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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oh Jul 11. 2019

나의 <어린 공주>에게 사랑을 담아 보내며...

어린 왕자_앙투안 드 생텍쥐베리, 황현산 옮김, 열린책들, 2018

<어린 왕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 중 하나로 수많은 독자들이 독서 경험의 입문처럼 읽게 되는 불멸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다른 별에서 온 어린 왕자의 순수한 시선으로 모순된 어른들의 세계를 비추는 이 소설은, 동화처럼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아름다운 은유로 녹여 내고 있다. 2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1억 부 이상 판매되며 전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히, 여전히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내가 <어린 왕자>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보다 조금 더 자란 청소년이었고,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세월을 훌쩍 지나 결혼을 하고 나의 <어린 공주> 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세 번째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와 똑같은 심정으로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어른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 번째 만남에선 어른아이 정도에서 이 책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었지만 전부를 이해하진 못했었고, 결국 지금에 와서야 이 책을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해 본다.




어른들에겐 항상 설명을 해줘야만 한다.


어른들은 자기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때마다 자꾸자꾸 설명을 해주자니 어린애에겐 힘겨운 일이다. (p.8)





나의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였다.

나는 그녀가 그리는 그림을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그린 그림이 무엇인지 ‘정답’을 맞추어 그녀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게 아니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던 시절이었다.  

몇 번의 고배를 마신 후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노력을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알아보기 힘든 그림이나 글자에 대해서는 그녀에게 먼저 물어볼 수 있는 기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우와, 근사하다. 뭘 그린 거야?’라는 질문만으로도 그녀의 입은 이미 날개를 단 새처럼 쉴 새 없이 춤을 추었다.

내가 너에게 물어보고 설명을 바랐던 건 네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고 싶었던 거였어. 나는 네가 하는 행동들이 너무나  예뻐서 네 맘속으로 들어가고 싶었거든. 네겐 힘든 일이었다고 하니 미안하구나. 하지만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얘기하고 싶단다.




‘그럼 그대 자신을 재판하라.’ 왕이 대답했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보다 제 자신을 판단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니라. 네가 자신을 잘 판단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네가 참으로 슬기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는 아무 데서나 제 자신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꼭 여기서 살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p.47)




이 장면에서 나는 네 용기에 탄복했다.

어쩌면 나는 기꺼이 ‘왕’의 유일무이한 ‘신민’으로 살아가는 선택을 했을지도 몰라.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전과는 다르게 ‘무모한’ 장면들을 지워내는 중이거든. 나는 나의 이런 면이 나이가 들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부끄러움인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인지 아직 깨닫지 못했지만, 너처럼 용감하게 왕의 명령을 거역하기는 어렵다고 해야 할까.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사는 삶이 편한 것을 알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도 가끔 용감해질 때가 있어.

내가 가장 용감해지는 순간은 아마도 ‘너와 함께’ 할 때인 것 같아. 나보다 용감한 네 손을 잡고 있을 때는 네 용기가 내게 전달되는 것 같아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용감해진단다. 하지만, 네가 없이 나 혼자 있다면 ‘나는 과연 용감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너를 만나기 전으로 되돌리긴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어. 이런 내게 슬기로움이란 아직 부족한 단어처럼 느껴진다.
엄마가 되고 <어린 왕자>를 만나보니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이해되었다. 호기심 가득한 질문이라던가 다소 엉뚱한 행동들까지 그야말로 '아이다운' 모습이지 않았나 싶어 미소가 지어졌다.

<어린 왕자>의 거듭된 질문에도 성실히 대답해주던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른들은 모순 덩어리가 아니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어른들은 네가 가끔 무례하게 굴고, 엉뚱하고, 제멋대로 행동을 해도 네 그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수 있을 만큼 포용력이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네가 어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어른들은 늘 네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는 걸 너는 알고 있었을까?

어른도 아이 시절이 있었다.


아이에서 어른 아이를 지나 어른이 되기까지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순수함'이 옅어진 것이지 전부를 잃어버린 건 아니라고 얘기해주고 싶구나. 어른이 돼서도 나는 아직 실수투성이에 가끔 어설프고, 호기심에 가득 찬 질문들을 쏟아내고 싶을 때가 많아. 체면을 차린다고 짐짓 아닌 척하지만 '너처럼 아이답게' 행동하고 싶을 때가 많단다.

어른이 되면 참아야 하는 일이 늘어나는 것 같아.


배가 고파도 참을 줄 알아야 하고, 슬플 때도 아닌 척해야 하고, 정말 기분이 좋은 순간에도 티 나게 행동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도 가끔은 참아야 한단다. 그건 네 말처럼 모순 덩어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란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견디는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네가 너의 별로 돌아갔을 때쯤 아마 내 말을 모두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담아보낸다.

책을 읽는 동안 자주 내 삶의 <어린 공주>와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세 번의 만남에야 비로소 길들여졌다는 걸 인정하며 나의 <어린 공주>에게 사랑을 담아 이 책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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