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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oh Jul 28. 2019

요람에서 무릎까지

다시, 책으로_매리언 울프,  전병근 옮김, 어크로스,  2019

매리언 울프는 인지 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 학자로 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다. 하버드 교육대학원에서 인간발달 및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뇌, 언어, 난독증에 대한 인지 신경과학과 심리언어학 연구를 시작했다.

첫 번째 저서인 <책 읽는 뇌>에서 독서와 난독증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대중적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았다. 우리 뇌가 어떻게 읽는 법을 학습하는지를 연구하는 데 몰두한 사이, 세상이 인쇄 기반 문화에서 디지털 기반 문화로 급격히 변화한 것이다. 하루에 6~7시간씩 디지털 매체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을 목격하면서, 울프는 그들 뇌의 읽기 회로가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저자 자신조차 책에 몰입하던 경험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논문에서 다루던 ‘초보자 수준의 읽는 뇌’로 회귀하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의 읽기 회로를 되찾기 위한 실험을 시작한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디지털 세계의 엄청난 정보들은 새로움과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대가로 주의집중과 깊이 있는 사고를 거두어갔다. 스크린에 담긴 수많은 정보를 빠르게 훑기 위해 건너뛰고 요약하며 읽는 방식은 글쓰기에 대한 선호까지 바꾸어 버렸다. 더 짧고 단순하며 건너뛰어도 무방한 문장에 길들여지면서, 우리는 문자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가장 커다란 공헌인 비판적 사고와 반성, 공감과 이해, 개인적 성찰 같은 본성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다시, 책으로>에서 매리언 울프는 오늘날 기술이 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인류의 미래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역사와 문학, 과학 분야를 오가는 다양한 자료들을 토대로 생생한 사례를 활용해가며 복잡한 생각을 명료하게 펼쳐낸다. 동시에 기억과 주의의 질, 아름다움과 지신을 자각하는 능력을 회복하기 위한 희망적인 제언도 잊지 않는다. <책 날개 저자 소개>


내가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심한 난독증으로 힘겨웠다. 솔직히 말하면 난독증에 더하여 글쓰기에도 정체기가 찾아드는 이중고를 겪었다. 나는 이 상황을 마주하며 도대체 왜 힘겨운 것인지 이유를 찾으려고 각고의 노력을 쏟아부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노동의 일환이라 생각해 육체적 피로로 연결되나 싶어 운동에 다시금 매달렸다. 단 며칠간의 노력으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얻기란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관해 골머리를 썩었다. 별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없어(머리가 하얗게 변해 버렸다/멘탈 붕괴) 결국 하던 대로 계속해보기로 마음먹었고 조금(1일 50페이지)씩 읽어 나갔다.


전반적으로 내용이 딱딱하고 용어도 생소하다. 저자는 책을 읽으며 사유하는데 서간문만 한 것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책으로>를 서간문 형식으로 집필하였다. 나는 첫 장을 넘기며 첫 번째 편지부터 세 번째 편지까지 족히 4~5번은 읽었다. 문제는 4~5번을 읽고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이해가 안되다 보니 정리하는데도 애를 먹었고, 몇 번인지 셀 수 없이 읽고 또다시 읽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책을 포기할까 고민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읽어 나갔다. 아마도 내 읽기 열등감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나는 네 번째 편지에서 현재 내 상태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그녀의 고백을 읽으며 안도의 눈물을 흘릴뻔했다. 그리고 나의 읽기의 문제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직면하게 되었고, 더불어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비단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란 사실에 위로받았다.


<다시, 책으로_p.44~p.45>


읽기는 기능이다. 읽기는 구어와 달리 배워야 하는 기능이다. 게을리하면 도태된다. 근래 들어 디지털 매체와 접촉하는 일이 빈번했고, 일을 하면서 예전에 비해 책 읽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 부차적인 이유일 것이다. 글쓰기도 기능이다. 읽고 정리하던 습관을 게을리했다. 나는 지금 내게서 희미해지고 있는 두 가지 기능을 되살리기 위해 반복해서 읽고, 읽은 내용을 글로 정리하며 내 기억(해마) 속에 오랫동안 보관해놓으려고 한다.


인간은 읽는 능력을 타고난 것이 아니다. 문해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껏 알려진 바로는 다른 종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읽기는 우리 인류의 두뇌에 완전히 새로운 회로를 더했다. 읽기를 습득하기까지 기나긴 발달 과정은 그 회로의 연결 구조를 깊고 탁월하게 바꿔놓았으며 또한 뇌의 배선을 바꾸고, 인간 사고의 본질에 변화가 일어났다. (p.22)


읽기에 관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한 첫 번째 사실은 문해력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이 말은 어린 독자에게는 읽기에 필요한 신경회로를 발달시킬 유전적 프로그램이 없다는 뜻이다. 읽는 뇌 회로가 형성되고 발달하는 과정에는 자연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이 모두 영향을 주는데, 환경적 요인에는 읽기의 습득과 발달 과정에서 사용되는 매체도 포함한다. 각각의 읽기 매체는 서로 다른 인지 과정을 촉진한다. 다시 말해 어린 독자의 경우 완전히 발달한 전문가 수준의 읽는 뇌에 체화된 다중적 심층-독서의 전 과정을 발달시킬 수도 있는가 하면, 초보자 수준의 읽는 뇌에서 발달 중인 단축-회로를 만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아예 다른 회로 안에 완전히 새로운 신경망을 구축할 수도 있다. 어린아이의 읽기 회로가 형성되는 동안 어떤 과정을 따르느냐에 따라 읽고 생각하는 방법에도 심대한 차이가 생긴다.(p.30)


글을 쓰며 사진이 업로드 된 것을 본 그녀는 본인의 '초상권'을 들먹이며 올리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얼굴이 온전히 나온 것은 아니니 초상권에 위배되는 사안이 아니라고 변명한다.


아이가 돌을 지나고부터 책 읽기를 함께 했다. 그녀의 책에 대한 열정은 강렬했다. 나는 그녀가 책 읽는 어린이에서 책 읽는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녀를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아침에 눈을 떠서 눈을 감는 순간까지 읽기에 매달렸다. 나는 그녀보다 먼저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그녀가 밥 먹는 동안 책을 읽혔으며, 낮잠을 자고 일어난 그녀가 원할 때까지(미드나잇) 읽고 또 읽어 주었다. 무릎에서 시작된 책 읽기는 그녀가 성장하면서 의자와 책상으로 옮겨 갔고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위해 내 모든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를 맞을 수 있었다. 간간히 육아서적에서 머물던 나의 책 읽기가 문학으로 옮겨갈 수 있었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자주 쓰는 쪽이 발달한다. 나는 연필을 잡고 글을 쓸 때 오른손을 사용한다. 덕분에 나는 오른손으로만 글을 쓰는 기능이 발달했다. 회사에서 마우스로 업무를 하던 어느 날, 나는 나의 오른손이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나의 오른손은 글씨도 써야 하고 마우스도 클릭해야 하고 왼손에 비해 하는 일이 많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마우스를 왼손으로 사용하는 연습을 해보았다. 처음엔 서툴렀다. 하지만 모든 기능들이 그렇듯 자주 사용하니 얼마 후에 왼손으로 마우스를 사용하는 일이 서툴지 않게 되었다.


읽기의 중요한 토대는 ‘신경 가소성’이다. 우리의 뇌는 자주 읽는 것에 따라 한쪽으로 편향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p.46)


아이패드는 새로운 고무젖꼭지가 되었다. 모든 연령층이 보이지 않는 비용을 치르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아주 어린아이조차 평소 디지털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았을 경우에는 기기를 빼앗기면 지루함이나 따분함을 크게 느끼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기를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온 가족이 오락과 정보, 주의분산의 디지털 원천에 접속돼 있는 주기도 길어지고, 의존도도 높아지게 되지요. 주의 과잉, 계속된 주의분산, 환경에 의한 주의’ 결여’는 우리 모두와 관련이 있습니다. (중략) 우리에겐 고요한 눈(관조)을 키울 시간도 동력도 없습니다. (p.118~p.119)


5G 시대가 도래하며 초단위 인터넷 속도를 자랑한다.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스마트폰 보급률(초등학생까지 보급)로 일찍부터 디지털 매체와 친숙한 환경에 놓여 있다. 디지털 매체를 통해 우리는 매일 새로운 것을 읽으며 ‘새것 편향’ 주의에 익숙해졌다. SNS를 통해 짧은 글만 쓰고 읽는 청소년들은 장문의 글을 읽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녀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장문의 글을 읽고 추론하며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현주소를 안타까워한다. 어릴 때부터 무분별한 디지털 매체에 노출된 아이들의 경우 특히 어려움을 호소한다.


저자는 편향된 뇌의 기능을 경계하고 종이책 읽기와 디지털 매체 읽기의 균형 잡힌 읽기에 대한 ‘양손잡이 읽기 뇌’를 지향한다. 그녀가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대부분의 내용은 ‘순간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주소를 용인하고 어떻게 하면 ‘양손잡이 읽는 뇌’를 만들 것인지에 관한 대안을 제시한다.


그녀는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어린아이의 읽기는 양육하는 가정환경에 따라 읽기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난다. 양질의 책을 통해 읽기로 학습된 아이들에 비해 학습하지 못한 아이들의 기능은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공교육의 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은 보편적인 학습 환경에 놓여 있다. 저자가 지지하는 것은 보편적 환경에 놓인 아이들의 종이 책 읽기를 선행하고, 이후 디지털 매체 읽기를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터넷 사용이 원활하다 보니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남발되고 있다. 내용에 대한 검증을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매체가 전달하는 내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 검열은 취사선택이고, 확산된 정보 속에 옥석을 가려내기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어릴때부터 꾸준한 책 읽기를 통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방법과 타자에 대한 공감 노력을 배워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성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종이책 읽기를 등한시하고 디지털 매체로만 편향된 읽기만 지속하다보면 사유하고, 공감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기능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염려한다.


일전에 <사피엔스>를 읽으며 섬뜩했던적이 있다. 디지털의 정점에 있는 '구글'이 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나를 통제하는 '디지털 전체주의' 시대가 도래하진 않을까하는 생각이 스치던 순간이었다.


이 책을 아직 접하지 않은 독자라면 네 번째 편지부터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만약 내게 처음으로 도착한 것이 그녀의 네 번째 편지부터였다면 나의 읽기가 조금 순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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