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글쓰기 특강_유시민, 생각의 길, 2015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시나 소설이 아니라 논리적 글쓰기를 잘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에세이, 자기소개서, 기업 입사 시험의 인문학 논술, 대학생 리포트, 신문 기사, 평론, 사회 비평과 학술 논문, 제품 사용설명서, 보도자료, 문화재 안내문, 성명서, 선언문, 보고서, 논술 시험, 운동경기 관전평, 신제품 사용 후기, 맛집 순례기 같은 글을 잘 쓰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이 유용할 것이다.
저자에 대한 신망이 두텁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것처럼 ‘인간적 미덕을 가진 사람으로 보았다. 솔직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긍정적이고, 창의성과 열정이 있고, 남을 배려하고, 인내심과 도전 정신이 있는 훌륭한 사람(p.72)이라는 생각 때문인 것이다.
내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워낙에 글 잘 쓰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진작부터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 책장에 꽂혀 있음에도 바라만 보았다. <성장판 서평단>에 참여하며 내 글쓰기는 어디쯤에 있을까? 생각해 보며 책을 펼쳐 들었다. 책꽂이에 꽂혀 있어 손쉽게 꺼낼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가능하면 다른 책으로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것을 자꾸 잊어버리고 글로 남기기 전에 다른 책으로 넘어가곤 했다. 여기서 망각이 일어난다. 이번 글쓰기도 완독 후에 바로 쓰려던 것을 하루를 넘겼다. 글로 남겨 놓기 전에 다른 책을 펼쳐 들고 제법 읽었다. 그랬더니 이 책과 관련한 내용이 어느새 희미해져 있었다. 속이 상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쓰고자 하는 내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었는데 오늘 쓰려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필사했던 내용으로 재독을 한 후에 생각을 다시 정리해본다.
두려움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자동차 페달과 변속기 손잡이가 그런 것처럼, 자꾸 글을 쓰다 보면 그대에게도 컴퓨터 키보드나 볼펜이 손가락처럼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이 찾아올 겁니다.(p.12)
생각과 느낌을 소리로 표현하면 말이 되고 문자로 표현하면 글이 된다. 생각이 곧 말이고, 말이 곧 글이다. 생각과 감정, 말과 글은 하나로 얽혀 있다. 그렇지만 근본은 생각이다. 논증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는 글을 쓰고 싶다면 무엇보다 생각을 바르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p.18)
글쓰기의 목적은, 그 장르가 어떠하든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해 타인과 교감하는 것이라고 한다.(p.53)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길 때마다 어떤 내용으로 써 내려갈지 고민을 한다. 대개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을 토대로 살을 붙여서 기록하는 것들이 태반이다. 가능하면 말하듯이 쓰는 편이다. 쓰고 나서는 매끄럽게 읽히는지 몇 차례 읽어보고 교정을 한다.
글을 쓰려면 생각이 반듯해야 한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는 애석하게도 감정적인 사람이라 좋고 싫은 게 표가 난다. 말을 할 때도 글을 쓸 때도 고스란히 내 감정이 실린다. 가능하면 기분이 좋을 때만 글을 쓰려고 한다. 나쁜 감정을 전염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역으로 타인이 쓴 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 기분에 따라 좋게 들릴 때도 있고 나쁘게 들릴 때도 있다. 악의 없는 글일 텐데 굳이 내 감정을 이입해서 글을 읽고 날을 세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글과 멀어지려고 한다.
글쓰기에는 철칙(鐵則)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쓴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철칙’이다.(p.62)
'양질 전환'은 만고불변의 법칙이구나. 글쓰기도 기능이라 많이 써야지 근육이 만들어진다. 가능하면 매일 쓰려고 노력한다. 현재 내 글쓰기는 어디쯤 와 있을지 가끔 궁금하다.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할까? 하지만 듣고 싶지는 않다. 질책을 들으면 못난 마음이 일까 봐 아직은 두렵다.
내가 쓰고 내가 읽었을 때,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아.' 했던 적은 있다. 가끔 그렇다. 책을 쉬지 않고 읽었을 때다. 내용이 비교적 잘 정리가 되고 어떤 걸 써야 할지 명확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대개는 잘 안 써진다.
잘 쓰는 글쓰기는 자신이 없다. 책에서 소개한 방법대로 하려니 너무 어렵다. 글을 쓰면서부터 국어의 필요성을 느꼈다. 저자가 강추하는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 쓰기>가 궁금하다. 논리적인 글쓰기는 장벽이 높으니 못난 글쓰기라도 피해보려고 노력해보자.
못난 글쓰기
으로의’ ‘에로의’ ‘에서의’ ‘으로부터의’ ‘에 있어서의’와 같이 ‘의’를 겹쳐 쓴 토씨도 모두 우리말 법에 어긋난다. 이것은, 일본 말 조사(の)를 옮긴 것이다. 우리말은 그런 식으로 토씨를 쓰지 않는다. 일본 말처럼 토씨를 쓰면 글이 늘어지고 운율이 죽으며 문장의 힘이 빠진다. 읽기도 나쁘고 듣기도 좋지 않다.(p.191)
‘의’와 ‘에의’ ‘으로의’ ‘에서의’ ‘에 있어서의’ ‘에로의’ ‘으로부터의’ 같은 일본식 조사는 주로 글에서 볼 수 있다. 말까지 그렇게 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너무나 어색하기 때문이다.(P.192)
그동안 못난 글쓰기를 많이 했다. '의'자가 일본 말 조사(の)인 걸 몰랐다. 나는 '의'자를 많이 사용했다.
나의 <- 잘못된 표현이다.
내가 <- 맞는 표현이다.
그가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으로 글을 쓰려다 보니 제약이 많다. 그 말인즉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얘기다. 한꺼번에 다 바꿀 자신은 없기에 '의' 자는 가급적 자제해 보려고 한다. 모르니까 배워야 하는데 배우려니 글 쓰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
저자가 잘못 쓴 글 예시문으로 타인의 글을 옮겨 적으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건 읽기가 불편했다. 당신이 썼던 글로만 예시를 들었더라면 더 훌륭해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티끌은 모아봐야 티끌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글쓰기는 티끌 모아 태산이 맞다. 하루 30분 정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수첩에 글을 쓴다고 생각해보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주 엿새를 그렇게 하면 180분, 세 시간이 된다. 한 달이면 열두 시간이다. 1년을 하면 150시간이 넘는다. 이렇게 3년을 하면 초등학생 수준에서 대학생 수준으로 글솜씨가 좋아진다. 나는 그렇게 해서 글쓰기 근육을 길렀다.(p.221)
우리는 다양한 이유에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쓰지만, 어떤 글이든 쓰는 능력을 기르는 방법은 같기 때문이다. 써야 해서 쓰는 글을 잘 쓰려고 노력하면 쓰고 싶어 쓰는 글도 잘 쓸 수 있으며 그 역도 성립한다.(p.264)
3년을 쓴다고 유시민만큼 쓸 수 있겠냐는 부정적 마음이 일면 아무것도 안된다. 우선은 3년을 써보고 나서 내 수준을 결정하는 게 낫다고 본다. 내 글쓰기는 이제 겨우 3개월이 지났다. 초등 입학해서 1학년 정도쯤 된다고 가정해 보면, 18개월이 지나면 초등생을 졸업하는 수준이다. 27개월이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36개월이면 고등학교 졸업 수준의 글쓰기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 앞뒤 재지 말고 '책 많이 읽고 글 많이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