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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oh Dec 30. 2019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1_이케이도 준, 이선희 옮김, 인플루엔셜, 2019

6월 이 책의 출간 예정 소식을 SNS에서 접하고 집 앞 도서관에 '희망 도서 신청'을 했다. 희망 도서를 신청하면 새 책을 가장 먼저 받아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내가 사서 보는 책도 좋지만, 소설처럼 많은 이들이 읽는 책은 도서관 '희망 도서'로 신청하곤 한다. 


저자 이케이도 준은 은행과 기업을 무대로 벌어지는 미스터리에서 시작해,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치열한 ‘인간’에 관심을 가지며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쓰고 있는 소설가다. 1963년생으로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대형 은행에서 일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자 독립해 비즈니스 책을 집필·출간했다. 글쓰기와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했던 그는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미스터리 소설에 도전해보기로 하고, 일본의 권위 있는 미스터리 신인상인 에도가와 란포상을 목표로 집필에 몰두했다. 1998년 <끝없는 바닥>으로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은행을 무대로 한 이 작품은 “은행 미스터리의 탄생”으로 불리며 큰 주목을 받았다.


저자가 은행에서 일했던 경험이 뒷받침된 소설이라 스토리가 탄탄하다.  일본 은행의 속성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으며 선악의 대결 구도를 잘 녹여낸 작품이라 읽는 재미가 있다. 버블로 고도성장을 하던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기업들이 연쇄 부도를 맞게 된다. 


일본 버블 붕괴의 배경에는 1986년 일본의 대장상(우리의 재정경제부 장관)이 된 미야자와 기이치가 있었다. 미야자와 기이치는 일본 경제가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도 불황을 극복해야 한다며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를 크게 낮춰주었다. 그 결과 세수가 크게 줄어들었고, 천문학적인 나랏돈을 풀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실시하는 바람에 국가 부채가 급격히 늘어났다. <2020 부의 지각 변동, P.78>


일본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버블 이전의 경제 상황. 그들이 그 시절을 얼마나 되돌리고 싶은지 다수의 문학과 영화에서 이를 꼬집고 있다. 데이트레이딩(초단타)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은행장이 부임하면서, 자신의 지인을 대동해 은행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는다. 기업의 여신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대출 담당인 나오키를 앞세워 어떻게든 대출을 성공하고 뒤로 금품을 주고받는다. 은행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가? 싶지만 현실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기업에서 인사와 재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업을 하다 보면 은행과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다. 2015년 입사했던 회사의 여신 상태가 정말 안 좋았다. 내 월급이 나오기 늘 할까? 늘 노심초사하며 다녔던 것 같다. 공장을 증축하며 목적 자금이 필요했던 당시 기업의 대표가 은행장에게 접대를 자주 했다. 20억 원이 넘는 대출이 잘 실행되었다.


은행은 이제 특별한 조직이 아니라 돈을 벌지 못하면 망하는 평범한 회사가 되어버렸다. 은행을 믿고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은 거품 경제 시대까지였다.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는 은행은 실질적인 지위가 추락해서 기업에게는 수많은 주변 기업의 하나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p.219)


날씨가 좋으면 우산을 내밀고 비가 쏟아지면 우산을 빼앗는다. 이것이 은행의 본모습이다.(p.218)


결국 기업은 붕괴되었고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다. 최종 결정은 은행장이 했으나 책임은 나오키에게 전가한다. 원래 직장 생활이란 다 그런 것이지. 윗사람이 잘못하면 아랫사람이 문책을 당하는 것이고, 아랫사람의 보고서는 윗선의 이름으로 상신이 되는 것이고.


나오키는 나약하게 굴지 않았다. 상심은 컸으나 굴복하지 않고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결국 문제의 주범을 알게 되었고 은행장은 쫓겨났다. 당연히 그게 맞는 것이지만 현실에선 쩝쩝. 대리만족이란 이런 것이지. 속이 시원하다. 2013년 일본에서 TV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어느 곳에서 어떤 평가를 받든, 그 평가를 측정하는 잣대는 인사다. 하지만 인사가 항상 공정하다곤 할 수 없다. 출세하는 자가 반드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어디나 마찬가지고, 그것은 도쿄 중앙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자와는 은행이라는 조직에 정나미가 떨어진 상태였다. 고색창연한 관료 체질,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위장할 뿐, 근본적인 개혁은 전혀 없을 만큼 팽배한 무사안일주의. 만연하는 보수적인 체질 탓에 젓가락 드는 자세까지 집착하는 유치원 같은 관리체제. 특색 있는 경영방침을 낼 수 없는 무능한 임원들. 대출에 소극적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세상 사람이 수긍할 수 있게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 오만한 체질...(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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