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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oh Jul 29. 2019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_앤드루 포터, 문학동네

이 책은 2011년 출간되었으나 찾는 이가 적어 절판되었다. 이후 중고 사이트에서 고가로 암암리에 거래가 되던 찰나 ‘책 읽어주는 남자 김영하’ 작가의 낭독으로 인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재출간된 이후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으며 현재 1판 3쇄까지 인쇄되었다.

이 책의 저자 앤드루 포터는 197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에서 태어났다. 뉴욕의 바사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아이오와 대학교 작가 워크숍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에 출간한 데뷔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단편소설 부문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수상했으며, 장편소설 <어떤 날들>이 있다. 현재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문예창작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는 플래너리 오코너상이 어떤 시상식인지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보았으나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미국의 소설가 ‘플래너리 오코너’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쩌면 이 상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만 해본다. 허나, 이 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직도 호기심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이다. 결국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찾아들으며 그가 이 책을 추천하게 된 동기와 어쩌면 내가 알고자 하는 시상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이 책은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구멍을 시작으로 코요테, 아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강가의 개, 외출, 머킨, 폭풍, 피부와 마지막 코네티컷까지 1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섬세한 문체와 심리 묘사가 시종일관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책을 읽는 내내 몇 차례 호흡을 멈추고 글을 읽던 순간들이 있었다. 호흡을 내뱉는 순간 내 호흡이 책 속으로 닿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했다. 숨죽여 책장을 넘겼다. 몇 편은 읽는 동안 분개했고, 몇 편은 작가의 표현에 탄복하며 읽었으며, 몇 편은 섬뜩한 느낌으로 다른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며 읽었다. 마지막 작품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히 정독했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 구성력이 좋았으나, 얘기를 하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단편도 있었다. 조금 더 듣고 싶은데 얘기가 끝나버렸다. 열린 결말이 다수였다.

역자의 한국적인 번역에 단어가 겉도는 장면들이 있었다. 세 번씩이나 언급된 ‘수학능력시험(p.132, p.179, 한 번은 까먹음)’과 ‘K마트(p.156)’. 한국어판이긴 하나 굳이 번역을 이렇게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두 단어로 잠시 국적 불명의 소설로 전락하지 않았나 싶어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단편 '외출’을 읽으며 예전에 봤던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들은 고립된 지역에서 공동체를 형성해 살고 있었다. 외부인의 침입을 극도로 혐오했다. 고립되어 살다 보니 자연스레 근친을 하고 대를 이어갔다. 지금도 현존하는 마을이다. 생물학적으로 ‘근친’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돌연변이(기형)’이다. 당시 그 마을 사람들 중 태반이 돌연변이였던 것이 기억났다. 당시 받았던 충격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그때 접했던 내용과 ‘아미시 공동체'와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아미시 마을 사람들이 근친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미시 공동체 사람들은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70년대 생활을 유지하며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외출’이란 소설이 예전에 접했던 다큐멘터리와 ‘아미시 공동체’를 생각하며 읽어서 그런지 섬뜩하게 다가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만 농장을 나올 수 있게 한 것이 오히려 더 안 좋지 않았을까 싶다-더 이상 바라서는 안 되는 일말의 자유를 맛봄으로써 유혹은 더욱 강해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때문에 그 많은 아이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에.(p.162)

딱 한 번, 식당 밖에 차를 세우고 앉아 있을 때, 그 아이가 내게 자기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가족이라고 했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집에 살고 있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일흔 살이었고, 온 가족의 가장이었으며, 이제 삼백 년이 된 아미시 공동체의 기본 가르침에 근거하여 규칙과 규범을 세웠다. 그 아이는 이런 규범들을 준수하고 자기 아이들에게 전해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자기에게는, 선택받은 소수, 극소수로서의 의무가 있다고, 그 아이는 말했다. 그러나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아이는 상심한 듯 보였다. 자기 가족을 떠올리자, 더군다나 우리가 같이 있는 상황이니만큼, 죄책감이 들었구나 싶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다시는 그 아이의 가족 얘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P.165)

레이철은 맨발로 그 다리의 널판들을 가로지르는 경주를 좋아했다. 널판은 60센티미터 정도 간격으로 고르게 놓여 있었다. 보름달이 뜰 때는 쉬었다. 발을 디디는 것이 보였으니까. 하지만 안 그런 밤에는 칠흑처럼 어두웠고 그러면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발을 디뎌야 했다. 한마디로 믿음이었다. 믿음과 타이밍. 미끄러졌다 하면,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다 하면, 발이 널판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 정강이뼈가 뚝 부러질지도 몰랐고, 까딱 잘못하다가는 만약 재수가 없어서 발이 쑥 빠져버리는 날에는, 10미터 아래 강물 속으로 추락할 수도 있었다. 어리고 자신감이 넘쳤던 우리는, 물론 한 번도 미끄러지거나 빠지거나 비틀거려본 적 없었다. 머릿속으로 리듬을 타면서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요령이었다. 그렇지만 말했듯이, 정작 중요한 점은 믿음, 나무 널판이 내가 발을 디디는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맹목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그리고 널판은 항상 그랬다.(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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