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soh Sep 21. 2019

그의 결혼식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순간

그녀의 나이는 스무살 초반이었고 그는 대학을 갓 입학한 20살 청년이었다. 그녀와 그는 경기도 오산에 위치한 '신명 보육원'에서 만났다. 그때의 보육원엔 수많은 봉사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몇몇은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몇몇은 보육원 실내외 청소를 하고, 또 몇몇은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 놀았으며 다른 몇몇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 자료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신명 보육원에서는 그들을 '수호천사'라고 불렀다.


수호천사 멤버들은 의기투합하여 보육원에서도 보육원 밖에서도 자주 어울리며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그녀의 20대 시절을 함께 했던 인물 중에 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와 그는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며 두 사람의 이십대를 함께 했다.


그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고음을 소화하느라 진땀을 흘려가며 그녀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어색한 웃음으로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부르던 그의 모습을 그녀는 아직 기억한다.


그녀가 결혼한 이후로 그녀는 아이와 함께 그를 만났다. 그녀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동안 그는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는 공부를 하며 한달에 딱 하루만 날을 정해서 쉬었는데, 그날이 되면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와 그녀가 사는 곳으로 내려왔다.


대부분의 날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밥을 먹으며 밀린 수다를 떨었다. 그가 전하는 대부분의 소식은 그가 묶고 있는 하숙집의 전경이었고, 그녀가 전하는 대부분의 소식은 결혼 생활이었다.


매너가 좋은 그가 그녀의 아이를 안고 다닐 때면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녀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어떤 할머니는 그에게 모유 먹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할머니의 말을 전하는 그와 그녀는 한참을 깔깔깔거리며 웃었다.


 2년 6개월의 기간을 잡고 공부에 매진하던 그는 정확히 2년 6개월이 지나고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그녀 일인 마냥 한참을 기뻐했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르고 그가 첫 월급을 탔다며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어느 새 시간이 그렇게 흘렀냐고 반색하며 기쁘게 그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그동안 만날 때마다 누나가 밥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고, 누나도 귀찮았을텐데 거절하지 않고 매번 만나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했다. 첫 월급을 타면 제일 먼저 누나에게 밥을 사주고 싶었다'는 말로 그녀를 기쁘게 해주었다.  


그녀는 '어쩌면 오늘 이 자리가 그와 그녀가 함께 만나는 마지막 시간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걸 직감했다. 순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그가 사는 밥을 얻어 먹으며 그녀는 내내 행복했다.


한동안 걸려오지 않던 전화가 그가 연애를 시작하며 다시 걸려왔다.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연애를 하며 고민이 생길때마다 그녀에게 SOS를 청했다. 처음에 그녀는 두 세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친절히 함께 고민했다. 그는 그간 묵혀있던 얘기들을 모조리 꺼내보이며 어떤 것이 나은 선택인지 결정을 못하고 그녀에게 자주 미루었다. 그녀는 그의 고충을 알면서도 가끔은 귀찮았다. 그녀가 전달하는 메세지대로 하지도 못할꺼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그에게 미루었다. 그러다 그가 세종시에 있는 충남도청으로 출근하며 바쁜 날들을 보내게 되며 그녀와의 연락이 뜸해졌다.


그렇게 그들은 몇 년의 시간을 흘려보내다 '수호천사' 멤버의 결혼식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흘러 간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또 다시 화기애애했다. 결혼식을 보며 그들은 그간의 소식을 주고 받으며 그날의 결혼식을 축하했다.


그리고 오늘

그녀는 그를 다시 만났다.


그의 결혼식에서.


추석을 보름 앞두고 그는 카카오톡 메세지로 그의 결혼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어 그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그는 '누나, 여자친구랑 같이 누나한테 가서 인사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났어요.'라고 얘기했다. 그녀는 '야! 나 바쁜 사람이야, 서로 바쁜 마당에 허레허식은 생략하고 결혼식날 보자.'라는 말로 그를 다독였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수호천사)들 만날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몇년에 한번씩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지난 날을 추억할 수 있어 옛친구들을 만나는 날은 행복하다. 그녀와 수호천사들은 밀린 소식을 주고 받으며 '그의 결혼'을 축하했다.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순간에서 그녀는 자주 눈물을 내비쳤다. 행복한 웃음 뒤로 눈시울을 붉히는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눈물을 내비쳤다.


그녀의 결혼식에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는 이유로 그녀의 시어머니한테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슬픈건 슬픈거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요즘도 남들 결혼식만 가면 눈물을 내비친다.


그런 그녀가 오늘은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결혼식내내 흐뭇한 미소가 떠나가질 않았다. 그의 어색한 웃음과 어색한 손짓을 소재삼아 수호천사와 함께 시종일관 깔깔깔 웃었다.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 '전화할께요.'라는 그의 얘기를 뒤로하고 그녀는 집으로 향했다. 내 평생 결혼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유일한 날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그의 결혼식내내 행복했다.




결혼 축하해


이전 02화 어떤 점(dot)에서 출발하셨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