려니 생각하며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로비에 전시된 곳 중에서 다양한 창의 교육 프로그램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빨대를 이용한 만들기, 친환경 종이를 이용한 만들기, 자율주행로봇 전시까지 신선한 아이템들이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이와 함께 움직이다가 아이의 시선을 잡아 끄는 곳으로 움직였다.
참여를 희망하는 아이를 위해 스탭에게 물건 구입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당일 판매는 어려우나 ‘특별히’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는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나는 안내 책자를 뒤적여보았다.

이상하다.


몇 권의 책자가 놓여 있었으나 그 어느 곳에도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보였다. 내 호기심 레이더가 작동했다. 기존에 내가 보지 못했던 프로그램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떤 계기로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창의 교육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중학생 정규 교과 과정으로 편성되었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어떤 목적에서 이 만들기를 하는 것일까? 이 프로그램이 향후 비전은 어떤 것인가? 나의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궁금증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가 만들기에 전념하는 동안 스탭에게 짧은 질문을 해본다.

‘이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아, 이 책을 직접 쓰신 분이 여기 계시니까 그분께 여쭤보시면 될 것 같아요.’
‘왜 일까? 스탭은 내용을 잘 모르는 건가?’

아이 옆에서 만들기에 도움을 주던 분께서 나를 향해 오신다. 책임자이신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책 표지에서 이름 석자를 가리키며 ‘제가 이 책을 지었습니다.’‘나는 내 궁금증이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에 들떠 질문들을 쏟아냈다.

‘이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네?, 아 이건 제가 직접 만든 겁니다.’

‘응?’ 나는 그의 레이더가 오작동하는 것을 감지한다.
‘어떤 계기로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하셨나요?’
‘이 책을 보면 아시겠지만 점, 선, 면들이 만나 작품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내 질문이 미약했나 싶어 질문을 바꿔 다시 물어본다.

‘중학교 정규 교과 과정에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이걸 만들면 미래 어떤 비전이 있나요?’
‘요즘 핀란드 교육이, 아 핀란드에서는’


나는 이쯤에서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지만 지금이 용기를 발현할 때라고 생각했다.

‘지금 여기 테이블을 만든 이유는 강사 모집을 위한 테이블인가요?’

‘네, 맞습니다.’

‘요즘 점, 선, 면이란 단어를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트렌드인 것 같아요.’

‘이건 제가 5년 전부터 시작한 사업입니다. 점을 실로 연결하면 선이 되고, 선이 모이면 면이 되고.’

‘네 그러네요. 면들이 모이면 작품이 되고요.’


외국인까지 초청한 미래 창의 교육 국제 포럼이라는 행사에서 스탭을 포함하여 자신이 직접 만든 프로그램에 대한 기본 설명조차 내뱉지 못하는 것을 보고 솔직히 말하면 크게 실망했다. 초등학교 방과 후도 아닌 중학교 정규 교과 수업 시간 동안 이 ‘창의’라고 이름 붙은 수업을 진행하는 분께서 당신의 이 프로그램이 언제 어떤 동기로 시작하였는지에 대한 대답조차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며 답답함이 밀려왔다..


하필 점, 선, 면과 관련해서 내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있는 구절이 있었으니 나는 그가 창안한 프로그램을 어떤 비유라도 좋으니 제발 속시원히 아니 매력적으로 설명해주기를 바랐지만 결국 그만두기로 했다. 그에게선 더 이상 그 어떤 대답도 들을 수가 없단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안내문에는 가장 원초적인 브랜드 네이밍에 대한 설명조차 없었다.
나는 ‘안내문에 프로그램 이름에 대한 설명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건넸다.
그는 ‘알겠다.’고 대답해주었다. 나는 시선을 아이에게로 돌렸다. 다행히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와 아이가 떠나는 걸 확인한 책임자는 서둘러 짐을 꾸려 자리를 떠났고, 수업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책자에는 ‘도대체 이걸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관한 설명없이 완성된 작품의 사진만 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 우연의 점들을 찍어 나가다 그것이 서로 연결되어 선이 되고 인연이 됩니다. 그리고 인연들이 모여 면(面)이 되고 장(場)이 됩니다. 들뢰즈 Gilles Deleuze는 장(場)을 배치(agencement)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는 담론들은 5년 후, 10년 후 고독한 밤길을 걷다가 문득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추억은 세월과 함께 서서히 잊혀 가다가 어느 날 문득 가슴 찌르는 아픔이 되어 되살아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계몽주의의 모범과 강의 프레임은 이 모든 자유와 가능성을 봉쇄합니다. 이탁오는 사제師弟가 아니라 사우師友정도가 좋다고 합니다. 친구가 될 수 없는 자는 스승이 될 수 없고 스승이 될 수 없는 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 교실도 그런 점에서 부담 없는 저녁 다담茶談이었으면 합니다.  (담론_신영복_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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