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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oh Apr 17. 2020

“너는 좋겠다. 민주당이 이겨서.”

나의 한국현대사_유시민, 돌베개, 2014


나는 경상북도 문경 출신이다. 우리 아빠는 동네 반장이었다. 선거철만 되면 우리 집엔 사람들이 몰려들었었다. 아빠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번에 누구를 뽑으면 되는지 신신당부를 하면서 한분 한분에게 돈을 주었다. 우리 집 벽에는 국회의원 ㅇㅇㅇ이라고 적혀 있는 시계가 걸려 있었다.

한 번은 궁금해서

‘엄마, 돈은 왜 주는 거야?’라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걔


‘너는 몰라도 돼.’ 라거나

'네가 그런 걸 알아서 뭐하려고 그러냐?’라는 핀잔이었다.

부모님이 내게 직접적으로 얘기하진 않았지만 선거에는 돈이 오고 가는 것이구나, 돈을 받고 안 뽑아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잡히면 돈을 다시 뱉어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선거가 지나면 잊어버리곤 했다.

주말이 되면 우리 동네엔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노랫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노래가 시작하면 엄마와 아빠는 서둘러 낫과 호미를 들고 바쁜 걸음으로 밖으로 나가셨다. 도대체 주말마다 어디를 가는 것인지 궁금해서 졸린 눈을 비벼 가며 따라나선 적이 있다. 온 동네 사람들이 하천에 모여서 누군가는 풀을 베고, 잘려나간 풀을 모아서 버리는 사람과 도로를 쓸어 담는 것을 보며


'엄마가 여기에 있었구나.’


확인하곤 집으로 다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엄마에게 이런 일은 왜 하냐고 물어보았던 것 같은데 그때도 돌아왔던 대답은 ‘넌 몰라도 된다.’는 식이었다.

성인이 되어 처음 선거를 하던 날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아빠는 다른 건 볼 것도 없고 한나라당을 찍으면 된다고 했다. 정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아빠가 시키는 대로 한나라당을 찍었다.

스무 살 초·중반을 넘어가며 뉴스와 신문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당선돼서 앞으로 큰일이 날 거라는 엄마의 얘기완 다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다음 선거에서 노무현을 찍었다가 아빠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4대 강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조령호를 지나간다고 해서 내 살던 동네 땅 값이 많이 올랐다. 엄마와 아빠는 역시 한나라당이 돼야 살기가 편하다고 이명박을 추켜 세웠다.

박근혜가 선거에 나섰을 때 남성 중심 사회로 돌아가던 세상에 여성 상위 시대가 도래한 것 같아 기쁘게 새누리당 박근혜를 찍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종종 얼굴을 붉히곤 했다.

명절에 본가에 가서 다 같이 둘러앉아 정치 얘기를 하면 늘 타박을 받았다. 21대 총선이 끝나고 엄마에게 걸려왔다.

“너는 좋겠다. 민주당이 이겨서... 그런데 나는 기분이 좀 그래.”

나는 엄마가 하는 말속에 고단함과 서글픔이 묻어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선뜻 어떤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책 속에서 읽었던 구절을 읊어보았다.

나는 고령 유권자들이 투표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 했다고 추측한다. 그들은 일제 강점과 해방공간의 혼란, 참혹한 전쟁과 절대빈곤의 고통을 견뎌내고 기나긴 군사독재의 시대를 통과해 오늘에 이르는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룸으로써 대한민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후 빈손으로 노후를 맞았다.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그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는 소망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2012년 12월에는 그것 말고는 적절한 표현 방법이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假說일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 가설로 2012년 대선 결과를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p.22~p.23)


“엄마, 엄마 젊은 시절 박정희가 대통령 하던 그때가 생각나서 그러는 거죠? 그때 열심히 살았던 엄마 세월을 걷어가는 것 같아 그래요?‘
“어…….”
“아니야 엄마. 그런 거...”
“몰라, 나는 좀 그래...”

우리 엄마도 나이가 드시나 보다. 예전처럼 기고만장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엄마, 민주당이 자리를 그렇게 많이 차지한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기분이 좋거나 그렇지는 않아요...그런데 이런 적은 이번이 처음이잖아.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야죠. 민주당이 자리를 저렇게 많이 차지해서 앞으로 사는 게 더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찍기는 했지만 아직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니 지켜봐야죠."


“앞으로 잘 산다 그러면 나도 좋지만..."




이 광장에 무장한 군인들이 들어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난 아마 죽을 거야. 스물한 번째 생일이 두 달 남았는데, 벌써 죽어야 하나? 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시위를 주동했으니 억울할 거야 없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하지 않는가. 그 피가 내 피일 수도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p.224)


21살 청년 유시민은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어제는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번 울었다. 그때 그 시절 힘겨웠을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울었고, 조국과 타인을 염려하는 그들의 마음에 감동해서 울었다. 세월호 6주기엔 눈앞에 서성이는 아이를 보며 눈시울이 붉혔고, 이래저래  시기가 시기인지라 묘한 감정들이 부딪히면서 드문드문 울면서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내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에서 나는 민주당에 표를 주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부디 올바른 일에 마음을 써서 더는 눈물 흘리는 사람이 없도록 성심으로 일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차악을 선택한 것뿐이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웃는 날이 많아졌으면 하는 그런 마음에서 민주당을 선택한 것이지 유달리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청년 유시민이 바라던 것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엄마, 엄마의 바람대로 나도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 앞으로 좋은 시절이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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