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는 방향
글쓰기의 목적은, 그 장르가 어떠하든,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해 타인과 교감하는 것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p.53>
글쓰기에는 철칙(鐵則)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쓴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철칙'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p.62>
글쓰기 근육을 만들고 싶으면 일단 많이 써야 한다. 그게 기본이다.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다면 무조건 쓰는 게 답이다. 진부한 처방이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오래된 것이라고 해서 다 낡은 것은 아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p.223>
양질 전환의 법칙은 만고 불변의 법칙이라고 생각했다.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쓰며 글감을 찾느라 나름 노력을 했다. 반복되는 일상이다 보니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것 또한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질 전환의 법칙은 내게도 적용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그것이 무엇이든 우선 매일 써보는 것으로 나를 납득시켰다. 글쓰기도 기능이라는 유시민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매일 쓰며 퇴보하지 않게 기능이라도 유지하자고 나를 다독였다.
마지막 격전지는 '은밀한 생'. 슬로리딩 독서토론 모임에서 장장 2개월에 걸쳐 읽고 난 '은밀한 생'의 서평을 작성하며 한계를 체감하게 되었다. 쓰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질적으로 떨어지는 글로 변질되진 않았는지 자기 검열을 강화하게 되었고, 기껏 써놓은 글을 삭제하기에 이르렀다.
'아!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구나.'
순간 꼴도 보기 싫어졌다. 내 부족한 이면을 들여다보며 나는 나에게 상처 받았다. 이 상태를 지속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당장 그만두었다.
이제 또 하나의 미신 숭배를 이야기하겠습니다. 그것은 "오직 많이 쓸지어다"를 외치는 다작의 주술입니다. 열심히 쓰지 않고 잘 쓰는 사람 봤습니까? 거꾸로 열심히 쓰는데도 안 되는 사람 봤습니까? 어떤 술자리에서 누가, 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물으니 앞에 앉은 시인이 걸을 때도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시만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잘 쓰게 된다고 답하는데, 딱 정답입니다. 한데 그것을 많이 쓰는 것으로 환치하면 전혀 다른 오답이 됩니다.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p.32>
시를 백 편을 쓰면 그중에 다섯 편쯤은 명시가 나오겠거니, 혹은 소설을 스무 편쯤 쓰면 그중에 두 편쯤 명작이 나오겠거니, 하고 편수를 늘려가는 것은 날아가는 새들을 향해 돌팔매를 백번쯤 하면 한 두 마리쯤 맞아서 떨어지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황당합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오직 당면해 있는 작품을 잘 쓰는 길만이 그다음 작품도 잘 쓸 가능성을 여는 것이니 나는 단 한 편의 작품도 명작이 아니면 탈고시키지 않겠다. 이렇게요. 다시 김수영의 말을 빌리면, 실패작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태작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p.33>
사실 상처는 이전부터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이후 읽었던 김형수 작가의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를 읽으며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험을 했다.
나는 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일까?
유시민의 말을 철석같이 믿다가 '어라? 아닐 수도 있구나.'를 깨닫게 된 것이 계기였다고 할까.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자기 합리화가 될 것이고,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자가당착에 빠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니 나 좋을 대로 해석하곤 그냥 하던 것을 해나가는 것으로 나를 다독여봤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나는 거짓말쟁이다. 글을 잘 쓰고 싶고, 늘 새로운 글을 쓰고 싶고, 내 글이 타인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보내고 싶은 욕심에, 전보다 나아진 글을 써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에 시달렸다. 한마디로 자승자박 했다.
작가는 아니지만, 책을 읽고 사유의 폭이 깊어지다 보면 나도 책 한 권쯤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욕심을 부렸다. 현재 내 상태를 알아채는데 더없이 좋은 방법은 타인의 글을 많이 읽어보는 것이라 생각해 읽는 것에 집중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나니 위로가 된다. 나는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이다. 글쓰기 천재가 아니니 학년을 건너뛰는 것은 불가능하다.
<100분 토론>을 생각해봅시다. 누가 가장 하수입니까? 바로 자기의 경험이나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지요. 듣다 보면 곧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그다음 중수 분들은 주구장창 설명을 하시는 분들이지요. 처음에는 들을 만하지만 좀 있으면 지겨워 채널을 돌리게 됩니다. TV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여러분이 느끼기에 어떤 분들의 말이 가장 설득력 있게 느껴지시나요? 예를 들어 유시민, 노회찬, 전원책-이분들의 말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보수나 진보를 떠나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논증하고 반박하니가 우리 귀에 재미있게 들리는 겁니다. 거기에 풍부한 사례아 위트를 곁들이면 최고의 논객이 되는 겁니다. <나를 채우는 인문학, p.374>
그러다 고작 며칠을 보내지 못하고 다시 기웃거린다. 또 쓰고 있다. 잘 쓰는 글 말고, 태작 말고 '실패작'. 글 쓰는 격전지에서 배움이 부족해 자승자박으로 포장하며 나를 내려놓고 싶었던 순간을 보내고는 쓰고 싶어 다시 쓰고 있다.
그렇지. 나는 유시민도 노회찬도 최진기도 아니었지. 언감생심 캣초딩이 중학생 되고 싶었던 얄팍한 마음으로 혼자 진도 빼려고 했다. 속도보다는 방향. 다시 되새겨보는 나의 나들목.
느리지만 오늘도 노력하며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